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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쓰면서도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할까요?

지구 한계 안에서 좋은 삶을 모색하는 생태경제학 입문서 '기후를 위한 경제학'

등록 2023.03.11 11:26수정 2023.03.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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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기후비상사태, 기후재난, 기후붕괴, 기후종말... 기후 뒤에 따라붙는 언어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최근 2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1.1℃ 이상 상승했다. 지난 200만 년 동안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수년 전 세계 194개 국가들이 모여 지구 기온을 1.5℃ 이상 올리지 말자고 결의(파리기후협약, 2015년)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후 전문가들은 전 세계 국가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성실히 이행한다 해도 지구 온도는 2.4℃∼2.6℃ 이상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3℃ 이상 올라가면 기후 엔드게임, 즉 대재앙이 시작된다. 통제범위를 넘어선 기후변화가 지구와 이 별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는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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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를 위한 경제학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도전 앞에 서 있다. ⓒ 착한책가게

 
김병권의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이 문제의 해법을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에서 찾는다. 생태경제학의 기본명제는 단순명쾌하다.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은 지구 생태의 한계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선을 넘어서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선을 넘는 순간, 지구의 미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 앞에 이 삼엄한 경고장이 배달되어 있다. 인류세(人類世)는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생태경제학이 축적한 방대한 지식과 담론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생태경제학이 기존 경제학과 어떻게 다른지, 자연계의 보편적 법칙과 인간의 경제활동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무한성장이라는 미신을 넘어서려면 어떤 접근법이 필요한지를,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이 낯선 용어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 책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저자에 따르면, 주류경제학은 '자연을 없는 셈 치고' 경제 활동을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인간이 포획하는 물고기보다 번식하는 물고기가 많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세상은 이미 20세기 중반에 끝났다고 말한다.


인간의 운명은 자연의 운명에 결박되어 있고, 경제질서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며, 지구 생태계는 자연과 인간이 연결되는 순환 궤도를 그리며 움직인다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현재 지구에는 80억 명의 인간 개체가 살고 있다. '비어 있는' 세상이 아니라 '꽉 찬' 세상이다. 인류라는 종(種)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 한계선이 임박해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탄소 시대의 인간들은 성장이라는 이름의 신화에 중독되어 자연에 대한 착취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문명이 이만큼 발달할 수 있었던 건 화석연료라는 고밀도 에너지가 수십억 명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석탄이 에너지를 저장할 때까지는 영겁(永劫)의 시간이 걸렸다. 인간은 그것을 꺼내 쓸 수 있을 뿐이다. 원료가 사라지면 인간은 어떤 것도 생산할 수 없다. 원료를 인공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레시피만 가지고 요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절로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이다. 인류는 자연에서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추출해 소비함으로써 지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많은 폐기물과 오염물질을 배출했고 그 결과 지구의 엔트로피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인류의 종말은 가까워진다. 엔트로피는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 살아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자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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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동안 세계 경제성장률 추이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임을 알 수 있다. ⓒ ourwprldindata.org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은 어떤 시각 차이가 있을까. 지구 생태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원료 창고가 아니라 인간들이 사는 '장소'이며 존립 기반인데, 주류 경제학은 온실가스 배출로 환경파괴가 일어나면 그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자연 자원이 부족하면 대체 자원을 개발하면 되고 심지어 인공자본으로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물고기가 없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생태경제학은 "현재 인간의 경제구조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수용 능력에 비추어 적정한 규모인가?"라고 묻는다. 파이(pie)의 크기, 규모(scale)의 문제가 최상위의 질문이 된다는 것이다.

적재 한계선(load line)을 넘도록 화물을 실은 배는 침몰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구의 수용 한계를 물리적인 방식으로 측정하고,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다면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둘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설명이다.

저자는 저명한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E. Daly)의 생각과 주장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허먼 데일리는 지구 생태 시스템의 흡수용량 안에서 작동되는 경제구조를 '정상상태(steady-state) 경제'라고 명명했다.

인류가 사용하는 자원의 총량은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제한되어야 하고, 그것이 '정상'이라는 뜻이다. 정상상태 경제는 물리적 측면에서 더는 성장하지 않는 경제를 말한다. 자연자원에 대한 수요를 줄여나감으로써 경제의 중심을 '규모'에서 '분배'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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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제학 위치도 (본문 207쪽) 생태경제학과 정상상태 경제의 상대적 위치를 알려준다. ⓒ 김병권

 
정상상태 경제에서는 ①지속 가능한 규모 ②정의로운 분배 ③효율적 배분이 순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먼저 규모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정해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분배(distribution)의 규칙을 결정한다. 배분(allocation)은 규모와 분배의 규칙이 정해진 후, 시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허먼 데일리는 "이 순서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위계적 질서를 지닌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태동 이후 지금까지 분배 문제의 '해결사'는 성장이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이라는 도피처로, 분배와 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상태 경제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다.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규모를 줄이자고 하면,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 정의란 곧 사회 정의라고 저자가 말하는 이유다.

큰 전환기, 갈림길에 선 인류

지난 30년 동안, 기후 위기에 대한 인류의 대응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생태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①화석연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권력 ②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인 ③익숙한 관성에 안주하려는 시민들의 습관에서 찾는다.

탄소 집약적 산업의 거대 기업들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기후 위기설이 거짓이라는 이야길 퍼뜨리는가 하면, 위기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식의 위선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지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면서도 이 불구덩이에서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뛰는 비영리단체에 기부금을 보내는 것으로, 혹은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자제하고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는 것으로 양심을 달래고 문명이 만들어놓은 편리와 안락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한다.

좋든 싫든, 인류는 지금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화석연료를 버리고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 안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석유를 태우고 물질적 팽창을 확대하는 가운데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전자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는 길이고, 후자는 종말이다.

성장 없는 자본주의는 실현 가능한가. '더 적게 쓰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고민과 답이 생태경제학 안에 들어있다. 불모지와 다름없는 이 영역에 뛰어들어, 인류가 마주한 엄중한 현실 속에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분투한 저자에게 갈채를 보낸다. 이 저작이 널리 읽히고 쓰여,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지구를 살리는 행동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 - 지구 한계 안에서 좋은 삶을 모색하는 생태경제학 입문

김병권 (지은이),
착한책가게, 2023


#기후를위한경제학 #생태경제학 #김병권 #허먼데일리 #정상상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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