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9 17:07최종 업데이트 23.03.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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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검증대상] "강제동원 피해자 거부해도 제3자 변제 가능" 외교부 주장

윤석열 정부가 일본 가해 기업이 내야 할 강제동원(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을 한국 기업들이 대신 내게 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해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다(관련 기사 : 일본 사과·배상 빠진 한국 주도 '제3변제' 공식화... 피해자들 반발 https://omn.kr/22yqd ).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 각각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게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게 배상하라고 확정판결했다. 두 기업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법원은 다시 국내 자산 압류 명령을 내린 상태다.
 
외교부는 지난 6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아래 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지연이자를 포함한 배상 판결금 약 40억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재원 조성에는 포스코 등 국내 기업이 참여하고, 일본 가해 기업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는 우리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했다. 외교부는 "끝까지 판결금 변제를 수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안다"고 밝혔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에선 채권자인 피해자가 거부하면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고, 공탁도 무효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7일과 8일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수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민법학자 4명과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따져봤다.
 
[쟁점①] 피해자 거부해도 제3자 변제?→"특약 없으면 가능" vs. "채권자 거부권"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자,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 참석자들이 할머니들을 응원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가장 큰 법적 쟁점은 채권자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거부하는데도 일본 가해 기업을 배제한 재단의 제3자 변제가 가능하냐다. 현재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 제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당사자 거부권'을 명시했다. 여기서 당사자는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도 포함된다.

돈을 주는 '금전채무'의 경우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원칙'에는 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없지만, 채권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서로 의견이 갈렸다.
 
- 당사자인 채권자가 거부할 경우에도 '제3자 변제'가 가능한가?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채권자의 수령 거절 의사는 채무자와 제3자를 구속하지 못한다.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의 '의사표시'는 합의 또는 약정을 말한다. 이는 주로 대체적 작위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편집자주: 특정 행위를 할 채무)에 적용되며, 금전채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제3자가 제공한 변제를 채권자가 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으면 공탁 요건이 충족된다. 채권자가 수령을 거절할 때에는 공탁하면 그만이다. 공탁으로 채무자는 변제 의무를 벗어난다."
 
박수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누군가 채무자 대신 돈을 갚겠다는데 채권자가 받기 싫다고 하는 사례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유명 가수 공연처럼) 반드시 채무자만 이행해야 하는 채무도 있지만, 금전 채권은 명백하게 네 돈 아니면 안 된다는 당사자 간 약정에 기초한 채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갚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익명을 요청한 C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아래 C) : "정부가 민법 제469조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제1항이 제3자 변제가 허용된다는 원칙인 건 맞지만 채권자 이익을 고려한 것이다. 통상 금전은 누가 주든지 상관없어 그렇게 규정했을 뿐, 채권자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어서, 제3자 변제가 무조건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단서 조항에서 의사 표시는 특약이 있는 경우를 말하지만, 이번 사안(강제동원 피해 배상)은 특약이 없어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제3자가 변제했다고 해서 채권자가 다 받아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했을 때 다 받아야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견해 대립이 있을 수 있지만, (채권자와 계약관계가 없는) 제3자는 다르다. 제3자의 급부를 받을지는 채권자의 자유다. 특히 법률상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변제하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채권자의 '정당한 수령거절' 가능성도 고민해 봐야 한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제3자가 (구상권 청구 없이) 남의 채무를 대신 변제해주는 건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 지금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어쨌든 우리 민법은 당사자 의사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 규정의 의미가 처음에 채권을 성립시킬 당시에 당사자 간의 합의로 제3자 변제를 불허한 경우에만 적용되는지, 아니면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처럼 채권 발생 후에 제3자 변제 불허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적용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어쨌든 지금 법적으로는 당사자 의사가 명백하면 제3자 변제가 안 되는 걸로 명문화돼 있는데 정부에서 좁게 해석하고 싶은 것이라고 본다. (정부는) 채권 성립이 되기 전에 미리 계약에 그렇게 정한 경우에만 제3자 변제가 안 된다고 보고, 불법행위 채권은 무조건 제3자 변제가 된다고 해석하고 싶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민법 명문상 분명히 당사자 의사에 반할 수 없다고 돼 있어, 그 취지를 고려하면 당연히 (채권자 거부시) 안 되는 걸로 봐야 한다고 본다."
 
[쟁점②] 법정채권은 누구나 변제 가능? → "그런 유력 학설 못 들어봐"
 

정부, '강제동원 피해 간접보상' 공식화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것이 가능하다며 향후 수령에 동의를 구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이 방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1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모습. ⓒ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법률고문으로 정부를 대변하고 있는 최우균(법무법인 자유) 변호사도 지난 1일 12일 외교부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채권자들이 재단 변제를 원하지 않으면 재단이 변제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대법원 확정 판결에 의해 발생한 채권은 약정채권이 아니고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사적 자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당사자가 채권 추심을 반대해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게 유력한 학설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반면 강제동원 피해자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7일 <오마이뉴스>에 "손해배상 불법 행위는 법이 정한 채권(법정채권)이기는 하지만 단독 행위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 표시는 채권자 일방의 의사 표시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타당하다"면서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사적 자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정부 쪽 주장은 민법 조문을 축소해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법학자들도 정부쪽 변호사가 주장하는 '유력 학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진기 : "학설은 확인되지 않지만, 제3자가 유효한 금전채권을 대신 갚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손해배상 속에는 사과가 포함된다."
 
