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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왔다갔다 하긴 하는데..." 강화도 이 학교의 꿈

[인터뷰] '세계시민' 양성하는 꿈틀리인생학교 김혜일 교장

등록 2023.03.25 18:35수정 2023.03.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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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꿈틀리인생학교'는 불은면 넙성리의 신성초등학교 폐교 건물에 있다. 신성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뒤 2007년부터는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학교(오마이스쿨)를 운영했고, 2016년부터는 꿈틀리인생학교로 변모했다. 꿈틀리인생학교의 이사장(사단법인 꿈틀리)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기자가 맡고 있다.

오연호 이사장은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제도를 모델로 해서 꿈틀리인생학교를 만들었다. 오 이사장은 행복사회의 비밀을 찾아 1년 6개월 동안 덴마크를 취재했고, 그 내용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 담았다. 이 책은 2014년 출간되어 10만 부 이상이 나갔고, 그 뒤 저자는 1000회가 넘는 행복특강을 통해 독자와 함께 행복사회를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꿈틀버스, 꿈틀비행기, 꿈틀박람회를 시도했고, 마침내 강화에 꿈틀리인생학교를 세웠다. 

살아 있다는 것은 꿈틀거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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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새로 부임한 강화 꿈틀리인생학교 김혜일 교장(51). ⓒ 김혜일

  
오연호 이사장은 의정부의 대안학교 '꿈틀자유학교'에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꿈틀거린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어떤 변화라도 작은 꿈틀거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생명의 징표는 꿈틀거림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꿈틀리'라고 지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진 꿈틀리인생학교는 지난 8년간의 실험적인 교육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그리고 강화 지역에 어느 정도의 뿌리를 내렸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17일 불은면의 꿈틀리인생학교를 찾아가 김혜일(51) 교장을 만났다. 김 교장은 2016년 개교 이후 6년간 꿈틀리인생학교를 이끌어온 정승관 교장의 뒤를 이어 2022년 1월 6일 자로 부임했다.

- 강화 꿈틀리인생학교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활동했나요?

"주로 광주에서 일했어요. 2003년부터 문화공동체 아우름을 설립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매개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주력했어요."

- 전공이 교육 쪽인가요?


"원래 직업은 목사예요. 신학교 졸업 후 교회를 개척해서 10년 정도 담임목회를 했죠. 목회를 그만둔 뒤에도 목사 신분으로 10년 정도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주로 했어요."

- 어떻게 광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화까지 오게 됐죠?

"꿈틀리 재단에서 2019년부터 전남 신안군 섬마을학교를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오연호 이사장의 권유로 여기서 협력교장으로 일했어요. 수십 년간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을 해와서 멀리 떠나오는 게 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 볼 때가 된 것 같아 강화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죠. 지금은 가족과 함께 강화 화도면에 살고 있고요."

- 이곳에 와서 1년간 운영해보니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을 쭉 해왔기 때문에 익숙한 일이죠.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고요. 그런데 코로나로 3년 동안 대면 활동, 특히 기숙사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 2023년 신입생은 몇 명이죠?

"예년보다 많이 줄었고, 지금 현재 11명인데 3~4월까지는 계속 학생을 모집하는 중입니다."

-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대상으로 모집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입학생 숫자가 줄어든 주요인은 무엇입니까?

"코로나도 영향을 많이 끼쳤지만, 학령인구 감소, 대안교육 관심도 저하, 인지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그러나 여전히 이런 대안학교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여전히 많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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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불은면 꿈틀리인생학교 학생들이 학교 부근의 텃밭에서 농사 수업을 하고 있다. ⓒ 김혜일

 
- 강화 지역 학생도 있나요?

"6기, 7기에 한 명씩 있었는데, 이번 8기엔 아직 입학생이 없습니다."

- 개교한 지 8년이 지났는데 강화 지역사회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보나요?

"아직은 여러 가지로 미흡하죠. 아무래도 학교 초기엔 내부 프로그램 운영하기도 빠듯했을 겁니다. 네트워크가 있더라도 교사 개인의 수준에 머무르는 편이었고, 학교 프로그램으로 정례화되거나 학교 문화로 정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부분을 보완하는 교과과정에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 지역사회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올해 준비한 교과과정엔 어떤 게 있죠?

"'심도록'이란 교과입니다. 강화의 옛 이름이 '심도'인데, 이 심도를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제1주제는 역사이고, 제2주제는 강화도의 사람과 공간인데, 이 분야를 두 분 선생님이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강화를 글과 사진, 영상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할 생각이고, 학생들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하는 것도 시도하려고 합니다."

삶을 위한 학교를 지향한다

김혜일 교장은 강화도에 오기 전 광주의 양산동이라는 작은 마을 단위에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플랫폼(공간, 콘텐츠, 커뮤니티)을 만들고 운영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문화공동체 아우름의 대표로서 아동, 청소년, 성인을 모두 아우르며 일상의 삶을 예술로 가꾸는 일에 힘을 쏟았다. 세대가 함께하는 마을합창단 운영, 마을 축제 기획 운영, 시장 골목 활성화를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예술을 매개로 즐겁고 다양한 소통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자 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공동체 경험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것이 김 교장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삶의 철학을 꿈틀리인생학교에서도 실현해 보려 한다.

