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시, 서두르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정리하며 ②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등록 2023.03.22 11:27수정 2023.03.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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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인천공항 출국장, 자전거 원정대 출정하다. ⓒ 김길중

 
사전 모임과 출국장에서 이번 자전거 기행의 참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제 곧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실제로 보게 됩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담아 올 건가요?"

기획의도에 가장 충실한 이명연(전북도의원)의 말이다.

"전주만 해도 (자전거 정책과 관련해) 20년 동안 시장 임기마다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불행하게도 나아진 게 없다. 우리가 가는 도시들은 자전거 도시로 성공한 경험을 들려주고 있거나,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왜 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정책을 펼쳤기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잘 들여다보고 찾아와야 한다."

포인트는 달랐지만,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파리라는 대도시의 놀라운 변화에 가장 관심이 높았다. 우리 도시들이 해내지 못하는 '정책 접근의 문제에 관한 진단'도 같았다. 모두 들떠 있었고 한껏 고무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리에서의 3일은 여정의 초반이기도 했고, 직접 변화를 실감하는 과정이었다. 참가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면서도 다각도의 해석이 나왔다. 이들의 성공과 우리가 해내지 못한 일들을 단순화하거나 도식화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나왔다.

"최근 파리의 변화에서 리더십과 관련한 부분을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에,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물론 대단한 일입니다. 다만 이게 이달고 시장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 이전부터 파리 시민들 사이에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주목해야 할 리더십이, 독단적으로 제시하고 끌어가는 방식은 아닐 겁니다."


앞서 파리지앵 한승훈씨가 말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전부터 파리는 자동차 이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파리는 오랫동안 치밀하게 설계된 조치들을 시민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끔 하는 탑다운 방식을 사용했고, 이것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 같습니다."

'도시들의 변화는 어느 한순간 이뤄진 것일까?'와 같은, 과정에 관한 궁금증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자전거 도시의 완성된 형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위트레흐트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 깊게 관찰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1970년대 이전에 운하였다가 고속화도로로 바뀌었고 다시 운하로 복원한 'Catharijnesingel'의 사례다.

1970년대부터 자전거 도시로 전환한 위트레흐트는 이전엔 자동차 도시였다. 자전거 도시로 진화하기 위한 여러 인프라 확대가 이뤄졌지만 이 운하의 복원 시점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 공사가 완료된 것이 2019년의 일이다. 이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연구와 의견 수렴의 과정을 통해 진행됐다고 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 1998년도였다.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화도로의 필요성이 줄었기에 영구적으로 폐쇄를 결정한 것이 2010년도다. 우리 같으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때부터 다시 1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총 20여 년이 걸렸다. 해마다 계획에 따라 끊임없는 혁신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혁신이 전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전거 도시, 야금야금 전략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개한 정석 교수의 조언처럼 자전거 선진도시들의 오늘은 철저하게 야금야금 전략을 취해왔다. 출국 전 강의에서 언급한 바 있는 코펜하겐 사례에서도 이것이 확인된다.

시내 보행화 구역을 만들기 시작한 1962년, 코펜하겐은 상징적인 공간을 골라 이 실험을 시작했다. 여기에서의 성공적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면서 '그렇다면 여기도...'라고 2차 확장한 것이 1968년이었다. 이후 1973년 78년, 88년, 92년, 96년까지... 차분하게 도시를 바꿔 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

그런데 일정 중반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가야할 미래임은 분명한데, 한국에 돌아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 것이다. 아직 답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공통적으로 나온 내용은 비슷했다. '결코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정리됐다. 

이번에 찾은 도시는 5곳, 기관 및 단체는 7개이다. 한 곳당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2시간. 도시 하나가 걸어온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이해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더구나 이를 바탕으로 미래 비전과 조언까지 구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하다. 영감만 얻고, 또 다른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 기사에서 소개한 한승훈씨의 '사후 작업에 관한 제안'을 다시 떠올리고자 한다. 아울러 1회성 연수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성과를 만들어 놓자는 연수단의 공감대를 다시 환기시키고 싶다.

이번에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자료와 조언 등을 사후적으로 요청하고 확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미처 물어보고 오지 못한 것,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오늘의 결과를 있게 한 과정상의 궁금증 등을 추가로 소통하며 해소해야 한다. '짐작'을 그냥 '짐작'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또 다른 물음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난이 전북도의원은 "이번에 유심히 살펴본 게 교통표지판"이라며, "이건 문화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고 법률적으로 뒷받침 돼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돌아가서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고서에 이런 부분을 담아볼 예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박 10일 일정 동안 보고 온 자전거 도시들에 대한 인상은 강렬하다. 가지고 온 또 다른 물음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다음 기사에 마무리해볼 생각이다.
#자전거 원정대 #자전거 도시 # CATHARIJNESINGEL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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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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