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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마저 "군대는 그렇게 일하나"... '이예람 재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

특검기소 직무유기 혐의 군검사 공판... '수사 부실' 확인된 공군 고등검찰부장 진술

등록 2023.03.13 11:29수정 2023.03.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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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충남 계룡대 정문 모습.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숨진 공군 부사관의 성추행 피해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 연합뉴스

  
"군대에선 그렇게 일을 합니까."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담당 재판장인 정진아 부장판사(형사합의26부)가 1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아무개 중령(이 중사 사망 당시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에게 한 말이다.

직전 한 중령은 '2021년 3월 8일 제20전투비행단 검찰수사관이 보낸 성추행 사건 보고 이메일을 왜 이 중사 사망(5월 21일) 이후에야 확인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훈련과 자가격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 부장판사 : "증인, 평소에 업무 메일을 잘 확인하지 않습니까."
한 중령 : "제가 2월에 부임했고 훈련과 자가격리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자가격리 이후 (돌아온 뒤) 메일이 쌓여 있어서 확인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 "(군대) 외부에선 메일을 확인할 시스템이 없습니까."
: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해서 외부에선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할 메일일수록 업무에 복귀해서 더욱 철저히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군대에선 그렇게 일을 합니까."
: "죄송합니다.
"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한 중령 증인신문을 통해 군대 내 수사 체계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검, '수사 지연' 입증에 공력

이날 공판의 피고인은 군검사 박아무개 법무관이었다. 박 법무관은 이 중사가 생전 신고한 성추행 사건의 수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의도적으로 지연한 혐의(직무유기 등)를 받고 있다. 박 법무관은 당초 국방부 검찰단 수사 때는 기소되지 않았다가 특검 수사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6명 중 1명이다.

이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박 법무관이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1조 ▲군사법원법 제228조 제1항 ▲공군 성범죄 처리지침 제10조 제2항 ▲군 형사절차에서의 성폭력범죄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훈령 제3조 제3항 등에 맞게 이 중사의 성추행 신고 사건을 수사했는지 여부다.

이러한 법·지침·훈령엔 ▲군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성폭법 제11조 내지 제 14조를 제외한 모든 공군 내 성범죄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경우 공군 고등검찰부장(이 사건의 경우 한 중령)에 사전 협의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특검(안미영 특별검사)은 ▲군사경찰이 2021년 4월 7일 송치한 사건을 박 법무관이 이 중사 사망(5월 21일) 때까지 제대로 수사·보고하지 않았고 ▲구속 수사가 원칙임에도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았으며 ▲이를 한 중령과도 사전 협의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이태승 특검보 : "이 중사 사건은 성폭법 제11조 내지 제14조에 포함되지 않은 성범죄이므로 군검사인 박 법무관은 장OO(가해자)를 구속하지 않기로 했으면 증인(한 중령)과 협의해야 합니다. 박 법무관이 증인에게 보고하고 협의를 구한 사실이 있습니까."
한 중령 : "없습니다."

: "특검 조사에서 증인은 '피해자(이 중사)가 2021년 4월 15일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성고충상담관에게 보냈고 이것이 지휘관과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 보고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인지한 사실이 없나'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맞습니까."
: "네."

: "특검 조사에서 증인은 '군사경찰 사건 접수 과정에서 노OO 상사가 피해자를 상대로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한 사실을 언제 인지했나'라는 질문에 '(이 중사 사망 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답했습니다. 맞습니까."
: "네."

: "종합하면 증인은 이 중사 사망 전 ▲이 중사가 3개월 이상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사실 ▲이후 성고충상담관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상태가 악화된 사실 ▲노 상사 등 부대 관계자의 2차가해 사실을 박 법무관에게 수시보고 등을 통해 보고받았다면, 강제추행에서 강제추행치상으로의 의율 변경이나 가해자 구속 여부 등 법률적 지시를 했을 텐데 그런 보고가 없었다는 취지입니까."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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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의 빈소의 2021년 6월 28일 모습. ⓒ 이희훈

 
변호인, "교육 못 받아" "지침 눈에 안 띄어" 변론

박 법무관 측은 '지침·규정 등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4월 7일 송치일로부터 이 중사 사망 때까지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급기야 '지침·규정 등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돼 있었는지 여부'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변호인 : "증인은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의 역할에 따라) 군검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때 언제, 누구에게,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보고하라고 교육합니까."
한 중령 : "음... 아마 코로나 전엔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코로나 때 교육이 없어서 이거에 대해 자세히 교육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 "군검사 대상으로 교육도 이뤄진 적이 없고 자료가 배포된 적도 없는 것입니까."
: "지침서는 각 예하부대에 있습니다. 아마 저희 인트라넷 페이지에 있을 것입니다."

: "눈에 잘 띄게 배너로 나와 있나요. 규정에 관해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찾아봐야 찾을 수 있는 건가요."
: "아마 자료실에 다른 자료들과 같이 있을 겁니다."

: "이게 두드러져 보이거나 그러진 않죠."
: "두드러져 보이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 "성범죄 피해자가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더욱 신속히 하도록 (공군 지침·규정에) 돼 있나요."
: "그렇게 자세히 규정돼 있진 않습니다."

: "이 사건은 4월 7일 송치됐고 (일반적 군검사 사건처리 기한에 따라) 7월 7일이 만기였다. (이 중사가 사망한) 5월 21일이 그렇게 지연된 것입니까."
: "규정에 의해선 (사건처리 기한) 이내로 보입니다."


그러자 특검은 '이 같은 이유로 군검사가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이태승 특검보 : "지침의 경우 자기 자리에 앉아 PC 등으로 얼마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중령 : "네. 자료실에 있습니다."

