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완연한 제주바다

등록 2023.03.14 08:17수정 2023.03.1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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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서빈백사 봄아, 어서와라! ⓒ 김민수


잠깐의 반짝 추위가 왔지만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을 이길 재간은 없을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보면 오고 감에 있어 이기고 지는 것은 없지만, 겨울이 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니 겨울이 가는 것입니다. 어둠이 물러가서 빛이 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오니까 어둠이 가는 것입니다.


제주의 바다에도 봄이 왔습니다. 봄은 바람을 타고 옵니다. 바람이 머물지 않는 곳 없듯이 바다에도 봄이 왔습니다. 봄이 오면 바다의 색은 에메랄드빛과 쪽빛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 빛에 물든 검은 화산석이 유난히도 예뻐 보이고, 파도가 몰려와 포말이라도 일면 환상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봄은 왔건만 봄을 탄 듯 마음은 우울합니다. 

봄은 바다에도 온다.
봄은 땅과 바다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온다.
사방팔방, 바람이 통하는 곳마다 봄은 온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서 꽃을 피우고 연록의 새순을 내건만,
이 시대의 봄은 더디기만 하다.
신앙의 진보도 진즉에 이루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했는데 여전히 맹아.
어두운 시대의 열사들,
그들은 스스로 몸을 던졌지만 가인에 의해 타살된 아벨이었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온갖 차별과 혐오와 싸우던 이의 죽음 앞에서
가해자들은 조의를 표하는 척 비웃고,
성서의 문자를 들이대며 두 번 죽인다. 그리고 맘몬을 무기로 세 번 죽인다.
오도된 확신.
봄바람 부는 곳마다 봄이 오듯,
영의 바람 부는 곳마다 봄이 오길,
그때, 
오도된 확신에 사로잡힌 이들이 가차 없이 부서져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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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방파제 김녕방파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한 바다에 봄이 왔다. ⓒ 김민수


우울한 이유를 자작시로 적어보았습니다. 봄기운은 완연한데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겨울이고, 어둠이 깊은 것 같습니다. 저는 3월 들어 봄을 타듯 우울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밝고 명랑하게 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제가 우울했던 까닭은 3.1절 축사에서 정부가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도 없고, 강제징용을 한 적도 없다고 우겨대는 일본의 전범기업에 대해 면죄부를 준 일, 세종시 어느 아파트에서 일장기를 달아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목사라는 사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나는 신이다>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이비 교주들과 여전히 그들을 신봉하는 신도들, 성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다 죽은 자기 교단 목사가 출신학교 예배당에서 추모제를 드리고자 하는데 장소를 불허한 어느 신학교 이야기, 오도된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 같아서 우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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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바다 에메랄드빛 세화바다에도 봄이 왔다. ⓒ 김민수

 
하지만, 우울의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오도된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봄이 오니 겨울이 가듯 맑고 바른 생각을 하는 이들, 건강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순리입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돌아가더라도 지향점만 분명하면 지금 당장에는 어려울 수 있어도 마침내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것. 희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아직 미완의 봄이라고 할지라도 희망을 먹고 지치지 않고 명랑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봄기운이 완연한 제주 바다. 봄은 기다린 시간보다 짧습니다. 마음을 빼앗겨 살다보면 어느 새 여름일 것입니다.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속세만 바라보지 마시고 자연의 변화를 보며 한 박자 쉬고 더 힘찬 걸음을 내딛는 계절이 되길 바랍니다.
#제주도 #우도 #세화 #김녕 #서빈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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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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