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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이야... 2.7그램짜리 공의 귀환

직장 생활에 큰 활력이 된 사내 동호회 활동

등록 2023.03.16 08:23수정 2023.03.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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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한 직장 생활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재미 거리가 분명 있다. 퇴사가 열풍이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 재미 거리가 계속 회사를 다닐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여기에 18년 차 직장인의 재미를 전격 공개한다. [기자말]
지난달 말에 사내 연락망으로 메모가 하나 왔다. 열어보니 탁구 동호회 활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앞으로 두 달에 한 번 모여 탁구 시합도 하고, 우승자에게 포상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첫 시작은 3월 첫째주 목요일이었다.


감회가 새로워 한참 동안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동호회 활동이 중단된 지 3년 만이었다. 의견란에 참석 여부를 남겨달라고 했더니 회원들은 긴 문장으로 답하며 그간의 소회를 담았다. 나 역시도 '참석'이라는 단어 뒤에 설렘을 듬뿍 담아 반가운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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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과 탁구 라켓 탁구공과 탁구 라켓을 들고 세 달에 한번 사내 동호회 활동에 참여했다. ⓒ Unsplash

 
드디어 당일 회원들이 탁구장에 모였다. 아직 마스크를 벗을 순 없었지만,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12명이 모여서 6개 팀으로 나뉘어 풀리그로 복식경기를 했다.

"이야. 왜 이리 공이 안 맞아."
"신대리 아직 살아있네. 날아다니는데."
"박 과장 잘 좀 쳐봐. 계속 헛방이야."
"앗싸.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탄식이 오갔다. 다들 오래간만에 쳐서인지 처음엔 몹시 헤매었다. 그러면 어쩌랴. 이렇게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2시간여의 혈투를 마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 운동복, 양말 할 것 없이 모두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우승팀과 준우승팀 시상이 이어졌다.

우승 상품은 탁구 전용 가방이었고, 준우승 상품은 탁구라켓 라바였다. 나머지 회원은 손목밴드와 양말을 참가상으로 받았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뒤풀이했다. 차가운 맥주는 그날의 피로를 날려 보냈다. 물론 다음날은 온몸 곳곳이 쑤셔 종일 힘들었지만.

내가 탁구를 시작한 이유


2019년도 하반기에 지금 근무지로 발령 난 후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업무로 고전했다. 평소 사람을 대하는 교육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종일 컴퓨터와 씨름해야 하는 예산 업무가 낯설고 힘들었다. 실수가 반복되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규 전입 직원을 대상으로 동호회를 신청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마음의 여유도 없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혹여나 해서 읽어보았다. 당구, 탁구, 등산, 문화 체험 등 다양한 동호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탁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한때 동네 탁구회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도 있었고, 공을 넘길 정도는 되었다. 신청서에 탁구라고 적어 회신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면 좋다는 말처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될 듯했다. 더불어 주변 동료들과도 친해질 기회이기도 했다. 탁구란 종목은 단식뿐 아니라 복식도 있어서 파트너와의 합이 중요했다. 같이 운동하며 땀 흘리면 금세 가까워지는 경험을 여럿 했었다.

처음 탁구장에서 만났을 때 회원은 20명 남짓 되었다. 사내 동호회치고는 꽤 많은 인원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근처 탁구장을 빌려서 퇴근 후에 모여 시합도 하고 끝나면 뒤풀이도 하면서 친분을 다졌다. 회사 지하엔 탁구대도 있어서 시간 맞는 직원들과 틈틈이 쳤다.
 
동호회 활동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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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g의 조그만 탁구공- 비록 2.7g의 가벼운 공이지만 이를 통해 삶의 고민을 덜어낼 수 있었다. ⓒ @Pixabya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주변 동료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부서뿐 아니라 얼굴만 알고 있던 다른 부서 직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교류하게 되었다. 공적인 사이에서 사적인 사이로 넘어가니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전에는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대했던 운영과 A 과장도 다소 깐깐했던 총무과 C 과장도 같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부터 훨씬 부드럽게 일 처리를 도왔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기에 관계가 필수로 수반되었다. 가끔 쉴 때 차도 마시고, 시간 되면 맥주도 한 잔 하면서 관계를 공고히 했다.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2.7그램의 가벼운 공이지만 온 힘을 다해 넘기고 받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잘 치면 기분이 좋았고, 실수하면 또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땀을 잔뜩 흘리고 난 후 샤워하면 상쾌함이 발아래부터 머리끝까지 퍼졌다. 그 힘으로 힘든 나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땐 잠시 일을 내려놓고 퇴근 후에 동료들과 탁구를 하며 의도적으로 환기했다.

코로나19가 앗아간 동호회 활동

코로나19로 2020년 상반기부터 동호회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다. 집합 자체가 금지였고, 더구나 함께 땀 흘리는 운동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조금 나아진 후에는 사내 지하 탁구장에서 3~4명 정도의 소규모로 모여 탁구를 했었다.

얼마 전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었고, 조만간 대중교통 내 착용 의무 해제를 논의할 예정이라니 본격적으로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될 듯하다. 벌써 사내 게시판에 기존에 활동하지 않은 동호회를 파악하고, 신규 동호회 신청을 받는 등 재정비에 돌입했다.

직장 내 업무로 얽힌 사람들과 퇴근 후에까지 만나는 일은 솔직히 부담이다. 특히 회식처럼 술 마시는 일조차 업무의 연속이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동호회 활동은 비록 직장이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이 모여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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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민정과 그 주변 사람들이 모여 해방 클럽을 만들었다. ⓒ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중요한 점을 시사했다. 강압적 동호회 활동 권유를 피하려고 주인공 미정은 비슷한 상황의 몇몇과 해방 클럽을 만들어 각자가 생각하는 해방의 의미를 나눴다.

오죽하면 동호회 자체에서 해방하는 모임을 만들었을까 돌이켜보며 동호회 활동이 절대 업무의 연장이거나 누군가의 강요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혹여나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나으리라.

그렇지 않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동호회가 있다면 가입해서 활동해 보면 좋겠다. 코로나19가 단절시킨 관계도 회복시키고 단조로운 회사생활에서 벗어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동료들과 어울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사내동호회 ##탁구 ###시합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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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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