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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내 손가락 던지던 일본 공장감독... 월급은 단 1엔도 없었는데"

[현장] 10대에 끌려가 95세 된 두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 "이처럼 억울한 건 처음이요"

등록 2023.03.07 18:11수정 2023.05.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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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무소속 의원,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규탄 긴급 시국선언에 참석해 굴욕적인 외교를 규탄하며 일본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내 동생 국민학교 담임 선생이 일본인 선생님이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한 3개월 집에 있는데, (선생이) 동생을 시켜 언니 학교 좀 나오래, 그래서 갔지요. 그 선생이 하는 말이 '너 일본에 가면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도 할 수 있고 돈도 벌고 하니 가거라'. (그러니) 너희 집 가서 아버지 도장 갖고와서 찍어야 한다고 했어. 

그때 아버지도 징용가시고 안 계셨어. 책상에서 도장을 빼다 갖고가서 선생님께 드렸어요. 도장을 찍더라고. 난 할머니 그늘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하는 말이 '너 없이는 우리 집 살림 못한다,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울면서 선생님한테 '난 엄마가 일찍이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이 너댓살 묵었습니다' 했지. 그랬는데 도장을 찍어서 안 된다고, 가야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가게 됐습니다.

일본 가서 집에 보탬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가서보니까, 기계를 돌려다 (부품을) 잘랐다. 어느 날 자잘한 부속을 작두에 자르고 있는디, 손가락을 집어 넣었는데 처음에는 아픈 줄도 모르겠더라고요. 피가 뚝뚝뚝 흘러서 악을 쓰고 우니까... (공장) 감독님이 그 손가락을 줏어다가 '오끼(大きい: 크다), 아이고 크다' 하늘로 손가락을 던지고... 나는 막 울고...  

그런데 어느날 남동생이 죽었다고, 작은아버지가 엽서를 보냈드라고. 그때 사감선생님한테 '내가 업어 키운 동생이 엄마도 안 계신데 죽었당게 보내주세요' 했는데, '안된다' 하더라. 쪼깐 있으면 귀환 될 것인디 그때까지 안 보내준다고. 저녁에 둥근 달이 뜨면, (그날부터) 달아달아, 너는 우리집 들여다 보겠지? 나는 가도오도 못한 신세가 됐다 그럼시롱 날이면 날마다 울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중략) 그래서 걸음도 못 걷고, 그 고생을 하는데 약값도 안 주고 있다가 나왔어요. 

그래서 일본에 대해 사죄를 받고자 하는데, 엄한 소리만 하고... 일본의 잘못은 명확히 가려야 합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말 한자리 하면 끝내겄는디, 그것도 저것도 아니고. 일본은 오히려 우리한테 의지하려는 심보만 가지고 있습니다."


1929년생(95세)인 김성주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15세 나이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 공장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날들을 생생히 떠올렸다. 공장관리자가 자신의 손가락을 '오자미 놀이'하듯 하늘에 던지던 순간을 묘사할 땐 움직임이 불편한 두 팔이 하늘로 번쩍번쩍 솟구쳤다. 할머니는 7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진행한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규탄' 비상시국선언에서도 "미쓰비시 사죄 배상" 손팻말을 쥐었다. "일본은 사죄,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칠 땐 오른주먹이 올라갔다. 

"내가 누굴 위해 싸웠간디... 아흔다섯 묵어갖고 이처럼 억울한 건 첨이요"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김성주 “굶어 죽어도 우리 기업 돈 안 받아” ⓒ 유성호

 
"여러분, 나랑 똑같이 (말) 합시다. 윤석열 퇴장! 완전히 퇴장!"
"아흔다섯이나 묵어갖고 이처럼 억울한 건 첨이요.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사람인가 모르겄소."
"나는 그런 돈은 곧 굶어 죽어도 안받아요. 나가 와 그런 돈을 받아요. 우리나라 힘으로... 내가 누굴 위해 싸웠간디. 윤석열 말은 다 내던져 버리고, 맘 합해서 나라를 이끌어갑시다."



