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충남 인권조례... 우리동네 인권지도 또 만들수 있을까

[위기의 충남인권조례, 해법은 ③] 지역사회 인권을 증진하는 방법

등록 2023.03.15 14:05수정 2023.03.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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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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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인권지도 제작에 참여한 당진시 정미면의 어린이, 이주민, 노인 등 당사자들이 인권지도보고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이진숙

 
"학교에서 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는 줄 아세요?"
"직업에 귀천이 있으니까, 있으니까 없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얼마 전 종영한 한 드라마의 대사다. 사실 우리 사회 도처에는 이미 사회적 신분, 나이, 장애 유무 등에 의한 차별이 널렸다.

"원래 좀 사는 집 애들은 학폭에 연루돼도 다 빠져나가잖아."
"장애인이 안 오니까 장애인 화장실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해야지."


익숙한 관행과 제도를 다시 보기 시작해야 인권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부유한 집 자녀들만 특혜를 받는다면 학폭 피해자는 억울하지 않을까. 장애인이 안 오는 게 아니라 화장실이 없어서 오히려 못 오고 있는 게 아닐까. '학생답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이런 의문으로 기존의 문법을 흔들어 보는 순간, 사회에서 밀려나 자기 '몫'의 소리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얼굴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연'과 '원래'의 세계에 가려진 차별과 불평등을 마주할 힘은 한 개인이 마음만 먹는다고 생기는 건 아니다.

평소 품었던 의문이 '어떤 계기'를 만나 확신으로 변하고, 그 확신이 자기 실천을 통해 일상의 작은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작은 변화를 경험하며 자력화된 개인은 더 큰 변화를 만들고자 여러 시도를 감행하고,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 인권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는 힘이 된다.

지역의 인권단체는 지역주민이 마주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 과정을 함께 한다.


우리동네 인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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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정미면 인권지도에 참여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 ⓒ 이진숙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은 작년 충청남도 인권 기본조례 제12조에 의거 효율적 인권보장 및 증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충청남도 인권보호 및 증진활동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지역주민이 직접 동네를 돌며 이웃과 공동체를 인권의 눈으로 살펴서 지도에 담아내는 '우리동네 인권길라잡이가 만드는 인권지도'다.

인권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시골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이니까 "그냥 참는다"고 밝혔다. 

"우리 동네 (공공)청소년시설은 공부 할 때만 방(공간)을 빌려줘서 저같이 과자 먹고 수다 떠는 애들은 노래방이나 카페 가아죠."
"여기는 시골이라 길이 위험해서 학교 갈 때 저희가 조심해야 해요."
"인도가 울퉁불퉁하니까 휠체어 타고 차도로 나가는데 우리 때문에 승용차가 빵빵대면 미안하죠."
"장애인 화장실에 비품을 쌓아두는 건 공간 효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 충청남도 인권지도 참여자 인터뷰 중에서

기존의 사회질서가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동네를 직접 다니며 살펴보고, 동료 시민들끼리 해결 방안도 토론해보며 그 내용을 인권지도에 기록하는 '어떤 계기'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학생 청소년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우리 지역에 변화가 있어야 돼요."
"시골 주민들을 위한 안전, 건강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휠체어가 차도로 다녀서 모두가 위험해지는 건 인도를 정비하지 않은 지방정부의 책임 아닌가요."
"행정복지센터의 화장실 접근권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에게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 충청남도 인권지도 내용 중에서

이러한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은 해당지역 통장과의 면담,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민원, 같은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며 작게나마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해결을 위한 실천을 모색한다.

동시에 지역사회는 침묵으로 위장된 평화가 아닌 건강한 비판과 그에 따르는 갈등 해결 과정을 통한 지역사회의 실질적 안녕을 도모하게 된다.

물론 한두 번 단발적 사업으로 지역사회에 인권친화적 문화가 한 번에 형성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되던 따스한 햇볕에 나그네가 슬그머니 겉옷을 벗듯 지역주민 서로 간에 눈높이를 맞추고, 지역주민과 행정간 교집합을 서서히 늘려가다 보면 차별로 위축되던 사람들이 수면 위로 등장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 동네를 인권친화적 방향으로 디자인해보자고 목소리 내기 더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방정부 채무 방기하면... 고통 받는 건 지역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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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정미면 인권지도 만들기에 참여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 ⓒ 이진숙

 
지방정부의 책무는 지역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지역이라면 해당 지방정부가 그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 지역사회에서 고통받는 건 오롯이 지역주민의 몫이다.

인권단체는 지방정부의 인권 책무 이행을 견인하는 파트너다. 다양한 인권 사업을 통해, 두루뭉술한 인권제도를 구체적인 내용으로 실현해내고, 지역주민이라는 괄호에 갇힌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해 서로의 삶을 엮고 풍성하게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충남의 인권조례는 어떤 결말일지 모르겠다. 부디 지방정부의 인권 책무를 기꺼이 나눠지려는 인권단체들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다양한 인권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정인식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충남 #인권조례 #부뜰 #인권단체 #인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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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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