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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숟가락 얹기'로 대미를 장식한 K칩스법

위기 빌미로 민주적 절차 와해... 무분별한 세금감면은 '반도체 전쟁' 해법 아냐

등록 2023.03.18 19:09수정 2023.03.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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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류성걸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16일은 흔하지 않게 언론의 국회 칭찬이 이어진 날이었다. 

이른바 'K칩스법'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법안이 양당 합의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설비투자의 15% 만큼을 법인세에서 추가 감면받을 수 있게 된다. 20조 원을 투자하게 된다면 3조 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대폭의 대기업 세금감면이 정말로 반도체를 둘러싼 격변하는 통상질서를 헤쳐나가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법안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의 와해에 대해서는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윤석열 하명'에 동참한 더불어민주당

'K칩스법'의 발단은 지난해 양향자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의 설비투자 25% 세액공제 안이었다. 여당의 파격적인 세액공제 안에 화들짝 놀란 기획재정부가 지나친 세수감소를 이유로 공제율을 8%로 낮춘 정부안을 제출했고, 12월 24일 민주당과 국민의힘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감면이 불충분하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누더기 K칩스법", "일류 반도체 삼류 정치"라며 일제히 정부를 힐난했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우리나라 반도체 세제지원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기재부도 보도설명자료를 내면서 불만을 진화하려 안간힘을 썼다. 

상황을 바꾼 것은 용산이었다. 법안 의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2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8%로는 부족하다며 세액공제 확대를 지시했고, 나흘 뒤인 1월 3일 기획재정부는 15% 안을 전격 발표했다. 1월 19일에는 법안이 제출됐고, 2월에는 기재위가 소집됐다. 대통령의 '하명'에 기재부와 여당이 먼저 굴복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상임위에서 이런 '하명 입법'을 비난하며 왜 갑자기 세금을 두 배로 더 깎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성토했다. 당시에도 추경호 부총리가 사과만 한다면 용인해 줄 수 있다는 입장도 없지는 않았지만 순순히 받아주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그러나 3월이 되면서 '국가 미래를 짊어진 전략산업에 발목 잡는 정당'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과, 오히려 더 높은 공제율과 더 많은 전략산업에 세금감면 적용하자는 '레이즈를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당 내부를 잠식해 갔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까지 끌어들여 반도체산업 지원과 결합시키는 수가 등장하자 완전히 대세는 기울었다.

재벌대기업 특혜감세에 서민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동참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졌다. 3월 16일, 민주당이 제안한 수소산업과 미래형 이동수단이 추가로 포함된 15%공제안으로 전격 합의되었지만, 지난해 법인세 감면 합의에 비해 민주당 내부 반발이 없다시피한 배경이다. 

2년간 4조 3천억원, 5년간 7조 3천억원을 그것도 삼성과 SK하이닉스 두 기업에 몰아서 깎아주는 엄청난 특혜성 법안이지만, 재계 압박-대통령의 '하명'-기재부의 굴복-민주당의 '레이즈'-전격 밀실 합의로 이어지는 데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통상의 세법심사에 있어야 할 숫자와 자료와 논쟁과 토론은 모두 실종됐다. 대/중소기업의 혜택 수준, 투자효과의 분석, 반도체 경쟁기업의 실효세율 등 필수적으로 제출되어야 하는 자료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세제혜택을 주는 나라였는데, 왜 지금은 그것마저도 부족하게 됐는지 기재부와 양당은 합리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도체 세액공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행된 적 없이, 세법개정으로 공제율만 두 차례 오르는 꼴이 됐다. 정상적 민주주의 국가의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인지, 심히 의문이다. 

반도체 전쟁 이기는 데 세금감면이 무슨 소용?

이 모든 과정은 '반도체 전쟁'이라는 상황논리 앞에서 정당화됐다. 전략산업이 된 반도체를 지키기 위해서 세계 각국은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고, 대한민국도 여기에 발맞추지 않으면 플라자 합의 이후의 일본 반도체 산업처럼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양당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대폭의 투자세액공제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정말로 쓸모가 있는 대책인지는 물음표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산업 지원 문제는 패권경쟁 하에서의 안보 차원의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보조금이나 세금혜택을 퍼붓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미국의 반도체산업지원법의 중국 투자 제한 조항이나 기업기밀 보고 조항 등 근본적으로 기존 통상질서를 와해시키는 횡포에 외교적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삼성은 텍사스에 공장을 짓고 있고, 11곳 신설 계획이 잡혀 있다. 하이닉스 역시 150억달러 투자 예정이다. 이는 보조금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통상질서상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자세액공제는 이미 계획되어 있는 국내투자 세금을 깎아줄 뿐 미국 투자를 한국으로 선회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패권국을 제외한 다른 경쟁국들의 세제환경은 어떨까? 이미 기재부가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진실을 실토했듯 대한민국의 세제혜택은 현 8% 공제율로도 최고 수준이다. 

