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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문동은의 복수

[리뷰] 인간이 되어 복수하는 그들, 너무나 고귀하여 슬픈 <더 글로리> 2부

23.03.15 11:51최종업데이트23.03.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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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포스터 ⓒ 넷플릭스

 
누군가 당신을 괴롭혀도 앙갚음하지 말라, 강가에 앉아 기다리면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올 테니. 그러나 한 사람은 강가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권선징악을 꿈꾸기에 그의 몸에 난 상처들이 지독히 알록달록했기에.
 
어린 시절에 겪은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사람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극이 마지막 장을 올렸다. <더 글로리> 2부는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이 가해자들에게 어떠한 칼춤을 선사할지 궁금증과 함께 선보였다.

시청자로서 가해자들을 산산조각 내는 문동은의 핏빛 복수를 예상했지만, 그의 칼춤은 인간적이었다. 너무나 고귀하여 슬픈 복수, <더 글로리>가 말하는 영광스러운 복수는 바로 '외면'이다.
 
외면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야
 

<더 글로리> 스틸컷 ⓒ 넷플릭스

 
문동은의 조력자이자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강현남(염혜란 분)에게는 지키고 싶은 딸이 있다. 유일한 기쁨인 딸을 잃지 않기 위해 현남은 동은의 도움을 받아 유학을 보내기로 한다. 가족을 때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옆에 어머니를 두고 가야 한다는 죄책감 속에 갈팡질팡하는 딸에게 동은은 '외면하는 게 유일한 용기'라고 말한다.

'외면', 용기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를 피한다는 본뜻과 모순된다. 하지만 모든 고통과 폭력을 마주할 수는 없다. 현남의 딸은 가정폭력에 적절히 대응하기에 어린 나이이며 엄연히 폭력을 해결해야 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도, 어머니를 대신하여 맞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한 발짝 멀어지는 것. 그리고 현재를 행복하게 채워가는 것. 상처로 뒤엎어진 과거를 적절히 쳐다보고 외면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게 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다. 그래서 동은은 딸에게 열심히 유학 생활하며 여행도 다니고 미술관도 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 내가 느낀 고통과 괴로움을 상대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러나 분노를 되새김질하는 삶은 행복하기 어렵다. 이건 나를 향한 괴롭힘에 아예 대응하지 않거나 자신이 겪은 고통을 모른 척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를 괴롭힌 상대에게 경고를 가하되, 똑같이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법. 오늘의 나를 잃지 않도록 과거의 상처를 적절히 쳐다보고 외면할 줄 아는 법. <더 글로리> 속 피해자들은 폭력과 상처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인간 같지도 않은 가해자들에겐 피해자가 인간처럼 살아가는 게 최고의 복수이다.
 
복수하지 않아서 영광스럽다
 

<더 글로리> 스틸컷 ⓒ 넷플릭스

 
문동은은 자신을 괴롭힌 박연진(임지연 분)의 약점을 안다. 그건 바로 박연진이 사랑해 마지않는 딸, 하예솔(오지율 분)이다. 하지만 문동은은 극 중에서 하예솔을 괴롭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연진과 하예솔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박연진이 자신을 괴롭힌 악마일지라도, 악마의 딸까지 괴롭히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문동은은 학교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하예솔의 눈을 대신 가려주고 그를 마주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하예솔을 괴롭히는 게 박연진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문동은은 끝내 하예솔을 외면한다. 설령 가해자의 딸일지라도, 자신이 받은 상처와 무관하며 그 또한 평범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래서 문동은은 박연진에게 복수하였지만, 동시에 하예솔에게 복수하지 않음으로써 영광스러운 복수를 마쳤다. 박연진이 멋있는 기상 캐스터도, 사랑스러운 아내도 벗어 던지며 추악한 악마로 돌아왔을 때조차 문동은은 한결같이 인간이었다. 폭력을 겪은 자신이 너무나 아팠기에, 무고한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은 그의 선택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슬프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앞으로 나아가세요
 

<더 글로리> 스틸컷 ⓒ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떠오른 그리스 신화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자 저승까지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지만, 지상의 빛을 보기 전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고를 무시하였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 현재지만, 기억하는 건 과거다. 그래서 과거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오래전에 겪은 고통과 슬픔은 매일 밤 우리를 찾아온다. 내가 받은 상처를 모조리 돌려주고 싶다가도 허망한 복수로 오늘을 저버리긴 싫어 관두는 날들이 있다.

물론 과거를 아예 등져선 안 된다. 과거의 일을 모두 외면한 채, 슬픔을 봉인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오르페우스일지 모른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앞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과거를 외면해야,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하루도 과거를 잊지 않은 문동은의 삶이 안쓰럽다. 누군가에겐 오늘을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무참한 어제가 있다. 그런 어제를 만든 사람에게 더 이상 내일을 허락하지 않고, 그런 어제를 겪어낸 사람에게 오늘을 직시하게 하는 <더 글로리> 2부. 영광을 되찾고자 휘두른 칼날은 녹슬지 않았다.
넷플릭스 더글로리 송혜교 임지연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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