오늘날 덴마크 교육의 기초를 세운 이가 바로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그룬트비(1783~1872)였고, 그가 강조한 것이 '삶을 위한 학교'였다. 이런 교육철학을 꿈틀리인생학교가 적극 수용했는데, 김 교장의 인생철학도 이와 거의 흡사해 보인다.

- 덴마크의 삶을 위한 학교와 교장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 일치하는 측면이 많아 보입니다.

"초·중·고 합쳐 모두 12년을 학교에서 배우는데 그 배움이 삶의 지혜로 연결되지 않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 지식의 습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미래세대가 갖춰야 할 역량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주위 사람들과 협동해 성취를 이루는 협업능력, 상대방의 마음과 의견을 공감해주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이런 역량을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은 죽은 교육입니다. 덴마크의 교육철학, 삶을 위한 학교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죠. 꿈틀리인생학교는 그런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꿈틀리인생학교는 1년 단위 수업인데, 1년이라는 기간이 그런 힘을 키우기엔 짧지 않나요?

"1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짧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험으로서의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비록 1년밖에 시간이 없지만 우리 친구들이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지역사회와 즐겁게 소통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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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불은면 꿈틀리인생학교 주변에 있는 신현리 경로당을 찾은 학생들. 김혜일 교장은 세대 간의 대화, 삶의 교육을 중시한다. ⓒ 김혜일

 
세계시민이 되기 위하여

김혜일 교장은 정규수업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학교의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서 인근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힐 생각이다. 올해 초엔 절편 떡을 해서 마을 주변의 어르신을 찾아뵙고 인사를 했다. 두 팀으로 나눠 방문했는데, 김 교장도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가까운 신현리 경로당을 찾아갔다.

- 신현리 경로당을 찾아갔을 때 어르신들 반응이 어땠나요?

"경로당엔 할머니 여러분이 계셨는데 무척 반가워했어요. 그런데 학교가 들어선 지 8년이 됐는데 '애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뭐 하는 곳인지 몰랐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좀 놀랐죠.

마을 주민과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절감했고요. 학교 운동장에 불은면 노인들이 이용하는 실내 게이트볼장이 있는데, 이분들하고도 교류가 없는 편이었죠. 제가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게이트볼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적극적으로 찬성하더라고요."

- 윗세대와 아래 세대 간의 문화 단절이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나와 다른 세대 어른들을 만나 보고, 함께 농사짓고 그들의 지혜를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은 중요합니다. 학교 주변 텃밭에서 고구마 농사를 학생들이 하는데 고구마 순을 심는 방법, 고구마밭 정비하는 방법 등을 동네 이장님이나 마을 어르신들이 해 준다면 훨씬 더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대화를 나누고 두 세대가 함께 이해할 부분들을 알아간다면 좋겠죠. 그런 작은 행동이 더 큰 소통을 이뤄내는 발화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농사 수업이 단지 자연, 농업과 친해지는 시간이 아니라 세대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는 게 좋은 발상이네요.

"부모 세대,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를 만나는 일은 청소년기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도 있고요."     

- 꿈틀리의 교육목표는 '자신을 세우고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이 되자'입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덴마크로 배움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농촌 지역에 있는 학교로서 세계시민과 마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해야 할까요?

"우리 학교가 내세운 '세계시민이 되자'라는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 다섯 개 중에 세 개는 '지역과 함께 하는 열린 학교', '농사를 통해 배우는 생명의 학교' '공동체에서 배우는 더불어 함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조금씩 확장해 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동안 내가 전부라고 여겼던 어떤 세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해나가다 보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이 내용을 지식과 학습으로만 하는 게 문제인 거지요. 나를 둘러싼 세계가 이런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은 마을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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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꿈틀리인생학교 학생은 지역 공동체와 만나는 데 도움이 되는 풍물반 활동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 김혜일

 
창밖을 바라볼 자유

좋은 교육을 위해선 마을에 뿌리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김혜일 교장. 그의 교육론을 들어보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마을 주민과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야 세계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김 교장은 꿈틀리인생학교 주변의 이웃, 넓게는 강화지역의 주민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 올해부터 전교생이 풍물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농촌 공동체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풍물이 유효한 매개체라 본 것이다.

'옆을 볼 자유'를 중시하는 꿈틀리인생학교의 '2023년 입학설명회' 안내문을 살펴보다 눈에 쏙 들어오는 구절을 발견했다.

"아이가 칠판을 바라볼 때 더 많이 배우는지, 창밖을 바라볼 때 더 많이 배우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 야누스 코르차크, 아동 교육자

학창 시절 교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갖은 상념에 빠졌던 이들은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옆을 볼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은 학생들에게 꿈틀리인생학교를 권한다.

*꿈틀리인생학교 모집 안내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남로 133
교무실 : 032) 937-7431
꿈틀리인생학교 사이트 https://blog.naver.com/ggumtlefterskole
덧붙이는 글 강화도의 지역신문인 <강화뉴스>에도 실립니다.
#김혜일 #꿈틀리 #꿈틀리인생학교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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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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