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8 20:02최종 업데이트 23.03.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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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제1항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법정기준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임을 근로기준법은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한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이런 근로기준법을 무시한다. 개편방안은 법정노동시간을 1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으로 전제한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제1항에서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예외가 아니라 자의적 원칙으로 세웠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여기에 노사합의로 탄력적근로시간제가 도입됐을 때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면 1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한 국가가 된다.

노동시간에 휴게시간을 더하면 직장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노동시간에 휴게시간은 제외되므로 4시간당 30분 이상 주어야 하는 휴게시간까지 포함하면 1주에 최소 74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주휴일 하루를 빼고 6일 출근을 가정하면 하루에 12.3시간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게 된다. 정부 발표대로면 근로일간 연속휴식 11시간이 지켜지면 1주 69시간도 일을 시킬 수 있으므로 이 경우 1주 78시간, 하루 13시간을 꼼짝없이 회사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법정노동시간은 1주 52시간 아닌 40시간
   
윤석열 정부는 이번 제도 개편이 '주52시간제'의 틀 안에서 '1주 단위'의 연장근로 칸막이를 제거하는 것이므로 근로시간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52시간제 내에서 특정주에 노동을 더하면 다른 주는 할 수 없는 구조이므로 특정주 상한만 부각하는 것은 제도 본질을 왜곡한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1주의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전제한 것부터 드러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법정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이다. 예외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한 경우 1주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1주의 노동시간을 12시간 확장해 52시간으로 만들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법률을 자의적으로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시간도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2021년 기준 OECD 국가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617시간이다. 우리나라는 1928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11시간 더 일하고 있는 장시간 노동국가다. 1주 40시간을 원칙으로 하는 현재 상황에서도 그렇다. 1주 40시간을 1년(52주) 근로시간으로 계산하면 2080시간이다. 대략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비슷하다.
 

[그래프1] 근로자(의존적 취업자)당 연평균 실제 근로시간 국가간 비교(OECD, 2021). 자료 출처_국가통계포털(KOSIS) ⓒ 박영기

  
그럼 1주 52시간 근로를 원칙으로 하게 되면 연간노동시간은 얼마가 될까? 무려 2704시간에 이른다. [그래프 1]에서 볼 수 있듯, 2021년 세계 최장 근로시간 국가는 멕시코로 2328시간 일한다.

현재 주 40시간 근로시간으로 봐도 OECD 국가 중 가장 노동 시간이 긴 국가 중 하나인데, 문제의 윤석열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 근로시간 국가인 멕시코보다 376시간 더 일하게 된다. 그리고는 OECD국가 평균보다 1087시간 더 일하는 최악의 노동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설익은 방안이 비상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정책으로 발표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저출산 강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 인구감소를 부추길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 중 하나가 인구감소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사회 활력도 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인구문제는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올린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용안정과 협력적 노사문화에서 보육과 육아에 대한 양질의 공공정책 등 국가 전 영역에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그동안 힘겹게 펼쳐온 인구대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인구감소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높은 주거비용과 사교육비용과 더불어 만연한 장시간 노동 또한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던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보자.

지금까지 대표적인 저출산 고령 국가로 인식되었던 일본의 2022년 출산율이 1.27명인 반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OECD 평균 출산율 1.59명의 절반 수준인 0.78명을 기록했다. 출산율만 따져보면 일본이 부러울 따름이다. 일본의 연간 노동시간은 1633시간이다. OECD 평균에 근접한다. 일본이 OECD 평균 출산율에 근접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10여 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지출한 예산이 280조 원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발표로 280조 원이 지출된 저출산 예산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하루만 임시휴업을 해도 직장인 부모들은 대책 마련에 초비상이 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어떤 주는 69시간, 어떤 주는 64시간, 어떤 주는 40시간 등 들쭉날쭉한 노동시간이 일상화, 관행화된다면 제대로 된 육아도 자녀교육도 엄두를 낼 수 없게 된다. 결국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에 불규칙한 노동이 만연한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저출산 대책 측면에서도 0점이다.

근로시간 선택권은 늘 사용자에게

20년 전인 2003년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법정근로시간을 1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했다. 일명 '주5일제' 실시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4시간 줄이는 것이었다. 법정노동시간을 4시간 줄이면서 반대로 노동자들의 월차유급휴가제도가 없어지고 연차유급휴가로 통합되면서 유급휴가 개수가 줄었다. 여기에 여성노동자들의 생리휴가가 무급화되는 불이익 또한 있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내용대로 법정노동시간이 1주 40시간이 아니라 1주 52시간인 것처럼 초법적인 주장은 20년 전 시계로 되돌아 가는 것을 넘어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더 힘겨운 것은 주44시간 근로시간 시기에도 있던 월차휴가제도와 유급생리휴가도 없어졌다는 점이다.

초법적이고 시대 역행적인 근로시간 연장정책에 대한 비판을 뒤로한다 해도 주당 52시간 근로시간에 부합하는 월차휴가제도와 생리휴가 유급화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는 이번 정부안은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사용자와 기업만을 위한 대책이다. 이번 정부안의 핵심은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선택권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마치 그럴싸하게 근로시간의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있을 것인 양 포장하지만 근로시간의 선택권은 늘 사용자와 기업에 있어 왔다.

근로시간 선택권은 사용자가 행사하는 업무지휘권의 핵심 부분이다. "근무형태·방식 등이 다른 직종·직군의 근로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근로시간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확한 표현은 근무형태·방식 등이 다른 직종·직군의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1주 단위가 아닌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사용자가 자유롭게 설정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있더라고 직종·직군별로 파편화된 노동자들의 개별 동의를 얻어 근로시간 유연화를 관철함으로써 사용자 친화적인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안에 대한 비판을 떠나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대부분은 근로기준법 등 국회에서의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근로자대표제 정비, 휴게시간 선택권 강화, 근로자 건강권 보편화,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선택근로제 확대, 탄력근로제의 실효성 제고 등은 모두 노동법 개정 사항이다. 즉 야당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정책인 것이다.

역대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하더라도 국회의 벽을 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노사정의 어떠한 합의 과정도 없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회의 문턱을 넘겨 어떻게 노동개혁을 수행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노동개혁이 윤석열 정부의 전매특허인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대통령은 더 이상 검사가 아니다. 국정 운영의 철학과 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절대다수가 노동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삶과 직접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중대한 사안을 노동조합 등 노사 당사자의 의견수렴과 동의 절차 없이 일부 전문가와 정부에 의해서 일방통행식으로 집행한다면 그 시작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근로시간 등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사회적 대화기구인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김문수 위원장이 임명된 이후 본연의 임무인 사회적 대화는 포기한 채 반노동적 발언 등을 일삼는 등 배임에 가까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대화도 의견수렴도 소통도 타협도 없이 국민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폭주할수록 국민적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임기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기업과 사용자 편향성을 시정하고, 노동조합과 대화하며,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할 때 '검찰공화국'의 오명을 씻고, 진정한 의미의 '노동개혁'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필자소개 :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성남 사람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을 역임한 공인노무사로, 노동자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뛰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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