박수곤 : "민법 조문 관련해서 해설해 놓은 민법 코멘터리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C : "대법원은 실체적인 채권 존재를 확인한 것일 뿐, 손해배상 청구권은 민법에 의해 발생한다. 민법 일반 법리에 따라 규율될 뿐 유력 학설이란 건 나도 모르는 내용이고 이해할 수도 없다."
 
김제완 : "유력 학설이라는 주장은 객관성이 없다. 불법행위 법정채권에 대해 제3자가 대신 갚는다고 하는데 채권자가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는 학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서는 채권자로서 자기가 채무자 아닌 제3자로부터 변제를 받으면 이상하게 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흔히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그런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유력 정치인이 재판에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서 1억 원을 받게 됐을 때, 채무자인 피고 대신 북한 노동당 산하 조총련에서 갚겠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 정치인이 조총련의 제3자 변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쟁점③] "판결금 변제 거부해도 공탁 가능" → "제3자 변제 적법성부터 따져야"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해법 발표 강행 규탄 긴급 항의행동’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이 박진 외교부장관 발표에 맞춰 부부젤라를 불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외교부는 피해자가 판결금 변제를 수락하지 않아도 공탁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피해자 쪽에선 재단이 대신 갚을 자격이 없어 공탁이 무효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 채권자가 공탁 무효를 주장할 경우, 법원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나.
 
이진기 : "제3자의 변제 제공이 유효하므로 채권자는 공탁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 수령을 바라지 않는 채권자는 채권을 청구하지 않아야 한다. 한편 채무자(미쓰비시 등)가 반대하지 않으면 이해관계 없는 제3자도 변제할 수 있고(제469조 제2항), 이 사건에서 채무자의 반대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수곤 :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할 경우 공탁하는 건 충분한 사유가 되는데, 법원에서 공탁 무효 주장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공탁은 채무 변제를 목적으로 돈을 갖다 놓는 것이어서 제3자가 변제하든 채무자가 변제하든 상관없다. 제3자가 변제할 때도 채무자가 반대할 상황이지 채권자가 반대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C : "정설은 없다. 제3자 변제가 적법하다는 걸 전제로 공탁이 적법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인데, 나는 채권자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제완 : "변제 공탁이 유효인지 무효인지는 결국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제3자의 변제를 유효하게 보느냐에 달렸다. 법원에서 재단이 채무자 대신 갚을 자격이 있고 채권자가 거부했다고 본다면 변제 공탁도 유효한 것이 될 것이고, 반대로 이와 같은 제3자 변제는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 변제 공탁도 효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채권자 싫다는데 제3자가 갚겠다는 건 비정상적인 일"
 
이처럼 민법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채권자가 거부하는데도 제3자가 채무를 변제하는 일 자체가 드물어 법원 판례도 없고, 학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제완 교수는 "지금까지 이 쟁점에 관한 확립된 이론이나 판례가 없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채권자가 싫다는데 제3자가 굳이 나서서 갚겠다'는 일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이는 결국 이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식이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금전채권에는 꼬리표가 없으니 채권자가 거부해도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일부 교수 의견에 대해, "그건 '법률 해석'이 아니라 '관행'을 말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채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채권 만족이니까 돈을 받으면 끝이라는 게 관행이었고 그동안 분쟁이 되지도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명문으로 기재돼 있고 분쟁이 발생했으니 이 문구에 대한 법률 해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증결과] "피해자 거부하는데 제3자 변제" 특수한 상황, '판정 유보'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가 거부해도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법에는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강제동원 손해배상 채권의 경우 채권자 단독 의사표시로 거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채권자가 거부하는데도 제3자가 변제하려는 상황 자체가 특수해 법원 판례나 정설도 없고, 민법학자들 해석도 서로 엇갈리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번 팩트체크 판정은 유보한다.

"강제동원 피해자 거부해도 '제3자 변제' 법적 문제 없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판정안함
  • 주장일
    2023.03.06
  • 출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 기자회견출처링크
  • 근거자료
    민법 제469조(제삼자의변제), 국가법령정보센터자료링크 최우균 변호사(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법률고문) 발언, 외교부·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주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2023.1.12)자료링크 강제동원 피해자 법률 대리인단 정부안 반박 기자회견(2023.3.6) 오마이뉴스 보도자료링크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3.3.7)자료링크 박수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3.3.7)자료링크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3.3.8)자료링크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강제동원 피해자 법률 대리인),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2023.3.8)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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