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3 15:44최종 업데이트 23.03.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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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15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행정안전부


코로나19 전만 해도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등 감염병 괴담은 이제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과 함께 소비되어왔다. 이제는 치료제와 백신, 그리고 효과적인 치료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감염병이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응도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무지와 낙관적 기대는 객관적 문제 인식을 어렵게 만들었다. 감염병 관리체계는 필요한 수단을 적절하게 준비하지 않아 흔적만 남았고, 보건의료체계는 더 중요한(?) 질병들에 여력을 빼앗겼다. 그 결과 '조금만 더'를 외치며 버티는 상황이 이어졌다. 2003년 사스, 2009~2010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9년 코로나19의 유행은 더 크고 위험한 감염병 유행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2003년 사스를 겪고 체계를 정비한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대응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면밀한 준비 없이도 재난이 닥치면 필요한 역학조사와 감시, 격리 및 치료 병상을 바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 때문에 위기가 찾아온다.

코로나19 전 공중보건체계는 잘 운영되었던 것일까? 위기에 대비해 필요한 절차와 내용을 관련 법령과 규정으로 잘 정비해뒀던 것일까? 정부와 보건당국은 위기 대응에 필요한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었을까? 보건의료체계는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미래에 필요할지 모르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을까? 제공하는 서비스가 적절한 성과를 만들어내는지 파악하는 공적 관리자의 역할을 할 의지는 있었을까?

감염병 감시체계와 역학조사는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일상적인 범죄 수사 및 화재 신고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감염자는 전파자, 슈퍼전파자로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고 전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병의원과 같은 의료체계는 감염자를 치료하겠지만 이런 기능까지 담당할 수는 없다.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를 적절한 조치로 미리 막을 수 있다면 이를 담당하는 기관은 사회 필수기관이다. 감염병 대응이 사회 필수업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소방방재청이나 경찰청같이 전문조직 수준의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감시와 조사체계 구축 방안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본 적은 별로 없다. 현재의 질병관리청은 이런 논의를 기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경찰·소방 같은 감시·조사체계 필요
 

2021년 2월 10일 서울역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 검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학조사와 관련한 논의의 대부분은 역학조사관과 관련된 것이었다. "질병관리청과 시도, 시군구에 역학조사관이 전혀(또는 충분히) 배치되어 있지 않다"라거나 "채용된 인력의 고용 조건이 부적절해서 사직과 이직이 많다"와 같은 내용이다. 역학조사관은 역학조사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특별히 운영하는 전문인력을 일컫는 말이다.

경험과 역량이 충분한 역학조사관이 있을 경우 범위와 대상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원활하게 조사·조치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없는 경우에도 가용 인력과 자원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활동이 역학조사이다. 역학조사관은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지, 역학조사관만으로 역학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역학조사에는 역학조사관과 보건소의 감염병 대응 인력과 역량 모두가 필요하다.

모든 논의는 역학조사관 확충에 집중되어 숫자 채우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대부분 임기제 계약직 공무원으로 급히 채용했다. 장기적으로 어떻게 육성하고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공허한 계획만 있을 뿐, 이들 역학조사관이 근무할 기관과 조직도 정비되지 않은 채 단지 숫자만 헤아렸다. 결과적으로 많은 전문인력이 지원했지만 이미 그만둔 사람이 대다수이다. 다음번 유행에는 같은 논란과 논의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 전국적으로 A형 간염이 유행했을 때 체계적 감염병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의 대응은 '감염병 관리지원단'을 전국적으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마치 엄청난 조직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대책이라고 하기보다 미봉책 또는 편법이었다.  

