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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반기가 '영어·수학'이라면, 후반기는 '예체능'

은퇴 이후 지루했던 인생... 나를 살린 색소폰 연주와 수채화

등록 2023.03.13 10:36수정 2023.03.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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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도시 생활에 적응은 어려웠지만 예체능의 낯섦은 더 힘겨웠다. 영어, 수학은 노력으로 가능했지만, 미술과 음악은 해결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비만 있으면 행복했던 시절, 감히 미술과 음악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친구들은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과외를 받는다 했고, 음악과 미술 레슨을 받는다 했다.


미술과 음악도 과외를 받는다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중학교에서 파스텔이라는 것을 경험해봤고 스케치북을 알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신기했지만, 어설픈 그림 솜씨에 늘 핀잔을 들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던 노래는 기말고사를 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중학교 시절이 마지막 미술시간이었고, 마지막 고등학교 음악 시간도 오직 시험을 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대학 진학을 위한 학교, 음악과 미술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씁쓸함을 안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노래방에선 노래 솜씨도 볼품이 없었고, 여행길에 찾던 미술관도 건성이었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맺힌 음악과 미술을 해 볼 수 없을까? 남들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할까? 고단한 하프 마라톤 후의 후련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통쾌함이었다. 미술과 음악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 아닌가?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다

바쁜 일상 중에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우선, 한 가지 악기라도 해보고 싶어서다. 대학시절 하숙집 기타 실력이 전부였던 사람이 고민 끝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20여 년 전에 거금 100만 원으로 색소폰을 구입한 것이다. 악기 연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음악과 한 번 붙어보자는 무모함이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에 발목이 잡혔고 또 몇 년이 흘렀다. 다시 세월이 흘러간 후, 어떻게 할까? 이왕 시작한 것을 끝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색소폰 연습을 시작했다. 전문가에게 레슨도 받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습을 했다. 빈 노래방을 전전했고, 인적 드문 강가를 서성였다. 한동안의 연습 끝에 색소폰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동호회를 찾아 나섰다. 색소폰 동호회, 지금은 많은 곳에 존재하지만 찾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어렵게 동호회 사무실을 찾아냈고 저녁이면 연습실을 수없이 찾았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것보단 훨씬 행복했고, 서서히 색소폰 연주에 빠지게 되었다.


수채화에 발을 들여놓다

색소폰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미술의 한도 풀고 싶었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얻은 지식이 미술에 관한 전부의 재산이었다.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어렵게 찾아간 화실은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야 하는 감내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술에 한을 안고 아내와 함께 꾸준히 드나들었다. 서서히 공모전에 응모하며 회원들과 어울려 전시회를 열었다. 일 년을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 4월경에 수채화 전시회가 있으며 11월에는 색소폰 연주회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다던가? 쉬운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 색소폰 연주를 하면서 그렇게도 어려운 박자 감각이었다. 반박자가 어려웠고 한 박자 반이 더 어려웠다. 수많은 고민 끝에 드럼까지 익혀야 했다. 물감과 물의 배합이 쉬울 수 있다던가? 물과 색깔의 조화는 신비할수록 어려웠다. 수채화의 신비한 색의 조화에 빠져들었고, 색소폰 합주에 젖어들었다.

시간 나는 대로 색소폰 연주와 수채화에 심혈을 쏟았다. 색소폰 연습실과 화실을 드나드는 사이 세월은 흘렀고, 삶의 변화는 명예퇴직으로 몰아갔다. 버틸 수 없는 학교 현장이었다. 막막하던 은퇴 후의 삶이었다.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무한정 얻게 된 노년의 시간, 그 속에는 음악과 미술이 있었다. 원한 속에 시작한 미술과 음악이 있었다.

인생 후반기엔 예체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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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과 함께하는 연말 색소폰연주회 색소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하는 연말 색소폰 연주회 모습이다. 일년간 색소폰 합주를 연습하여 연말엔 가족, 친지들 초청해 가족음악회를 한다. 지난해 150여 명이 초청되어 연주한 연말연주회 장면이다. ⓒ 박희종


회원들과 어울려 일 년간 합주 연습을 한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연말 연주회를 위해서다. 열심히 화실을 드나든다. 아내와 함께하는 수채화, 전시회와 공모전 출품준비를 위해서다. 어설픈 색소폰 연주는 뗄 수 없는 삶이 되었고, 수채화는 삶의 활력을 주는 즐거움이다. 인생 전반기에 영어와 수학이 필요했다면, 인생 후반기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이 필요했다. 끊임없는 운동과 연결된 하루의 삶엔 음악과 미술이 있다.

한풀이를 위해 시작한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는 운동과 함께 노년의 즐거움이다. 미술과 음악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만들어 준 소중한 삶이다. 음악, 미술과 함께 전원에서 살아가는 고희의 청춘, 다른 빈 가슴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봄에 맞이하는 수채화 전시회, 가을에 연주하는 색소폰은 일년을 살아가는 재미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영어와 수학이 필요했다면, 후반기엔 예체능이 최고의 과목이었다. 색소폰과 수채화를 어떻게 시작했을까? 예체능과 함께 살아가는 은퇴 후의 삶을 기록한 글이다.
#색소폰연주 #수채화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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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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