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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자본에 의한 '생태 학살'... 언제까지 방관할 건가

[4.14 기후정의파업] 4월14일 세종으로... 저항만이 기후위기를 멈출 수 있다

등록 2023.03.22 14:40수정 2023.03.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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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4일(금) 세종정부청사에서 기후정의파업이 펼쳐집니다. 전국 곳곳에서 ‘나의 하루를 멈춘’ 이들이 모여 기후정의 대정부 투쟁을 펼칩니다. ‘사회공공성 강화로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자’,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생태학살을 멈춰라’를 외치며 13개의 구체요구들을 내걸었습니다. 오직 기업과 자본의 이해에만 봉사하는 정부의 폭주를 막아야 합니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이번 기후정의파업의 요구와 주장을 알리기 위한 총 8회에 걸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페이지: https://april4climate.tistory.com/)[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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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조건부 동의 후 환경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환경단체 활동가들. 케이블카로 설악산 산양은 서식지를 잃게 된다 ⓒ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기후위기가 뭘까. 나는 기후위기를 '자본에 의한 생태학살이자 지구적 착취'라고 정의한다. 그러면 종종 사람들은 "학살이란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요?" 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 이후의 환경파괴와 생태위기를 '학살'이 아닌, 어떤 다른 말로 명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멸종동물이나 멸종위기를 말할 때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동일한 사태의 다른 표현인 '학살'에 대해서는 과도하다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멸종은 결과이지만 학살은 행위를 가리킨다. '멸종되었다'는 말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학살당했다'는 말은 숨겨진 학살자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것이 오늘날 지구상의 생명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고난을 생태학살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다.

'멸종 위기' 시대를 다룬 책 <멸종>의 저자 애슐리 도슨(뉴욕시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서기 1500년 이후 멸종된 육상 척추동물은 322종에 달하며, 현재의 멸종 속도는 과거에 비해 "적게는 천 배에서 많게는 만 배"에 달한다. 멸종되지 않은 종들도 그 개체수가 1/4이 감소했다. 전체 종으로 보면 "하룻밤 사이에 약 100여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생물학자들은 멸종이 이 속도로 계속 진행된다면 지구상의 동식물 중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인류의 역사에서도 환경에 대한 파괴나 인간과 자연과의 긴장관계, 다른 종과 부족에 대한 폭력적 지배가 나타났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그 어떤 시기에도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와 강도로 파괴가 일어난 적은 없으며, 이토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체계화된 형태로 대량학살이 이뤄진 적도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자본주의 지구'에서 일어난 대멸종에 대해 특별히 강조해서 말해야 한다. 과거의 멸종과 지금의 멸종이 다른 점은 현재 일어나는 멸종이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에 의한 것이다. 자본세의 멸종은 진화나 도태의 결과가 아니라 학살의 결과다. 중생대의 멸종은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자연적 사태였지만, 지금의 멸종은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해야만 하는 정치적 사건이다.

하나의 종 전체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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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수라갯벌 저어새들. 새만금신공항 개발로 수라갯벌의 생명들은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하나의 종 전체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사태다. 그동안 우리가 이 엄청난 사건을 지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시간적으로는 서서히 진행되는 '느린 폭력'의 형태로 일어났기 때문이고, 공간적으로는 주로 지구상의 특정지역에 집중되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구는 넓지만 생물종의 절반 이상은 열대우림지역에서 살고 있다. 위의 책에서 도슨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불리던 열대가 '멸종을 이끄는 도살장'이 됐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 도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침략자가 온다. 그들은 불도저로 숲을 밀어버리고 불을 내고 서식지를 파괴한다. 거주할 곳이 사라지면 그곳에 살던 존재도 모조리 함께 사라진다. 그냥 사라진다고 말하지 말자. 쫓겨나고 찢어지고 베어지고 죽임 당한다. 침략자는 누구인가. 그냥 '인간'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들은 은행과 기업과 정부다. 투자자와 폭력하청업자와 군대와 경찰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 그들은 여기에 왔는가. 때로는 목재, 팜유, 대두, 소고기를 얻기 위해, 때로는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때로는 도로와 댐, 유원지와 관광자원, 부동산을 개발하기 위해, 은행은 돈을 대고, 기업은 개발에 착수하며, 정부는 허가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을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원조'나 '투자'라고 미화하고 정당화 한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아니라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결과다.


생태학살은 먼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개발 이익을 계산한다. 금융자본은 투자자를 끌어 모은다. 정부는 지원을 담당한다. 법이 필요하면 국회에서는 특별법을 만든다. 전문가들은 학살의 중재를 자임한다. 이 지배동맹이 학살의 주범들이다.

주민들이 저항하면 군대와 경찰이 온다. 휘발유를 뿌려 숲을 태우는 폭력 용역업자들 대신 중재 용역업자들이 돈을 뿌려 지역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열대우림의 연기 속에 퍼져나가던 살을 태우는 냄새가 여기선 인간성을 태우는 냄새로 진동한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불신을 간직한 채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싸우는 이들은 고립된다. 공항을 짓겠다는 제주 강정, 부산 가덕도, 군산 새만금에서 일어난 일이다. 산악열차 케이블카를 짓겠다는 지리산에서, 설악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발전소가 들어선 월성에서, 삼척에서, 홍천에서 벌어진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금강과 낙동강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인종을 말살하는 제노사이드는 어떤 용서도 타협도 있을 수 없는 범죄라 여기는 당신은 생태학살, 에코사이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게다가 생태학살은 인종학살과 분리되지 않는다. 생물 종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말살도 동반한다.

