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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할머니 따라 30년 전 시간여행 다녀왔습니다

최옥수 사진전 <사라지고, 살아지다>, 광주 시립사진전시관에서 26일까지

등록 2023.03.20 09:27수정 2023.03.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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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발명되고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200여 년 전 조상들은 영혼을 뺏어 간다고 믿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 그대로 현상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마트폰은 모두 사진가로 만들었다. 디지털과 사진의 결합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찍는다. 그만큼 사진은 쉽게 접할 수 있다. 팔을 길게 내밀어 스스로 찍는 셀카와 동영상 촬영을 종종 본다. 스마트폰 갤러리는 추억으로 가득하다.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여행지에서 찍은 풍광을 보며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사진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사진은 귀했다. 필름통과 흑백 사진이 주는 감동은 삶 그 자체다. 현상될 때까지 기다림 또한 묘미다. 초점이 흔들리기도 하고 덮개가 열려 모든 사진을 송두리째 잃기도 한다. 필름을 통해 소중한 순간을 간직했다.

1970년대부터 어깨에 카메라 들쳐메고 전라남도를 거닐며 삶을 담았다. 차가 귀했던 시절이라 버스로 방방곡곡을 누볐다. 작가 최옥수는 1955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고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1997년 금호 문화재단 월간 <금호문화> 사진기자. 2003년부터는 대동문화재단 <대동문화> 사진 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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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늘이 있어야 견딜 심도 있어 1990년대 초반_광주 학동 ⓒ 최옥수

   
<사라지고, 살아지다>가 전시되는 광주 시립사진전시관에 다녀왔다. 사진전 펼침막이 바람에 휘날린다. 할머니 뒷모습이 정겹다. '어여 와~' 손짓하며 반갑게 전시관까지 안내해주시는 것 같다. 제목은 '사람은 그늘이 있어야 견딜 심도 있어'다. 행여나 할머니를 놓칠까 봐 걸음을 서둘렀다. '심'은 전라도 말로 힘이라는 뜻이다.

일상의 기록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기성세대와 MZ 세대 간 소통 기회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할 수 있겠다. 남도의 풍경과 인물사진을 4개의 주제로 전시했다. 잊혀진 하루, 떠오르는 얼굴, 이어진 마음, 사라진 땅과 바다다.

'잊혀진 하루'는 예전 남도의 모습이나 시대의 변화, 산업화로 인해 잠시 잊고 지낸 풍광을 선보인다. 꼬들꼬들 채소 말리는 모습, 무더운 여름 냉수로 시원함을 달래줄 등목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차역은 이동과 만남의 장소였다. 역사의 뒤안길로 남광주역 푯말이 눈에서 오래 머문다.

'떠오르는 얼굴'은 생동감과 사실주의를 더했다. 바늘귀에 실을 끼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고기 잡으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도 보인다. 주름 깊어진 어머니의 얼굴과 잊고 지냈던, 함께 분교 다니던 동무 모습이 있다. 유명한 작가들의 예술혼이 가득한 표정과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이어진 마음'은 근대 역사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어 보이는 사진이 전시되었다. 향교, 전통혼례, 5·18 위령제, 마을 제사, 씻김굿,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다양한 의례를 볼 수 있다.

'사라진 땅과 바다'에서 오래 머물렀다. 생업의 터전이자 삶의 현장을 감상할 수 있다. 2장의 사진에서 발길이 계속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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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자전거 타고 어디까지 가보고 싶니 1990년대 중반_전남 화순 ⓒ 최옥수

 
한 장은 운주사 이정표다. 중장터에서 화순읍으로 가는 방향이다. 이정표 아래 아이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다. 모락모락 아궁이 연기와 식사 때가 되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하나 둘 집으로 갔다. 모른 척하고 더 놀다가 들어가는 친구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았는데 도심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봄·가을에는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비석 치기, 말뚝 박기를 했다. 가끔 오빠 찾으러 오락실에 가곤 했다. 동전을 넣으면 신나는 음악과 게임이 시작되었다. 여름에는 빨간 고무 대야에서 물놀이를 했고 겨울에는 반들반들 벼 복합비료에 구멍을 뚫어 썰매를 탔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신났지만 어른들은 미끄러지지 않게 집게로 연탄재를 뿌샤(부서) 놓았다.

지금의 운주사만 봤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지어 볼 수 있게 했다. 전라남도 화순군 천불천탑 운주사 일원에 사계절 아름다운 테마 경관 조성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은 어떤 모습을 기억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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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작업하세요 1990년대 초반_전남 화순 목암갱 ⓒ 최옥수

 
또 한 장은 광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백 년 넘게 경제의 버팀목인 화순의 탄광을 지킨 사람들이다. 1930년대 중반 화순광업소를 개광(開鑛)하여 생산하였다. 석탄 증산정책이 추진되었다. 연탄은 따스함을 주는 연료 중의 하나였다. 아쉽게도 현대화, 도시화로 인해 석탄 수요가 줄어들다가 IMF 경제 위기에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다양한 대체 에너지를 사용함에 따라 폐광(廢鑛)에 이르렀다.

올해 6월 폐광 소식을 접한 다음 보니 눈가가 촉촉해진다. 각 가정의 가장인 광업소 종사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정책 마련이 되었으면 한다.

따스한 땅, 남도에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발길 닿는 곳 어디나 화려하여 마음이 설렌다. 같은 곳이라도 세월 따라 삶의 모습이 달랐다. 부모님의 젊음을 보낸 시절과 어린 시절 나고 자란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봄 꽃 나들이 전 옛 풍광을 만나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상상력도 멋진 체험이다. 광주 시립사진전시관에서 3월 26일까지 전시 중이니 관심 있는 분은 가보는 것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 실립니다. 네이버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애정이넘치는민지씨 #북민지 #화순매일신문 #방방곡곡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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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저널에 기고한다.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넘치는민지씨>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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