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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사태 이후... 검사 출신들의 행태가 드러났다

[주장] 검폭과 학폭이 융합된 양육강식의 세계... <더 킹>과 <더 글로리>의 현실 고발

등록 2023.03.08 19:06수정 2023.03.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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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도, 이부, 삼백'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최상책은 '도망'가는 것이고, 도망치지 못하고 잡혀가면 '부인'하는 게 차선책이며, 그것마저 안 될 땐 '백(뒷배)'을 동원하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 말을 20여 년 전, 한 여당 국회의원 보좌관한테 처음 들었습니다. 그 보좌관 왈,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검사실에 갔더니 담당 검사가 이런 귀띔을 해주더라는 겁니다. 제 딴에는 대단한 비법이라도 전해 들은 듯 몇몇 자리에서 화제에 올렸는데 그쪽 세계에선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는 얘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순신 사태 후... 잡아떼기, 말재주, 부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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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0일 오후 인천시 남구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정순신 특수부장 검사가 '세월호 침몰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이 말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이 정부에서 출세한 검찰 출신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서입니다. 이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무조건 싹 잡아떼는 버릇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아들의 학교폭력(학폭)이 불거지면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전 특수부 검사 정순신 변호사 사건과 관련한 것입니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책임자가 모두 전·현직 검사들인데, 이들 중 정 씨에 대한 인사 검증 실패를 인정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위 공직자 1차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로 가져갈 때는 '검증을 잘못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의기양양하게 공언했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정작 문제가 터지자,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재주를 부리며 도망가더군요.

이들은 부인만 하는 게 아니라 정씨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꼬리 자르기' 기술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니 아랫물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마는, 이쯤 되면 '부인하기'가 '직업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검사들의 직업병이 부인하기 같은 소극적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비선출 권력자인 그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며 모든 문제의 심판자, 즉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게, 반대편에는 한없이 사납게' 구는 이중잣대가 보입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김건희 여사와 대장동 사건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너무도 다른 그들의 수사 태도가 모든 걸 보여줍니다. 누군가 건설노동자를 '건폭(건설 폭력배)'이라고 불렀다던데, 그것에 비하면 이렇게 '법 가지고 장난치는' 검사들을 '검폭(검사 폭력배)'이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다고 봅니다.


부조리한 현실 고발, 신문·방송보다 영화·드라마가 앞서

하지만 검폭 행태를 고발하는 뉴스는, 이른바 메이저라고 하는 '조중동'과 같은 신문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검찰이 흘리면 친검 기자가 그대로 받아쓰고 검찰이 다시 그 기사를 수사에 재활용하는 '검언유착'이 급기야 '검언동맹' 수준까지 발전한 탓이라 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문과 방송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세상사를 더욱 잘 파악한다는 소리를 부쩍 많이 듣습니다. 검폭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로는 단연 <더 킹>이 꼽힙니다. 2017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소수 엘리트 특수부 검사들의 추악한 세계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데, 지금 검찰 정권의 행태와 심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역 차별부터 스폰서 문화, 조폭과 유착, 정치권 줄 대기, 출세 지상주의, 조직 이기주의, 유불리에 따라 자기 식구 감싸기 및 내치기, 안하무인, 무속 선호까지 그쪽에서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던 얘기가 종합선물 세트처럼 펼쳐집니다.

저도 검찰 정권이 등장한 뒤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보면서 현실보다 생생한 묘사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왜 신문과 방송 보도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을까 하면서요. 이젠 신문과 방송이 사실 전달에서도 영화보다 못한 매체로 전락한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게 학폭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입니다. 정순신씨 낙마 사건으로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보게 됐지만, 이 드라마 또한 학폭 문제를 어떤 신문·방송 기사보다도 실감 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시즌1 8편을 한꺼번에 몰아보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학폭 양상이 예전과는 달리, 학생들 개인 사이의 단순한 힘 과시나 애증 관계가 아니라 집안의 권력과 부를 배경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검폭과 학폭이 '하나의 세계'임을 보여준 정순신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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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변호사(전 검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낙마) 아들의 학교 폭력과 2차가해성 소송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아들 정아무개씨가 다니고 있는 서울대에 2월 27일 비판 대자보가 붙었다. ⓒ 소중한

 
학폭 가해자인 정순신씨 아들이 피해 학생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들먹이며 "검사는 뇌물을 받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무조건 재판에서 이긴다"라는 '법조계의 영업비밀'을 폭로했다는 기사를 보고, <더 글로리>에서 가해자인 박연진이 피해자인 문동은에게 한 다음 대사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아. 경찰도, 학교도, 니 부모조차도.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 약자."

무엇이 드라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지만, 두 대화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강자와 약자라는 넘을 수 없는 두 세계로 분단돼 있고, 그것이 대대로 세습되는 지경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더 글로리>가 양극화와 약육강식 세계의 학교 편 드라마라면, <더 킹>은 그 검찰 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터진 정순신씨 사건은 <더 글로리>의 세계와 <더 킹>의 세계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세계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더 킹>과 <더 글로리>를 만든 사람들은 흥행도 흥행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와 약육강식의 병폐를 강력하게 경고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경고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언론이 먼저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나마 이런 영화와 드라마가 언론의 공백을 메꿔주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더 글로리> 2부가, 3월 10일 개봉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보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이런 지옥 같은 현실을 깨부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도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검찰정권 #학교폭력 #검사폭력 #더킹 #더글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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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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