김성주 할머니 옆에는 역시 1929년생으로, 같은 공장에서 끔찍한 강제노동에도 임금을 받지 못한 양금덕 할머니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안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김성주 할머니의 뜻도 같았다. 김성주 할머니는 "일본 사람이 우리를 끌고 갔는데 어디다가 사죄를 요구하겠나"라면서 "일본사람들은 양심이 있으면 말을 해봐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사죄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일본에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충분히 이해를 구했다'는 외교부의 설명과 달리, 생존 피해자의 가족들과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조속한 해결'에 대한 공감만 전달받았을 뿐, 우리나라 기업이 전범기업 대신 판결금을 내는 '제3자변제' 등 구체적 방식에 대해선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가 유가족들을 개별 접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피해자 유족 왈, 누가 문 두드려 나가니 '정부 사람'이라며 번호 물어봤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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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무소속 의원,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규탄 긴급 시국선언에 참석해 굴욕적인 외교를 규탄하며 일본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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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이국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이사장은 이날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유가족의 경우엔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려 나가니 사전 통화도 없이 남성 두 명이 '정부에서 왔다'고 신분증을 꺼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들 전화번호를 한 사람씩 물었다고 했다. 가르쳐주지 않고, 복도에서 한 10분쯤 이야기했다고 한다"면서 "(구체적인 방식을) 말했다면 동의했겠나. (그래놓고) 그걸 의견수렴이라고 하고 있다. (다른 분의 경우) 딸의 남편을 통해 접촉해왔는데, 꼭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싶었다"고 전했다.

김성주 할머니의 장남인 문병창씨는 "어느날 외교부에 계신 분한테서 연락이 와서는 (제가) '할머니들을 내일 찾아가도 되냐'고 하셨다. 듣고 싶은 말 못 들으실 거라고 했다. 그 이틀 뒤 다른 분한테도 전화가 왔다. (직접) 오지 마시고, 변호사 통해 오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통화 내용을 전했다. 

문씨는 이번 정부안에 대해 "양금덕 할머니나, 어머니 말씀처럼 비단 이 두 분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강제동원 피해로 이름 모르게 돌아가신 분들도 많은데 정부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런 분들을 봐서라도 정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분들께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비상시국선언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권 지도부 인사들도 함께 참여했다. 7일 오전 11시 45분 기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교수, 황석영·현기영·신경림 작가,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안재웅 목사, 명진 스님 등의 인사를 포함, 9020명의 개인과 1464개 단체가 비상시국선언 연명에 참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외에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강제동원은 배상하면서 왜 한국만 예외적으로 배상할 수 없다고 하나. 차별하는 건가"라면서 "이 차별을 왜 윤석열 정부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이어 "양국간 합의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일방 선언이라 되돌리기조차 어렵다는 거다. 과거 잘못된 '위안부' 합의로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심판을 받았는지 윤석열 정부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께서 이 자리에 계시지만 (제가)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우리 정치가 할머니들의 존엄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신냉전에 포섭돼 전범국가인 일본의 재무장화를 용인하고, 위험천만한 파국 도구로 우리 국민의 뼈 아픈 과거사를 팔아넘겼다는 냉엄한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동생도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마지막 판단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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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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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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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피해자 지원단체와 법률 대리인들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반대, 일본 측의 공식 사죄와 전범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과 함께 추심 절차와 남은 대법원 소송까지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한 김성주 할머니는 자신에 이어 두살 터울 여동생인 김정주 할머니까지 일본 후지코시 주식회사로 강제동원돼 고초를 겪은 바 있다. 김정주 할머니의 경우 1심과 항소심 모두 승소 후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성주 할머니는 이날 국회의원과 취재진들을 향해 '마무리 인사'로 "여러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에 "저희가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는 참석자도 있었다. 피로를 걱정하는 아들 옆에서, 어머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이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길 하고 있는디, 일본은 우리에게 사죄도 안 하고... 자기들이 반성을 해야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조금도 우리에게 미안한 생각을 안 합니다. 자기네 나라에서 일을 시켜먹고 월급을 줘야하는데 단돈 1엔도 월급이라는 것은 없고. 우리를 이렇게 골병 (들게) 만들어놓고...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이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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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규탄 긴급 시국선언에 참석하자, 시민들이 할머니를 응원하며 손을 잡아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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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자,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 참석자들이 할머니들을 응원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강제동원 #윤석열 #피해자 #제3변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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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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