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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70% 죽었는데"... '응애' 탓만 하는 정부, 농민들의 분노

[주장] 응애 창궐 등도 기후변화 영향인데... '방제약 사용 준수' 운운한 앙상한 대책만

등록 2023.03.10 15:53수정 2023.03.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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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3.3.9 ⓒ 연합뉴스

 
"벌이 70%가 죽었는데 어떻게 자연재해가 아니란 말인가."

경남 산청에서 온 양봉농민 강대우씨의 외침이다. 지난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앞에는 꿀벌 농가 약 5000명(주최 측 추산)이 집결한 대규모 항의집회가 열렸다.

발단은 지난 달 발표된 농식품부의 꿀벌 대책 때문이다. 지난 2월 22일 농식품부는 '꿀벌 피해 농가의 조기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벌통 감소율은 전년 대비 8.2% 수준으로 꿀벌 피해 상황은 양봉산업 기반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기후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성도 입증되지 않았으며, 핵심원인은 방제약에 내성을 가진 응애(진드기)의 창궐로 여기에는 방제약 사용법을 준수하지 않은 농가들의 관리 잘못도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꿀벌피해 상황은 지역별로 다르고, 농가별로도 편차가 커 일률적으로 피해를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양봉산업 기반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부 농가에서 사육 봉군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이를 엄중히 보고 피해 극복과 사육기반 회복에 업계와 함께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꿀벌피해 발생은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장기간 특정 성분(플루발리네이트)의 방제제가 널리 활용됨에 따라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확산되었고, 사육 중인 꿀벌에 피해를 입혔다.

또한, 농가들이 방제 적기인 7월*에 꿀,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등 양봉산물 생산을 위해 방제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응애가 이미 확산된 이후 방제제를 과다하게 사용해 꿀벌 면역력을 낮춘 것도 피해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판단된다. 양봉장 사양관리도 관행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방제제 사용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도 방제 효과를 떨어뜨려 피해를 키웠다. 일각에서 피해 원인으로 추정하는 기후변화는 이번 꿀벌피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농식품부 보도자료, 2023년 2월22일)

이에 대해 농민들은 '정부가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수십 년간 똑같이 벌을 키우던 농민들이 이유 없이 벌이 죽어나가 발을 동동 구르는데 기후변화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가 전국 회원(30벌통 이상 규모 농가)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전국 벌통 153만9522개 가운데 꿀벌이 폐사하거나 사라져버린 벌통 수는 87만9722개(57.1%)에 달했다.

벌통 하나 당 꿀벌을 2만~3만 마리로 계산하면 적어도 176만~264만 마리 꿀벌이 죽거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윤화현 양봉협회장은 "아직 집계는 되지 않았지만, 겨울 전에 남은 벌통의 50%~100%가 죽었다는 농가가 많다"며 "올해 피해는 지난해보다 클 것"이라고 했다(중앙일보, 2023년 3월 9일 보도).


꿀벌 실종 사건은 '생태계 붕괴'의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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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3.3.9 ⓒ 연합뉴스

 
"30년 넘게 양봉을 한 동네 어르신도 평생 꿀벌이 이렇게 사라진 경우는 처음이라더라. 이런데도 정부는 농가 탓인가." (강대우 양봉농민, 경남 산청)

"최근 3년 사이 기후변화를 크게 체감하고 있지 않나, 식물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해 식생이 변화했는데 벌들이 여기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아카시아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아 벌이 꽃을 못 찾기도 한다" (김귀만 양봉농민, 강원 양구)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농식품부가 핵심 원인으로 지적한 응애(진드기) 피해 자체가 기후변화의 반증이라며 관련 논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응애 피해 규모의 증가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작년 남부 지방은 역대 최장의 가뭄을 기록했으며, 연평균 기온은 12.9도로 평년보다 0.4도 높았다. 기후변화로 응애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었다." (관련 논문 : 2021년 11월 <Scientific Reports>, Ben W. Rowland 등, 'Identifying the climatic drivers of honey bee disease in England and Wales')

그런데 필자는 농식품부의 지난 발표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똑같은 농식품부 발표자료인데 지난해 6월에 발표된 보도자료에서는 꿀벌 대량 폐사의 심각성과 이상기후의 영향으로부터 대응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밀원식물 조성 등 종합적인 양봉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던 거다.
 
'농식품부 박홍식 축산경영과장은 "이번 대책이 환경변화와 이상기온 등의 영향으로 최근 '20~'21년 벌꿀 흉작과 올해 초 발생한 월동꿀벌 피해 등으로 위축된 우리 양봉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꿀벌의 공익 가치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라면서 "이번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해서 농진청, 산림청, 지자체, 양봉농업인 단체․농협, 자조금 관리위원회 등과 함께 양봉산업 종합대책 추진단 구성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농식품부 보도자료, 2022년 6월7일)

산림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꿀벌들이 꿀을 딸 밀원식물 조성에도 힘쓰겠다고 발표했던 농식품부는 왜 불과 8개월 만에 기후변화 연관성도 인정하지 않고 농민들 방제약 사용법부터 지키라는 식의 앙상한 방향의 대책으로 선회한 걸까?

지난해 꿀벌 실종 사건에 대해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이게 생태계 붕괴의 시그널'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기후에 가장 민감한 작은 곤충이 어느 날 갑자기 대량으로 사라질 만큼 우리 환경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기에, 이제는 모두가 힘을 합쳐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난 2023년의 농식품부 꿀벌 대책에는 이러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고, 여전히 꿀벌을 '축산'으로만 바라보는 칸막이에 갇혀있는 것 같다. 반면 유럽과 미국 등은 우리나라로 치면 농식품부와 환경부가 함께하는 다부처, 다국가 간 위원회를 설립해 꿀벌이 살 수 있는 생태계 복원 등 꿀벌 문제를 다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꿀벌은 꿀을 생산하는 가축뿐만이 아닙니다. 육상 및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지역 등으로 보전·관리한다는 제 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 (COP15)의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목표 달성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생물입니다.

이승환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학 교수는 '꿀벌이 식물을 수정해 우리에게 주는 경제적 가치는 양봉산물 시장규모의 140배로, 우리나라 양봉산물 시장규모가 약 5000억 원 정도라면, 화분 매개를 통한 꿀벌의 생태계 공익적 기능은 70조 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꿀벌 보호로 생물다양성이 확보된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린피스가 농식품부와 환경부에 보낸 공개서한 중, 2022년 1월)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 정은혜, <"꿀벌 집단폐사, 응애 탓 말라" 양봉 농민들 분노의 삭발 왜>, (중앙일보, 2023년 3월9일)
- [성명서] 꿀벌 100억 마리 사라져도 괜찮다는 농식품부 발표…그린피스 "꿀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2023년 3월8일)
- [보도자료] 대대적 응애 방제로 양봉산업 기반 유지 추진 (농림축산식품부, 2023년 2월22일)
- [보도자료] 「양봉산업 5개년 종합계획」수립․추진 (농림축산식품부, 2022년 6
월7일)
- Ben W. Rowland 등, , (Scientific Reports, 2021년 11월9일)
#꿀벌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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