세상에 그런 '빈 땅'은 없다... 결국은 이윤을 위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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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모래톱에서 발견된 꼬마물떼새 알, 최근 공주보 담수로 물떼새가 알을 낳을 곳이 사라지고 뻘만 가득하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빌딩이 올라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도로가 나고, 공항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나는 어린 시절 내내 그런 경제 성장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그 모든 것들을 어떤 위대한 사람들이 '빈 땅' 위에서 해낸 것인양 믿게 됐다. 

위인전에도 그런 인물들만 잔뜩 나왔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빈 땅'은 없다. 무엇인가 들어올 자리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삶터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올라가기 전에 그 땅에 무엇이 있었을지, 누가 살았는지,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대규모 개발과 토건은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태와 사회를 말살하며 거기 잇던 존재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버린다.

이와 같은 학살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하면 우리는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의 사치와 낭비와 오락,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에 의해서만 지탱되는 풍요로운 제국주의적 생활양식, 어떤 돌봄도 회복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투자자들의 수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학살은 어떤 중재와 타협의 대상도, 완화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자연을 절대적으로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고 어느 정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맞다. 농민이 농사를 위해 땅을 갈고 풀을 뽑을 때도 다른 생명을 죽인다. 사냥하는 동물들도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이를 구한다. 모든 생명 존재는 다른 생명을 먹고 산다.

우리의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늘 내 목숨을 살리는 다른 이의 삶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고,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을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윤을 위해서' 수많은 생명을 이토록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죽이는 문명은 자본주의가 유일하다. 필요는 충족되지만 이윤은 영원히 충족을 모른다. 돈에만 굶주린 자본주의 체제를 막지 않고서는 생태학살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저항만이 학살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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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생태학살과 맞서는 이들의 성토대회’ 현장 ⓒ 김병기

 
학살을 멈춰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나는 학살의 현장에서 전해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가덕도 신공항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가덕도를 살려주세요. 낙동강을 살려주세요. 모두 함께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얼굴과 육성은 그동안 본 기사와 자료를 뛰어넘는 '근거'가 됐다.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할 근거. 왜 그런지 나는 그 목소리에서 광주민중항쟁의 가두방송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학살의 목격자로서, 증언자가 되고, 저항자가 된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목소리는 이름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도요새야, 저어새야, 직박구리야! 두견새야, 팔색조야, 나그네새야! 상괭이야, 수달아! 산양아, 반달곰아!' 곧 가덕도의 목소리는 수라 갯벌의 목소리가 됐고, 다시 설악산과 지리산의 목소리가 됐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이대로 살 수 없다는 목소리는 또한 집과 마을을 잃은 사람들과 권리와 존엄을 빼앗긴 노동자들의 목소리였고, 감옥에 갇힌 동물과 도살장에서 죽임당하는 동물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곳은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에서 열었던 '생태학살 성토대회'다. '탄소에서 시작해서 탄소로 끝나는' 주류 환경주의 기후담론에서는 늘 이 얼굴과 목소리들이 쉽게 배제된다. 하지만 싸우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실천 행동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학살이 일어나는 곳이고, 학살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멈춰!'라고 함께 소리를 지르고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목소리의 목소리'가 되지 않는 한, 지배권력 내부의 그 누구도 저 목소리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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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기후정의파업 포스터 ⓒ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

 
그래서 4월 14일 금요일에, 나는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세종시로 간다. 은행가와 기업가, 법률가들이 드나들고, 관료들에겐 가장 안전하지만, 저항자들은 외롭게 싸우는 곳. 민의 대변과 집행이라는 형식적인 자기 명분마저 완전히 배반하고 철저히 자본의 대행기구가 된 정부, 생태학살을 공모하고 승인하며 지원하는 국토부, 환경부, 기재부가 거기 있다. 정부가 왜 있으며, 그들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거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나는 정부가 노동자 민중의 편이라고 믿지 않는다. 공유지 갈라먹기 하듯이 거대 자본이 공공부문을 나눠 먹고 있는 사유화된 신자유주의 정부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와 공무원도 정부 경력을 각자도생의 밑천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민들이 흔들고 두드려야 한다. 사회운동의 압력을 받지 않는 정부는 더욱더 충직한 자본의 집사로 복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권력을 스스로 자본에 넘겨주는 정부를 계속 용인해선 안 된다. 자본의 용역 정부는 독재 정부만큼이나 위험하다.

서울에서 떨어진 섬 같은 곳에서 지배동맹의 관료지배는 오랫동안 안전했다. 그 공간에 파열구를 내는 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틈을 만들어내는 시도기도 하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세종시를 흔들고 지배체제를 뒤흔들 것이다. 그러니 흩어져 싸워온 사람들은 모두 모여 함께 가자. 지금의 생태학살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저항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채효정씨는 기후정의동맹 활동가입니다.
#414기후정의파업 #생태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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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기후정의동맹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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