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공개→비공개 뒤집힌 노무현 기록물 목록... 대통령기록관은 왜?

[진단] 관장 직무정지 이후 벌어진 이상한 일들... 첫 대규모 지정기록물 해제 '삐그덕'

등록 2023.03.20 04:58수정 2023.03.21 10:34
12
원고료로 응원
a

2022년 6월 22일 세종시 어진동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 2월 25일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15년 대통령지정기록물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10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해제됐지만, 약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목록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 1월 초 대통령기록관장이 갑자기 직무정지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통령기록관은 해제일에 맞춰 목록을 공개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확인돼, 약 한 달 반 사이에 공개→비공개로 변경된 배경에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이번에 대통령지정기록물(이하 지정기록물)에서 해제된 총 9만 8천여 건(노무현 8만 4천여 건, 이명박 1만 4천여 건)은 내용은 물론 목록조차도 올해 말이 돼야 공개가 가능하다는 게 대통령기록관의 입장이다.

<오마이뉴스>는 보호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지정기록물의 목록을 정보공개청구했지만 대통령기록관의 회신은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비공개'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이의를 신청하면서 법령에 따라 내부검토 종료 예정일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기록관은 지난 14일자 회신에서 "늦어도 12월까지는 비밀/일반기록물 구분을 완료하고, 일반기록물 목록에 대해서는 비실명화 처리 후 공개가 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개일시를 적는 부분에 올해 마지막 날짜인 "2023년 12월 31일 14시"라고 적었다.

이런 답변은 어느정도 예견됐다. 대통령기록관은 지난 2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16·17대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을 다음날인 25일자로 해제한다면서, 향후 ▲ 비밀/일반기록물 구분 → ▲ 일반기록물에 대해 공개/부분공개/비공개 결정 → ▲공개/부분공개 기록물 목록의 비실명 처리까지 실무과정을 거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기록관은 "(지정기록물은) 보호기간 중에는 열람 등이 엄격히 제한되고 대통령기록관 직원도 관장의 승인을 얻어 상태검사, 정수점검 등 최소한의 업무수행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지정기록물로 묶여있는 기간에는 내부에서도 접근이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해제가 된 이후에야 공개를 위한 실무작업이 가능하며, 분량이 방대하므로 소요 시간이 1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민 입장에서는 지정기록물이 해제됐는데도 해제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다. 무려 15년간 알권리를 강력하게 유보시켜왔는데, 약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당초 대통령기록관 측이 2월 25일 해제일에 맞춰 목록 공개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국가기록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53회(2023년 1월 4일)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 회의 자료를 보면, 비공개 보고 안건으로 '2023년 대통령지정기록물 해제준비 및 후속조치 계획(안)'이 올라와 있다. 비공개 안건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지만 회의 결과로 "지정기록물 해제 이후 대량의 정보공개청구 등에 대한 사전대비 필요"라고 적혀 있다.

전문위원으로서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은 "전문위원회는 지정기록물 해제에 임박하여 비실명화(비공개 사항을 가리는 조치)한 것이라도 목록을 작성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대통령기록관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관 측이 이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해제일 전 실무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기록관은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계획을 보고했던 윤제양 기록관리과장은 "지난 1월 4일 회의에서 지정 해제일에 맞춰 비실명화 처리까지 해서 목록을 공개하기로 보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후에 섣부르게 하는 것 보다는 비밀 구분을 확실하게 한 이후에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결정을 바꿨다"고 말했다.

해제된 지정기록물, 오직 현 정부 측만 접근 가능

대통령기록관 주변에서는 목록 비공개로 방침이 바뀐 것이 올해 초에 벌어진 대통령기록관장의 직무정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위 회의가 있던 바로 다음날인 1월 5일 행정안전부는 외부 공모 인사인 심성보 관장을 부당업무지시 및 갑질 혐의로 징계를 청구하며 직위 해제했고, 며칠 후 행안부 공무원으로 관장 직무대행을 내려보냈다. 심 관장은 그동안 목록 공개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기록관이 관장 직무대행 체제로 되면서 바뀐 건 목록 비공개 뿐만이 아니다. 법령에 따라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대리인의 지정도 시행령 미비를 이유로 계속 미루고 있다. 결국 현 상황은 막대한 양의 대통령지정기록물이 해제됐지만, ▲ 시민들은 목록조차 접근이 불가능하고 ▲ 기록 생산의 주체인 노무현 전 대통령 측도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 오직 현 정부 측만 기록 접근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일단 지정기록물에서 해제되면 정부 측에서는 이전보다 정보 접근이 용이해진다.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은 "만약 대통령실 등 정부만 목록과 비공개, 비밀 등 모든 기록물에 접근·열람하고 다른 접근을 봉쇄한다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대통령실만 기록에 접근해 민감한 사안을 들춰내고 정치적 이슈로 삼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록관리학계 전문가는 "대통령기록관 측에서 보호기간 중에는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4항의 3을 지극히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상태검사와 정수점검 뿐 아니라 전자적 관리에 의한 목록 작성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종연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회장은 "대통령기록관의 안일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처음 맞는 대규모 대통령지정기록물 해제를 이런식으로 처리한다면, 앞으로는 점점 더 양이 많아질 수 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단독] 노무현 지정기록물 해제 앞두고 대통령기록관장 직위 해제 https://omn.kr/22k1g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 대리인 지정 난항... 대통령기록관 처리 안해 https://omn.kr/22qbs
 
#대통령기록관 #노무현 #정보공개청구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