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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절반 월급 250 안돼...그들이 노조 욕할 때 정말 속상"

[인터뷰②]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양대노총 주력 상위 10%란 사실 인정해야"

등록 2023.03.09 18:24수정 2023.03.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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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밑바닥은 윤석열·문재인 상관 없어...노동운동 틀에 갇혔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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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 이희훈

 
한석호(59)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이 노조 울타리 바깥 하층 노동에 대한 연대에 앞장서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상당수가 소득 기준 상위 10%에 속해 있다는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 조직률이 14%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근로자의 중위소득(소득순으로 근로자들을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임금 값)이 월 250만원이고, 월 650만원 이상이면 소득 상위 10% 안에 들어가며, 월 550만원 이상이면 상위 15%안에 들어간다는 현실 자체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2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

한 사무총장은 최근 불거진 정부의 노조 회계장부 제출 요구 논란에 대해서도 "정부가 너무 과도하게 나오는 건 문제지만, 노동조합은 이제 일반 시민들에게 사회의 한 공적 단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라며 "회계장부를 정부에 내는 건 거부하더라도, 국민 전체에게 공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왜 '상위 10%' 울타리 속 갇혔나... 민주노총, 바깥으로 손 내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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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 이희훈

 
- 노동계 내 지지도 많다고 했지만, 민주노총에서 지난달 8일 전태일재단에 공문을 보내 한 사무총장의 상생임금위 참여 철회는 물론,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직 사퇴까지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민주노총 내 일각에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대화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얼마 전 어떤 대선배가 내게 그러더라. '너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다 그렇진 않겠지만 네가 성과를 내고 나오는 걸 더 우려할 수도 있지 않겠냐. 네가 그냥 거수기가 돼서 바보로 나오는 걸 더 바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사회적 대화를 거부해온 노동계 전략이 전면 수정돼야 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민주노총 내부에는 자신들의 소득이 상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소득자의 절반이 월 소득 250만원, 연 소득 3000만원이 안 된다고 주구장창 떠들어봤지만 민주노총 내부에선 그걸 잘 실감 못했다. 이제 거기 해당하는 조합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더라도 노동조합만 만들어지면 교섭을 통해 그 이상은 만들어내니까. 아무리 통계를 들이밀어도 하위 50% 밑바닥이 잘 안 보이는 거다.

예전에 서울지하철에 다니는 한 선배가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자기는 평생을 자신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내가 자꾸 다른 얘기를 하니까 그게 너무 듣기 거북했다는 거다. 노동운동이고 진보고 좌파고 수십년 동안 언제나 '노동자들이 밑바닥'이라는 얘기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자신의 소득이 상위 10%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이는데 3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심정적 거부감 없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거다.


양대노총의 주력들이 이미 이 사회의 상위 10%에 진입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다음 길이 열린다. 언제까지 재벌 돈 뺏자는 얘기만 할 것인가. 이미 대중들은 그런 얘기가 현실성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 안다. 요즘 노동계는 1%의 소득을 뺏자는 말도 잘 못한다. 상위 1% 안에는 이제 전통적 개념의 자본가 계급이 아닌, BTS, 유재석, 손흥민, 류현진 같은 사람들이 상당수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조가 그들 소득 뺏자고 할 수 있나. 아니지 않나. 상위 10% 안에 든 노조가 먼저 아래와 손잡자고 연대에 나서야 한다."

- 현재 한국의 노사 교섭 형태가 산업별 교섭이 아니라 칸막이가 분명한 기업별 교섭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노사가 정부와 함께 기금을 만들어 하층으로 전달한다는 구상이 더 잘 안 그려지는 것 같다.

"맞다. 기업별 교섭에서 점차 산업별·업종별·지역별 교섭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기업들도 산별 교섭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앞으로 상생임금위에서도 그 얘길 할 생각이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도 충분히 임금 연대가 가능하다. 사회적 수준에서 종합되고 체계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 개별 사업장에서는 이미 기금연대가 많이 퍼져있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가 기금을 만들어 장애 청소년, 위기 가정들에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현대차지부는 2018년도에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실행해 노조 설립 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직 임금 인상액보다 하청의 임금 인상액이 더 높았다. 민주노총 부산지하철노조는 2019년도에 조합원 1인당 1000만원 이상씩을 양보해 회사로부터 540명 신입사원 채용을 따냈다. 그것도 이틀간 파업까지 하면서 말이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나 화섬식품노조, 금속노조 산하 일부 지부 조직들에서도 조합원들이 매달 조금씩 모아 사회연대기금을 운영하는 사례들이 있다. 우분투재단,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산업공익재단 등이 모두 사회연대 기금의 산물이다. 확신하건대 이런 시도들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망라해 시스템화하자는 거다."

