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진상규명 15년' 일본 유가족들의 확신 "이태원 독립조사, 바로 해야 한다"

[현장] 이태원 유가족 만나 "왜 불꽃놀이 갔냐는 2차 가해 정치인 일본도 있었다"

등록 2023.03.17 20:57수정 2023.04.06 11:33
0
원고료로 응원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오른쪽)와 미키 기요시씨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사고가 유야무야 처리될까봐 불안합니다. 경찰이 경찰을 조사하다니, 스스로 자신을 조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경찰은 압사 참사 당시) 다른 대책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중략) 이 세상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요."


언뜻 보면 10.29 이태원 압사 참사의 증언처럼 보이는 이 말들은 20여 년 전인 2001년 7월, 일본 효고 현 아카시 시 불꽃놀이 축제 압사 참사를 겪은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수기로 남긴 말이다. 희생자 11명, 부상자 247명이 고통 받은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시와 경찰, 경비업체 등 책임 주체를 대상으로 민·형사상 재판을 이어왔다. 그 세월만 15년이다.

무너진 혼잡 경비 시스템, 부재했던 재난 방지 대책, 책임자들의 면피와 불성실한 조사... 아카시 참사 유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온 지난 기록들을 엮어 참사 발생 꼬박 21년 만인 지난해 7월 21일, 400여 페이지 분량의 책 <아카시 육교 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를 펴냈다. 그로부터 3개월 여 뒤, 한국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났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이) 똑같았다. 책을 낸 게 지난해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일본에선 아카시 참사 이후) 재발방지책이 매뉴얼화 됐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힘만으로는 한계란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에는 국경선이 없다고 생각한다. 유족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있다."
 

17일 아카시 참사 유족회 회장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와 함께 한국을 찾은 미키 기요시씨는 아카시 참사로 8살 딸을 잃은 아버지이자, 참사 생존자였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 토론회에 참석해 20여 년 전 참사 순간을 세세히 떠올렸다.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딸의 영정 사진을 들어보이며 "이런 자리 때마다 늘 함께 한다"고 했다. 들썩이며 눈물 흘리는 그의 손을 이종철 이태원유가족협의회 회장이 가만히 잡았다. 그리고 함께 오열했다.

[장면 1] 영정 앞 질문들
 

일본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 이태원 참사 분향소 조문 ⓒ 유성호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와 미키 기요시(왼쪽)씨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며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유성호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분입니다."


같은 날 오전 9시께, 전날 오후 한국에 도착한 두 아버지는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부터 찾았다. 국화꽃을 들고 시민들의 조문을 받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안내를 도왔다. 두 사람은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향해 절을 하고, 분향을 시작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두 사람을 일본인 희생자의 영정 앞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역시 두 사람은 두 손을 모으고 영정을 향해 번갈아 절을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 "벼락을 맞은 것 같아요. 10월 29일 이전의 행복이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카시 참사 유가족 : "똑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춰 버렸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꺼내 보이던 가족들은 한 자리에서 함께 눈물짓기도 했다.

"저희 아이는 40대라, 아이가 둘이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걸 풀어주는 것이 할머니의 일이라 생각해 열심히 나오고 있어요.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의 말에 시모무라 세이지씨가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들이) 남의 일로 여겨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진상규명의 첫 번째 조건은 '시민들의 힘'이라는 목소리였다. 미키 기요시씨도 분향소에 이어 찾은 이태원역 참사 현장에서 "경찰과 정부에 '왜 죽었는가' 알고 싶다고 요구하지만, 무시를 당하면 상처가 크다"라면서 "우리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재발 방지를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분향소에 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물음은 계속 이어졌다.

"일본에선 진상규명이 됐습니까."
"재발 방지책은 마련되었습니까."
 

[장면 2] 확신의 답변
 

이태원 유가족 만난 일본 압사 참사 유가족의 외침 ⓒ 조혜지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육교 압사 참사로 8살 딸을 잃은 아버지 미키 기요시씨가 17일 국회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그는 딸의 영정과 함께 토론회에 참석했다. ⓒ 조혜지

 
결론적으로, 답변은 '그렇다'였다. 재판 과정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원인 규명이 시작되어 최소한의 정도까지는 됐다"는 게 시모무라 세이지씨의 말이었다.

