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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생활 14년 만에 이런 학교는 정말 처음입니다

전교생 스물다섯, 모르는 얼굴이 없는 작은 학교만의 특별한 장점

등록 2023.03.19 19:07수정 2023.03.1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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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가 깔려 있고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학교는 아름답다 ⓒ 이준수


강원도 양양의 하조대 해변은 서핑의 성지다. 멋진 바람이 불고, 멋진 파도가 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하조대 바다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가끔 근처의 해군 부대에서 사격 훈련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지만, 기본적으로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전교생은 스물다섯, 우리 반에는 다섯 명의 학생이 있다. 그룹 과외를 하듯 옹기종기 모여서 수업을 한다. 한눈에 다섯 명이 모두 들어오니 큰 소리를 낼 일이 없고, 개별적으로 공부를 봐주기도 수월하다. 수학 교과서와 수학익힘책을 채점하고 오답 지도를 해도 쉬는 시간까지 넘어가는 일이 없다.

큰 학교에 있다 오니 마치 다른 종류의 직장에 온 것처럼 느낌이 새롭다. 단지 업무가 폭증해서 행정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생활지도와 수업만큼은 정말 좋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서 한 사람씩 교류하는 기쁨이 상당하다.

나는 강원도 선생님 생활 14년 만에 처음으로 작은 학교를 경험하고 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밖에 흐르지 않지만, 일부러 시골 학교에 자녀를 등록시키는 학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간 나는 은연중에 큰 학교가 작은 학교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 전학 온 아이들의 이야기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학부모님이 들려주는 사연은 대략 비슷하다.

'저학년까지는 마음껏 자연을 경험하라는 뜻에서 농어촌 학교에 보냈는데, 이제 고학년이니 슬슬 공부시키려 해요.'

'작은 학교에 있으니까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친구들하고만 지내더라고요. 사회성 걱정이 돼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유다. 큰 학교 주변은 아파트촌인 경우가 많으므로 각종 학원이 성행한다. 사교육에 힘을 주고 싶은 분들에게는 선택지가 넓다고 할 수 있다. 작은 학교에서 학급 구성원이 반복된다는 점도 사실이다.


열 명이 되지 않는 인원으로 두 학급을 만들 수는 없으니 두세 명 전학생이 들어온다고 해도 큰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작은 그룹 내에서 갈등 관계가 지속되면 학교 생활이 무척 힘들어지기도 한다. 

편안한 표정을 매일 지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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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의 특장점. 교실을 있는 대로 넓게 쓸 수 있다. ⓒ 이준수

 
작은 학교의 단점으로 비칠 수 있는 특징은 똑같은 이유로 장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소박한 급식실에서 점심밥을 먹고,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 교실 쓰레기봉투를 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면서 비로소 작은 학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좁은 동네에서 서로의 집안 수저 개수를 외우는 관계라는 것은 한 마디로 '전교생이 얼굴을 알고 반말하는 사이'를 의미했다. 보통 큰 학교에 가면 고학년만 돼도 선후배 개념이 생겨서 동생들이 상급생을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위계를 따지는 상급생이 선생님 몰래 존댓말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은 학교에서는 모두가 사촌이라도 되는 양 말을 놓고 편하게 어울려 놀았다. 터울이 있는 저학년들도 언니, 오빠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설날이나 추석 때 큰집에 모여 농담을 나누는 분위기에 가깝다고나 할까. 너나 할 것 없이 장난을 치고 챙겨주는 모습이, 교사 입장에서는 꽤나 기특하게 다가왔다. 

나는 학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깔깔거리며 축구하는 장면을 여기에 와서 처음 봤다. 어쩌다 1년에 한두 번 하는 수행평가용 남녀 혼성 축구 말고, 점심밥 먹고 진짜로 "야! 공 찰래?" 해서 슛을 날리는 그런 편안한 동네 축구 말이다. 과장이 아니라 외국 교육 영화에서나 주말 풍경으로 그려지는 씬의 일부 같았다. 

아이들이 친한 이유는 단순했다. 작은 동네에서는 가구 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유치원 무렵부터 같은 학군에 해당하는 또래를 꿰고 있었다. 또 형제자매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돼 나중에는 가족 단위로 교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익명성이 당연시되는 도시민에게는 작은 학교의 결집성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나도 처음에는 살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학교에 흔한 '신경질적인 공기'가 없는 곳에서 느긋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나 보일 수 있는 편안한 표정을 매일 지을 수 있는 인생도 꽤 괜찮지 않은가. 

소위 학군지 큰 학교에서는 경쟁의식이 치열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예민하거나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견제, 번아웃, 스트레스 같은 단어가 따라붙고 교사의 생활지도 난도가 높다. 학구열이 강한 지역에 소아정신과가 몰려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기 전엔 몰랐던 작은 학교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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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 타는 랜드서핑 장비. 일반적인 스케이트 보드와 달리 바퀴의 재질과 크기가 다르다. ⓒ 이준수

 
작은 학교의 또 다른 장점은 학교에서 지원하는 체험활동이 많다는 것이다. 농어촌 지역에는 각종 복지, 특화 사업 예산이 도심지 대형 학교보다 풍부한 편이다. 수학여행을 5, 6학년이 함께 가는가 하면 전교생이 서울에 가서 단체 뮤지컬 관람을 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양양 바닷가에 있는 곳답게 생존수영과 서핑 수업도 인상적이다. 생존 수영 수업을 실내 수영장에서 하는 일반 학교와 달리 하조대 해변에서 전문업체와 계약을 맺고 진행한다. 짠맛이 혀끝을 타고 오는 진짜 바다에서 물 위에 뜨기를 하고, 서핑의 기초를 배운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는 스케이트 보드를 수준급으로 즐기는 아이도 있다. 나는 스케이트 보드의 기원이 '서퍼들이 바다에 나갈 수 없는 시즌에 물 빠진 수영장에서 즐기던 놀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 알게 됐다. 하조대와 인구, 죽도, 남애 해변 인근에는 수영 및 서핑 강습 업체가 많아서 교육을 추진하기에 용이하다.

나는 요즘 작은 학교의 이점을 체감하면서 작은 학교가 큰 학교에 비해 별로인가, 하는 생각의 축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학부모님들이 우려하는 학력 저하는 최근 기술 발달로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났다. 지역별로 도서관이 잘 조성돼 있고, '스마트 기기 활용 온라인 수업' '인공지능(AI) 보조 맞춤형 지도' '화상 언어 회화' 등을 활용하면 학원가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추가적인 교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세상에는 대단위 학교와 교실이 맞지 않는 아이들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기질상 소규모 공동체에서 훨씬 안정감 있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여럿 봤다. 나는 그동안 작은 학교의 좋은 점을 소상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별 다른 추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어촌 지역은 무상으로 지원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학력 경쟁 기류가 강하지 않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시내에 있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농어촌 학교를 잘 모른다. 나처럼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나도 직접 생활해보지 않았다면 끝까지 모르고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작은 학교는 보통 자유학구제(공동학구제)로 지정돼 있어 주소지가 학교 인근이 아니더라도 등록 가능하다. 도심의 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가정이 있다면 작은 학교를 선택지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작은 학교에서는 웃는 아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말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학교 #큰학교 #교육 #초등학교 #자유학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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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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