유럽은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액감면 자체가 없고 일반적 R&D투자에 대한 세금감면이 있을 뿐이다. 최근 설비투자에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유럽의 높은 인건비, 사회보장부담금 등을 고려하면 결코 세제상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독일만 하더라도 이익 대비 총조세부담률이 48.8%에 이르는데, 한국은 33.2%로 OECD 최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쟁국인 일본이나 대만은 세제혜택이 있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명백히 부족하다. 일본은 R&D 투자세액공제가 6~12%, 설비투자세액공제는 없다. 대만은 R&D투자세액공제가 25%, 설비투자에 대해서는 5% 공제를 적용한다. 한국은 R&D 공제가 무려 30~50%, 설비투자세액공제가 8~16%다. 이런데도 세금을 더 깎아줘서 '바닥으로의 경주'에 불을 당길 이유가 있을까?

법인세 감면 논쟁과 마찬가지로 투자세액공제의 투자유인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고 없다는 연구도 있다. 단기투자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지만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을 견인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생산성 향상시설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조세특례심층평가(2019) 결과를 보면, 단기적으로 수익성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이었다. 생산성 제고 효과도 중장기적으로 미미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해관계자인 대한상의나 전경련의 연구결과만을 취사선택해 투자효과를 호도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 'K칩스법'은 효과가 검증된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치어리딩이다. 전략산업 세금감면이라는 형태로 전쟁에 임하는 국가적 각오를 보여주는 도구, 정치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의 대가인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군악대가 사기를 높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군악대에 7조원씩이나 들여야 하는지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숟가락 얹기'로 대미를 장식한 K-칩스법

이 'K칩스법'이라는 하는 포장지를 두른 '반도체기업특혜지원법'의 제정 과정은 앞서 살펴봤듯 처음부터 엉망진창이었지만, 민주당의 합의처리 방침 발표 이후 양당 의원들의 '법안 숟가락 얹기' 레이스는 대미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16일 조세소위를 앞두고 3월 14-15일 양일간 공제율과 대상 산업 등만 달리한 '변종 K-칩스법'이 우후죽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 4건(신동근, 정태호, 양경숙, 홍영표) 국민의힘에서 2건(윤영석, 김성원 안)이 올라왔다. 

어차피 간사들의 밀실 협의를 통해 만들어진 <위원회 대안>이 합의처리될 것이니, 갑작스럽게 올라온 이 법안들은 의원들의 법안 통과 실적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 보기 어렵다. 이 하루살이 법안들은 본회의 통과와 동시에 '대안반영폐기'됨으로써, 발의한 의원들이 'K칩스법'의 통과를 이끌었다는 자랑의 증표로 활용될 것이다.

국회법 58조에 따라 법안심사는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거쳐야 하지만, 하루만에 나온 법안들이 검토보고서가 있을 턱이 없었다. 이 법안들은 세 페이지로 간단 요약된 별지에 담겨서 조세소위 위원들에게 보고됐고, 검토보고나 영향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국회가 스스로 졸속심사를 자처한 셈이다. 

특히 씁쓸한 부분은, 2월 상임위에서는 거세게 반도체법을 재벌특혜라며 비판하며 추경호 부총리를 몰아붙였는데, 민주당의 합의처리 방침이 나오자마자 정부안 15%도 부족하다며 일괄 25% 공제율 상향안을 낸 의원도 있었다. 입장 변경에 관한 해명은 상임위에서도 조세소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부끄러운 풍경을 연출한 'K칩스법'은 이번 달 본회의에서 국회의 95%를 차지하는 양당 의원들의 성원 속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예산안 정국에서부터 확인했듯,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배하는 정치질서에서 '묻지마 기업감세'가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경제정책의 결론으로 채택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긴급했던 코로나 위기에서 극렬하게 손실보상과 재난지원금을 반대하며 기어이 주요국 최저 수준의 재정을 국민들에게 사용하며 희생을 강요했던 정부와 양당이, '반도체 전쟁'에서는 숫자도 자료도 분석도 없이 대통령 하명에 따라 통 크고 화끈하게 대한민국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인 삼성과 하이닉스, 현대차로부터 수조원의 세금을 선선히 포기하는 모습 말이다. 

반도체 대기업 세금감면에 반대하면 '매국노' 취급하고 위기에 처한 국민들에게 돈을 쓰자고 주장하면 '무책임 포퓰리스트'가 되는 현실에서, 누군가는 저 줄어든 7조원의 부담을 나눠 져야 한다. 위기를 명분으로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면서 재벌대기업을 밀어주는 특혜법안, 이것이 'K칩스법'의 본질이다.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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