참사 초기 독립조사기구 조사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카시 참사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현장 곳곳에서 '당사자'로 직접 참여했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지금도 정부가 인증한 '피해자 지원 조언자'로 각 지자체와 사업체에서 사고 재발 대책의 중요성을 강연하고 있기도 하다.

필수 조건은 참사 당사자인 유가족들의 '참여'였다. 아카시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초기, 지자체와 경찰의 책임 회피에 부침을 겪었지만, 참사 발생 12일 만에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독립 조사기구, 즉 사고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참사 책임 주체 중 한 조직인 경찰은 끝내 조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지만, 역시 "유가족이 높이 평가한" 조사보고서까지 도출했다. 이 보고서는 향후 법정 투쟁 과정에서 정식 증거로 인정되기도 했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조사위에서) 유족들에게 제대로 설명한 보고서여야 하고, 납득할 만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아카시 참사 보고서가) 제도화 됐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면서 "유족들이 납득 못할 보고서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바로 해야 한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독립조사기구의 '신속한 설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유족들의 의견을 제대로 받아들인 조사위여야 한다"면서 "증언이나 기록, 영상을 그래야 잘 수집할 수 있다. 즉시 제3자가 포함된 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면 3] 슬픈 공통점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와 미키 기요시(왼쪽)씨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희생자인 최다빈씨 아버지 최현씨, 최재혁씨 어머니 김현숙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두 참사의 유가족들은 정치권과 일부 혐오 시민으로부터 겪은 2차 가해에 대한 괴로움도 함께 나눴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토론회 자리에서 참사 초기 겪은 여당 의원들로부터의 "폄훼와 무시",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겪은 극우 단체로부터의 "괴롭힘" 등을 언급하며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지만, 다른 참사 유가족 분들을 보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스스로 각오를 다시 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카시 참사도 다르지 않았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한 국회의원이 축제에 (아이를) 데려간 가족 탓이라는 식으로 유족에게 책임을 돌린 적도 있다. 소수 의원들은 우리 편을 들었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이 아무 것도 못했다. 그래서 2차, 3차 가해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아카시 참사 유족들이 선택한 방법은 '직접 맞서는 것'이었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역할 분담했다. 언론에 얼굴 내세우고 욕먹으며 각오하는 4명. 그 중 저와 미키씨였다. 유족들은 곁에서 계속 함께 해줬다. 그렇게 버텨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회고했다.

유족들과 소통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향한 비판도 꺼냈다. "조심스럽습니다만"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부가 유족 분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있고,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고 짚었다.

일본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일궈나가는 과정에서, 정부나 정치권의 무능을 확인한 경험도 함께 언급했다. 그는 "일본은 여야가 공방하기 보단, 한 쪽으로 '안 된다'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면서 "진실 규명에 나선 건 시민들이었지, (지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에 참석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요청했다.

"원인 규명과 동시에 유가족 지원 대책을 제대로 해주시길 바란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창구 같은, 그런 지원들을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장면 3] 따뜻한 밥 한 끼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와 미키 기요시씨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로부터 참사 당시 상황을 듣고 있다. ⓒ 유성호

 
a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시모무라 세이지씨와 미키 기요시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앞서 이태원역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두 아버지는 외벽에 "마음 편히 쉬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글귀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다. 앞서 한 이태원참사 희생자의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아카시시 불꽃놀이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잘 몰랐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아카시) 희생자와 부상자 분들에게 애도와 위로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같은 날 12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긴 시간동안 토론회와 기자간담회를 이어온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들은 모든 일정이 종료된 후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국적을 떠나, '진상규명'이라는 같은 숙제를 풀어가는 유가족으로서 연대하겠다는 다짐도 나눴다.

시모무라 세이지씨는 "(이태원역에 가보니) 영상에서 본 뉴스랑은 사뭇 달랐다. 그 좁은 비탈길에 서서, 왜 여기를 대처하지 못했나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면서 "앞으로 교류할 때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서, 슬픔은 물론 굉장한 에너지를 느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있을 때도 불러 달라. 따뜻한 밥 한 끼 먹자고 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 재난 참사 유가족으로서, 함께 자리에 참석한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역시 '연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아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야한다는 점이 너무나 똑같다"면서 "(국가가) 안 되면 우리가 해야 한다. 참사는 우리로 끝낸다는 마음으로, 함께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일본 #한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해당 기사는 댓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