"호봉제 완전히 없애기 어려워... 과도한 기울기는 꺾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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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 이희훈

 
- 상생임금위 등 정부에선 직무·성과급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언급하고 있다. 상층 노동에서는 호봉제를 없애려 한다는 반발이 있다.

"직무급과 호봉제가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정규직들은 또 '호봉제 없애서 임금 깎으려 한다'고들 하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그건 불가능하다. 다만 호봉 기울기가 너무 과도한 것은 완화시켜가야 한다. 그것도 바로는 못 꺾는다. 5년, 10년 충분히 시간을 두고 꺾어가야 한다. 호봉 기울기를 꺾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 또 수당이든 뭐든 혜택을 주면서 갈 거다. 손해 안 보게 다 만들 거다."

- 직무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장기적으로 직무급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노조조직률, 이중격차 등을 감안했을 때 당장 독일처럼 사회적 직무급을 도입하는 건 무리다. 똑같은 도장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도장하는 사람과 지방 중소공단에서 도장하는 사람의 임금이 같아질 수 없을 정도로 기업간 지불능력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일단 그 격차부터 줄여가자는 거다. 그리고 나서 직무급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가자는 거다. 아마 좀 더 논의는 해봐야겠지만, 상생임금위도 호봉제를 완전히 없애자는 얘기를 하진 않을 거다."

"노조 탄압 기조? 정부도 문제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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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 이희훈

 
- 최근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 기조 때문에 상생임금위에 대한 의구심이 더 큰 측면도 있다.

"물론 정부가 과도한 면이 있다. 아주 소수, 일부의 잘못이 있는 걸 갖고 마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체가 다 그런 양 몰아세워선 안 된다.

하지만 40년 노동운동 해온 사람으로서, 정말 속상할 때가 언제인 줄 아나. 여기 봉제골목 노동자들도 그렇고, 밑바닥 노동들이 실컷 윤석열 정부 욕하다가도 '노조 때리는 건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할 때다. 나는 그게 지금의 노동 이중격차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래서 상생임금위에 간 거다.

노동조합도 그 지점을 곱씹어봐야 한다. 왜 우리가 평생 위한다고 했던 밑바닥들이 도리어 우리를 욕하기 시작한 걸까? 세상은 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공적 단위로 인식한다. 마이크가 큰 단위로 받아들인다. 회계 장부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요구가 과도하니 정부에는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석연치 않아 하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건 문제다. 대국민 회계장부 공개를 해서라도 좀 더 일반 시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노조에 대한 불신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 상생임금위는 시작 단계다. 위원회를 끝마쳤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루면 스스로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나.

"나름대로 구상이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너무 빨리 공개하면 안 될 것 같다. 다만 현재 내게 쏟아지는 노동계의 비판에 대해서는,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대답으로 갈음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중구조 하에서는, 이 인터뷰를 보는 모든 부모들의 90% 이상은, 그 자식들이 취업하자마자 곧장 울타리 바깥의 노동으로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AI와 로봇이 발전하면서 갈수록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울타리 안과 바깥의 노동이 너무 많이 차이 나게 내버려두지 않아야 우리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어딜 가나 적절한 소득이 보장되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

- 정치에 뜻이 있나.

"없다. 요즘 그나마 내가 아주 못살지는 않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래도 나를 오래 봐온 노동계 인사들 중에 '한석호가 정치하려고 저런다'고 말하는 부류는 못 봤기 때문이다. 배고프게 활동했지만 두 가지는 지켜왔다. 하나는 관밥을 먹지 않겠다는 것. 둘째는 경선에 나가 동지와 싸우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생임금위의 단순 '거수기'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할 계산이 있다면 대충 박수 쳐주고 나와서 다음 단계로 가겠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한석호 #상생임금위원회 #이중구조 #민주노총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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