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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뜯는 17살 산골 소녀의 꿈은 "국악 세계화"

전북 순창군에서 서울로 유학... "내 가야금 소리, 세계에 울리고파"

등록 2023.03.09 16:53수정 2023.03.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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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을 연주하는 홍유경 학생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 유희경

 
"세계 어디를 가도 가야금 소리가, 국악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케이-팝(K-POP)과 방탄소년단(BTS) 노래에 국악이 조금씩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국악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올해 17살, 서울 금천구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1학년에 진학하는 홍유경 학생이 전한 당찬 포부다. 유경 양은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제가 공부하는 가야금 소리가 세계에 울려 퍼지는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대부분 "판사", "의사", "아이돌" 등 직업명이나 "○○대학교 입학" 같은 대학교명이 나온다. 하지만 유경 양은 가야금을 전공으로 국악을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 "국악 세계화에 이바지하는 국악인"을 꿈으로 내세웠다. 단순히 직업으로서 국악인이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국악인으로서 꿈의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국악인 부모 덕에 4살 때 국악 접해

유경 양은 갓 17살이 된 소녀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진지했다. 유경 양은 "(국악인으로 살아오신)부모님 덕분에 4살 때 국악을 접했던 게 기억난다"고 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국립국악중학교 시험을 봤다가 떨어진 게 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이라고도 했다. 이어 "국악중학교 낙방하고 3년 동안 노력해서 국립전통예술고에 입학하며 아픈 기억을 한 방에 치유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28일 오후 5시 30분 전북 순창군 복흥면 추령마을에 자리한 자택에서 홍진기·유희경 부부와 3자매 유경(17)·유민(14)·세영(11) 가족과 마주했다. 부부는 복흥면 알음알음농악단 운영지기를 맡고 있으며 복흥면 소재 동산초등학교에서 국악 강사로도 활동하는 국악인이다. 3자매는 큰언니 유경 양을 포함해 해금 켜는 둘째 유민 양, 소리꾼이 꿈인 막내 세영 양 등 국악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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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을 연주하는 홍유경 학생과 장구로 장단을 맞추는 아버지 홍진기씨. ⓒ 유희경


유경 학생은 어떻게 국악을 접하게 됐을까. 어머니 유희경씨가 대답을 거들었다.


"유경이는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로 이사 갔다가, 순창에 와서 자랐어요.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장구를 접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야금, 3학년 때 해금을 했어요. 저희가 유경이한테 국악을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저, 국악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하더니 그 뒤부터 자기가 알아서 공부했어요."

품성 좋은 젊은 스승에게 가야금 공부

순창군 복흥면 소재 동산초등학교를 졸업한 유경 양은 집이 정읍시에 인접한 탓에 순창군내 중학교 대신 정읍여중으로 진학했다. 유경 양은 정읍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접했다.

"정읍으로 중학교를 갔더니 국악 하는 애들이 꽤 있더라고요. 가야금 같은 경우는 전공을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고 대중화되어 있었어요. 정읍사국악원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야금반, 판소리반, 대금반, 무용반이 있었어요. 저는 가야금을 공부했죠."

어머니 유희경씨는 "유경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부부)가 다니는 대학원 교수님과 인연이 돼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됐다"면서 "국악 공부는 어느 시기에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중요한데, 유경이는 운이 좋게도 정말 품성 좋은 젊은 스승한테 가야금을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달앱' 없는 산골 소녀

유경 양에게 고등학교에서의 목표를 물었다. 분명한 답이 돌아왔다.

"한 학년에 180명 정도 되는데,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중학생 대회에는 없었지만, 고등학생 대회부터는 있는 장관상(문화체육관광부)을 받고 싶어요. 저는 걱정은 딱히 안 하고 그냥 겪어보고 힘들면 그때 결정하는 편이에요. 제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못 받았구나 그러면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요."

유경 양은 "좀 해이해질 때 한 번씩 채찍질하지만, (연주가) 잘 되는 날이 있으면 저한테 당근도 준다"면서 "가족이랑 어디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충전한다"고 웃었다. 국악 공부하는 것 말고 평상시 쉴 때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주로 유튜브 채널 먹는 거를 많이 봐요. 재미있는 영상도 찾아보고, 요새는 동생들이랑 같이 게임도 하고 그래요."

먹방과 게임 이야기를 할 때야 비로소 17살 소녀다웠다. 어머니 유희경씨는 이 대목에서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읍여중 학생들 중에서 배달앱이 없는 유일한 학생이 유경이에요. 여기(복흥면 추령마을)는 근처에 뭘 배달시켜서 먹을 수 있는 데가 없거든요. 여기가 정읍시하고 맞닿은 순창군이지만 순창읍이나 정읍시하고는 완전히 다른 산골에 사는, 시골 소녀랄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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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병대 체험하는 열여섯 살입니다." ⓒ 홍유경


"장학금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요"

유경 양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북본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예술 분야 '초록우산 전북 아이리더'로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선정됐다. 또한 복흥면 지역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았다.

"가야금과 작곡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훌륭한 가야금 연주자, 작곡가가 돼서 세상에 없는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고, 학생들도 잘 가르쳐보고 싶어요. 제가 장학금을 많이 받았는데, 나중에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유경 양은 끝으로 다시 한번 국악의 세계화를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몇 년 전(2020년 10월) KBS <불후의 명곡> 국악특집에서 가야금 연주자로 트로트 신동 김태연과 함께 무대를 꾸몄는데요. 그 때 음악감독님께서 '자신이 본 가야금 연주자 중에 최고였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국악이 뼛속까지 자리 잡은 저는 국악 하는 게 좋아요. 국악이 어렵다는 생각을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케이팝처럼 전 세계 어딜 가도 국악이 들리게 하고 싶어요."

인터뷰 다음 날인 3월 1일, 유경 학생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주하며 두 동생과 앙증맞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산골에서 자란, 한창 꿈 많은 산골 소녀의 서울 유학 생활은 어떻게 펼쳐질까. 많은 관심과 응원은 유경 양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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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기숙사 입주 후 두 동생과 함께 찰칵~~. ⓒ 유희경

덧붙이는 글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3월 8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홍유경 #가야금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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