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복 등교 금지' 통보 후 학교에서 벌어진 일

[주장] 편리함에서 학생 인권까지

등록 2023.03.17 16:54수정 2023.03.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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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올해부터 체육복 등교가 '금지'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부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금지 조치 통보는 일방적이었다. 학생들이 알 수 있는 학교의 생각은 홈페이지에 공지된 회의록 중 '새 학기부터는 생활지도를 좀 더 엄격하게 할 예정'이라는 학교장의 발언이 전부였다.

학생들의 반발은 거세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비판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자치회 임원 선거를 진행하고 있는데, 회장·부회장 전체 후보 7명 중 6명이 체육복 등교 허용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공약을 직접 내세우지 않은 한 후보도 유세 과정 등에서 체육복 등교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해서 이뤄진 결정이라면, 학생자치회 임원 선거 후보들의 반대 기류가 강했을까?

교복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체육복을 입을까

내가 아침에 교복을 입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5분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와이셔츠를 제대로 다려 입는 학생들은 더 오랜 시간과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와이셔츠, 바지, 넥타이, 조끼까지… 입는 것만 귀찮으면 차라리 다행일지 모른다. 학교에 최대한으로 오래 있는 학생의 경우, 아침 자율학습을 시작하는 오전 8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교복을 입고 있게 된다. 이렇게 14시간 동안 불편한 교복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진심으로 학교가 학생에게 가하는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능을 준비하는 3학년 학생들의 반발이 크다. 생활 패턴을 수능의 시간표에 맞추고자 하는데, 아침에 교복을 입고 나서는 생활 패턴과 수능 복장 사이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패턴까지 따질 것도 없이 편한 옷을 입고 공부하는 것이 능률이 좋은 것은 이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당연한 상식이다. '학생다운 복장'이 남들 보기 좋을지는 몰라도 학업 역량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된다. 유수의 첨단 기업들이 격식 없는 복장으로 자율성을 확보하고 창의력을 제고하려는 시도에 정확히 정반대로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체육복 등교, 편리성의 문제에서 인권의 문제까지

체육복 등교가 단순한 편리성의 문제에서 학생인권 관련 문제로 다뤄진 지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이후로 체육복 등교를 금지하는 학교에 관한 진정이 접수되면 매번 체육복 등교를 금지하는 것과 체육복 등교를 이유로 벌점을 부과하는 것 등의 행위가 모두 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인권침해이므로 일괄적으로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 학교에 아직 진정을 제기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또 누군가가 진정을 제기한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체육복 등교 금지 행위를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을 듯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일선 학교에서 가볍게 다뤄지는 모양새인데,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학교에 의무를 지우는 방식은 가볍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는 '권고를 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그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권고를 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90일 이내에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통지'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을 때도 역시 '그 이유를 위원회에 통지'해야 한다.

관련 청소년 단체들도 이런 학교들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체육복 등하교를 불허하는 각종 이유를 '핑계'로 표현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복장을 선택할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촛불청소년인권연대는 국가인권위 권고에 대해 '비상식적인 이유로 무리하게 학생들의 용의·복장을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비교육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했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학교는 묵묵부답, 구조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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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모 고등학교에서 복장 규정을 준수할 것을 안내하며, 3회 이상 복장 규정을 어길 경우 학생생활교육위원회(소위 선도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안내문 ⓒ 화면 캡처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이 개학 이후 2주가 넘도록 반발하고 있지만, 학교는 오히려 교복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선도 대상(흔히 선도위원회로 불리는 학생생활교육위원회 회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교복 수선이 어려울 경우에는 수선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확인증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의 반발이 큰 첫째 이유는 물론 체육복 등교를 원천적으로 제한한 것이겠지만, 그다음 이유는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운영에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그 흔한 설문 조사 하나를 진행하지 않았다. 체육복 등교 금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참고할 자료를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자율·균형·미래를 강조하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취임 이후 학생인권 옹호는커녕 학생의 책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학 이후 2주간 이어지고 있는 '체육복의 난'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 계속 독선적으로 교복 등교를 강요하고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말 몇몇 학생들을 선도위원회에 회부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지만, 학교는 신경 쓰지 않을 분위기다. 혹은 학교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해 체육복 등교를 선심 쓰듯 허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어떠한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우리 학교 친구들이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결국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독선적으로 내린 결정이 학생들에게, 또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음을 새삼 느낀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체육복 #학생인권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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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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