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낀 전설처럼 사라져 간 고향

[산·책·글] 강원도 횡성댐 수몰민 이야기

등록 2023.03.15 10:07수정 2023.03.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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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횡성 호수길을 걷다 보면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꽁꽁 언 냇가에서 굵은 철사줄 나무에 길게 박아 만든 썰매 타고 놀던 시절 많이 들었던 터라 낯선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섯 마을을 삼키고 얼어붙은 횡성 호수가 토해내는 쩡쩡 소리가 어느 순간 수몰민들이 토해내는 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 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 꿈에 가위눌리니
세상 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 곳으로 던져가며
다시 살아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째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 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 길 흘러 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 이동순, '물의 노래'



수몰민의 삶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이동순의 시 '물의 노래'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애환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수몰민의 애환을 직접 들어본 적도 없으니, 막연한 감상 정도에 머물렀을 뿐이다.

횡성댐 수몰민의 애환

1월 말 찾은 횡성호도 온통 얼음 세상이었다. 추위 탓인지 찾는 이 많지 않은 호수길 따라 걷는데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옷깃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빼면 별다른 소음이 없는 곳이라 인적 드문 호수길에서 들려오는 쩌엉 쩡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한 시간 반 정도 호수 길을 돌아와 출발 지점 망향의 동산에 도착하니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조형물 아랫부분에 수몰민들의 애환을 담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사연을 읽으면서 '물의 노래'에서 느껴졌던 애환이 울컥 되살아났다.

"중금, 부동, 화전, 구방, 포동 다섯 동네가 오순도순 둥지를 틀었던 그 아늑하던 산, 들, 내는 우리들 어머니의 품이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요, 이 땅에 터 잡아 누대를 살아오며 때로는 기쁨에 절로 즐거웠고 더러는 슬픔을 함께 나누던 우리네 얼과 혼이 깃든 삶의 터전입니다.


내 할아버지가 그랬듯 내 아버지가 대를 이어 오곡백과를 가꾸며 작은 역사를 만들어 온 이 터의 품에 안겨 다시는 그 뜨거운 숨결을 들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끼 낀 전설처럼 사라져간 우리네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한을 이 동산에 묻을 따름입니다. 훗날 우리들 아들과 손자들이 고향을 찾고 싶을 때, 조상의 그리움이 사무칠 때, 가쁜 숨 몰아쉬고 아픈 가슴 달래며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횡성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망향의 동산 조형물에 새겨진 글
 

페이스북 통해 올라온 횡성댐 수몰민 이야기

겨울 횡성 호수 길에서 느낀 소감과 얼어붙은 횡성 호수 사진 몇 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정든 땅,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몰민 이야기가 댓글로 올라왔다. 해마다 수몰민을 중심으로 망향제와 화성초등학교 동문회가 열리고 있고, 원주 단구동 유승 아파트 수몰민들을 대상으로 택지를 분양해서 지금도 수몰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고 했다. 수몰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단구동에 추모탑이 있다는 댓글도 있었다.


댓글이 인연이 되어 횡성댐 수몰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화성초등학교 시절 한치 저수지 옆 솔숲, 부동리 다리 밑, 부동리 지나 전촌리 삼거리 저수지로 소풍 갔던 이야기, 중금리와 부동리 사이에 있던 정자각 화성정 이야기, 화성초등학교 뒤쪽으로 흐르던 개울 한 가운데 바위가 있었는데 말바위 혹은 말뚝바위라 불렀다는 이야기, 학교랑 마주 보는 나지막한 언덕에 있던 천주교회 이야기, 비 많이 오면 개울 건너기가 어려워 비만 오면 조기 귀가했던 이야기. 화성초등학교 졸업한 분이 보내준 댓글에서 갈 수 없는 고향과 모교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횡성댐.
제가 살던 집도
제가 가갸거겨 배우던 학교도
쫄깃한 쫀디기 사먹던 가게도
주렁주렁 빨간 사과 열리던 과수원도
동네서 젤 높던 정미소도
모두모두 저 물속에 있네요.
자주 찾는 호수 길과 망향의 동산은
그 옛날 추억과 애달픔이네요."
#횡성 호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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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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