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나왔나, 사람 구경하러 나왔제!"

용문오일장에서 만난 할머니

등록 2023.03.16 10:29수정 2023.03.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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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오일장 오일장 한 편에 좌판을 벌린 할머니, 필자가 보기엔 물건들이 조악하여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지는 것들이다. ⓒ 김민수


15일은 경기 양평의 용문오일장(5, 10일장)이 열리는 날, 완연한 봄이 시작된 후에 열리는 장이라 활기가 넘칠 것을 기대하고, 그 에너지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으로 용문오일장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오일장도 예전만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풍문이 그저 풍문이고 활기찬 오일장이길 기대하며 도착한 '용문오일장'은 그래도 활기가 넘쳤습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들이 많고, 시장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시장 초입에서 씁쓰름한 칡즙을 한 잔 마시고 고로쇠물로 입가심을 한 후에 시장을 돌아봅니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용문오일장, 수도권 전철 경인중앙선 용문역 앞에 위치한 까닭에 인파가 북적이지만 제가 보기에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상인들의 웃음꽃은 장사가 잘 되어야 피는 법인데, 경기 침체의 음산스러운 기운은 오일장이라고 비껴가지 않는 듯했습니다. 오일장 안에 있는 몇몇 음식점들은 유명세 때문인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지만, 시장은 활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면 좋겠습니다.

오일장도 저마다 세를 내고 사용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마다 오면 그 자리에서 그분들이 좌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분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오일장 주변 길가 여기저기에 좌판을 깔고 나와 계신 연로하신 노인 분들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분들을 보면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는 듯해서입니다. 쪼글쪼글한 거친 손은 어머니의 손 같고, 깊게 팬 주름과 검버섯도 어머니를 떠오르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늙어가는 것이겠지요.

어떤 분은 다 팔아야 돈 만 원도 안 될 것 같은 물건을 내놓고 파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저걸 누가 살까?' 싶은 조악한 물건을 내놓고 파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거 다 팔면 얼마나 돼요?"
"돈 벌려고 나왔나, 사람 구경하러 나왔제."


그렇습니다. 저 같아도 오일장이 가깝고 팔만한 물건이 있으면 주섬주섬 챙겨나와 좌판을 깔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것이 그것 같던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 것 같습니다.

이번 장날에 제 눈길을 끈 할머니, 그분의 물건이 그랬습니다. 조금은 시든 듯한 봄나물, 곯아버린 듯한 늙은 호박 반쪽, 말라도 너무 말라버린 버섯, 성해 보이는 것은 '국산들깨'도 아니고 '국 산들깨'와 비닐에 담긴 콩 같은 것들입니다. 게다가 아직 남은 겨울 추위 때문인지 헝클어진 머리칼... '저런 물건을 저렇게 파시면 누가 사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행색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한평생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들 자수성가시켰더니만, 아이들은 도시로 나가버리고, 영감은 먼저 가고, 혼자 남았는데, 구차스러워. 그래서 빨리 가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맨날 '하나님, 나 좀 빨리 데려가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셨는지 요로콤 죽지 않고 살고 있네. 오늘도 잠을 자기 전에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기도하면서 잘 텐데, 또 깨어나겠지.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여.'

한 세기 가까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분이 얼마 전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운신도 못 해서 종일 집에만 계신 분도 계신데, 장날이라고 주섬주섬 외로움의 편린이 묻은 물건이라도 갖고 나와 사람 구경이라도 하는 할머니는 행복하신 것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용문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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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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