: "군검사는 자기 업무를 처리할 때 지침을 찾아보고, 검토하고, 점검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피해자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거나 2차가해 의혹이 있으면 이를 수사보고서에 남겨야 한다는 게 꼭 구체적 지침이 있어야만 하는 일입니까. 지침에 그런 내용까지 다 담겨야 하는 겁니까."


이어 주심인 강대현 판사의 구체적 질문에, 한 중령은 결국 '박 법무관이 제대로 수사·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을 내놨다.

강대현 판사 : "증인이 송치일이 4월 7일이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 보인 반응은 '(박 법무관은)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거야(한 중령이 이 중사 사망 다음날 윤아무개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장에게 보낸 문자)'였습니다. 사건 지연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사실관계를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한 중령 : "그런 것 같습니다."

: "(피해자인 이 중사의) 정신과적 상해, 자살 암시, 2차가해 정황 등 변수가 있을 땐 피고인(박 법무관)이 (지침에 따라 한 중령에게) 수시보고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 맞습니까."
: "어... 네."

: "군검사가 2차가해 정황을 파악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까."
: "지침에 있진 않지만 인지했다면 조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재판부 질문에 '오락가락' 증인

한편 이 재판의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생전 이 중사를 상대로 한 조사 날짜가 미뤄진 것을 박 법무관이 이 중사 사망 후 어떻게 보고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박 법무관이 피해자 요청에 의해 변경된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며 이날 한 중령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변을 이끌어냈다.
 
이태승 특검보 : "증인은 (이 중사 사망 후) 박 법무관이 제출한 보고서와 박 법무관에게 (전화 등으로) 확인한 바에 따라 '피해자 요청으로 조사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고 국회에 보고했다가, 언론 또는 국회의 지적을 받은 후 다시 사실관계를 조사했고 이후 '군검찰이 먼저 조사 일정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게 돼 (다시 국회에) 정정 보고했다는 것이죠."
한 중령 : "네."


박 법무관 측은 '한 중령 등에게 보고한 문건에는 조사 일정 변경과 관련해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는 점'을 내세웠다. 변호인이 "박 법무관의 보고서엔 문언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상당하다. (이 중사) 사망 사건 후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나"라고 묻자, 한 중령은 "아마 급박한 상황이었고 빠르게 작성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 중령은 이 중사 사망 후 조사 일정 변경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공군 수뇌부(이성용 공군참모총장,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에 보고했던 과정을 진술하며 다소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이 중사 사망 후 공군 수뇌부는 국회 국방위 출석 및 국방위 소속 의원에게 대면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요청으로 조사가 미뤄졌다'는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 중사 사망(5월 21일) 이후부터 국회에 설명(6월 2일)하는 시기 동안 왜 진상 파악이 안 됐는지 한 중령에게 물었고, '책임 소재가 단순히 박 법무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 중령, 더 나아가 공군본부 수뇌부에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중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이어가다 급기야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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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었다. 방청석의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퇴장하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 중사 아버지 "이런 사람들에게 예람이가..."

정진아 부장판사 : "(국회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측 요청에 의해 조사 일정이 변경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네요."
한 중령 : "네."

: "근데 (한 중령이) 전익수 실장에게 (6월 2일 보고한) 보고서를 보면 '피해자가 요청해 조사 일정이 연기된 것'처럼 적혀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왜 그렇게 작성됐습니까."
: "그때 군검사(박 법무관)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 "(그게 잘못됐다는 걸) 확인했다면서요."
: "당일은 (몰랐습니다)... 정확히, 전체적인 건 (국회에 보고하기) 직전에 알았던 것 같습니다."

: "왜 (알면서도) 보고가 늦어졌습니까. (한 중령이 박 법무관에게) 6월 1일 0시라는 밤늦은 상황에서도 전화할 정도로 급박했던 것 아닙니까." 
: "당시는 아마 박 법무관에게 물었고, (이후 전화한) 이OO(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왜 잘 모른다고 하던가요."
: "일정을 정할 때... 잘 기억이 안 납니다."

: "기억해보세요. 급박하고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납니까. 급박해서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급박했으니까 기억해야죠."
: "아마... 정말 죄송한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급박해서 여러 번 전화를 했던 거 같긴 한데."

: "이OO에게만 묻고 박△△(또 다른 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에게 묻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박 법무관이 그렇게 (피해자 요청에 의해 조사 일정이 변경됐다고) 대답했고..."

: "박 법무관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 "(피해자와) 협의해서 변경했다고 대답했습니다."

: "그걸 믿었다는 것입니까."
: "그런 것 같습니다."

: "김□□(피해자를 상담한 성고충상담관)와는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 "아뇨."

: "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 "공군본부와 예하부대가 멀고 조직도 나뉘어져 있어서..."

: "묻고 싶은 것의 핵심은 이겁니다. 증인은 (조사 지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고 파악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공군본부 법무실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문제될 만한 부분을 일부러 쓰지 않거나 더 조사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 "그런 것 아닙니다."

: "그럼 능력부족이고 업무태만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 "증인의 업무는 무엇입니까."
: "군검찰 조직을 교육하고..."

: "군검사 경력도 없고 지침도 잘 모르는데 교육할 수 있습니까."
: "저는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실제 교육은 보통검찰부장이나 군검사 경력이 많은 분들이 합니다."

: "교육을 기획한다... 그럼 증인이 군검사들이 사건을 보고하고 의논해올 때 대답해줄 만한 능력이 부족하겠네요."
: "...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날 법정을 찾은 이 중사 유족은 공판 내내 탄식을 쏟아냈다. 이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는 재판 말미 발언권을 얻어 "우리 예람이가 (성추행 신고 후 사망까지) 81일 동안 이런 사람들 앞에서 괴로움을 당했다는 것에서 너무나 분노가 치민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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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람 #중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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