우선 보건소와 시도 단위의 핵심역량 확충 없이 감염병예방법의 '감염병 관리사업 지원기구'를 설치하여 필수업무의 외주화 조치를 시행했다. 오히려 체계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조치였다. 국가 사무를 이런 형태로 외주화·위탁하는 것은 불법·위법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정규직제를 만들고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다양한 감염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도 감염병 관리지원단이 담당하는 업무는 상설 공중보건기관이 수행해야 할 일들이다. 더구나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에서는 시도의 역학조사관·반원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다. 이런 영역은 보통은 정규직제에 반영하거나 별도의 특수법인을 만들어 전문인력을 고용하지만 감염병 관리지원단은 운영주체가 불분명한 위탁사업이다.

감염병예방법과 제8조와 시행령 제1조의 2는 민간 전문가의 자문과 지원을 위한 기구로써 '감염병 관리사업 지원기구'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는 중앙과 시도의 감염병 관리사업 지원기구에 의료인, 대학이나 공공기관 감염병 관련 분야 근무자와 같은 역량을 갖춘 이들을 위촉하여 운영할 때 필요한 사항만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법령을 근거로 단순 자문이 아니라 수행·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상시 해야 하는 감염병관리지원단을 설치·운영하려고 할 경우 필요한 여러 사항들이 갖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보건의료 분야에는 다양한 지원단과 센터들이 필요한 제반조건 없이 운영되고 있다. 설립요건, 운영방식에 대한 규정 없이 산학협력, 위탁사업으로 필수사업을 탈법·위법적으로 운영한다.

정해진 기관 설치와 운영 시 따라야 할 규정이 없다 보니 지역마다 상황이 다양하다. 서울, 전남 등 일부 지역은 시도의 정규직제로 운영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기존의 선례를 따라 공공기관이나 명망이 있는 교수 등 전문가에게 위탁하여 운영한다.

위탁 방식도 다양하다. 대학 산학협력단이나 임의단체(법인으로 보는 단체)에 위탁하기도 하고, 공공기관에 예산사업으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위탁 형태로 운영할 경우 노동법 사각지대일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비정규직에도 못 미치는 제3의 '국비 계약직'으로 분류되어 2년에 한 번씩 계약 해지, 재계약, 재채용 등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평상시에 안정적인 운영과 역량 확보가 꼭 필요하지만 별도의 근거 규정 없이 자문 또는 한시 기구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실제 기관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필수 인력인 연구원이 계약직 형태로 채용되어 안정적·전문적 운영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채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로 공적 사무를 운영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공공병원 위주의 전담병원
 

2021년 11월 23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 중환자실이 빼곡히 들어찬 중증환자 병상과 의료진으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감염병 관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역학조사와 감시체계도 이런 상황에 있으니, 다수의 민간 의료기관들과 협력해야 하는 감염병 치료 지원체계는 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감염병 감염자와 접촉자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감염병 관리기관(이른바 전담병원) 등 시설은 핵심 기반이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 질병관리청장 또는 시도지사가 사전에 지정하여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평소 감염병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기관은 물론, 평상시에는 감염병 환자를 치료하지 않았지만 감염병 유행 규모가 커지면 그 역할을 담당할 기관을 사전에 지정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이런 수단과 절차들도 잘 준비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공공병원 위주의 전담병원을 운영하고, 한국 사회 보건의료 체계의 한계를 언급하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생중계되었던 간당간당한 치료 병상 점유율은 다수의 시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줬으며, 감염자 폭증으로 입원 대기자, 사망자가 발생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감수하는 상황이었다. 한국 사회 보건의료 체계의 한계를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더 적극적인 수단을 모색하지 않았다.

재난의학 분야에서는 과거 여러 연구를 통해 '위기시 진료 표준'을 병원과 지역 단위에서 적용하여 일시적 대규모 재난(감염병 대유행 포함)에 대응할 것을 제안해왔다.

최근 외국 의학 드라마에는 고급 민간병원을 지향하는 병원들도 지역 보건당국과 지시에 따라 협력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병원들은 예정된 수술과 진료를 줄이고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 전체를 전환한다. 초기에 급증하는 환자로 어려움이 발생했지만 모든 보건의료기관이 협력하여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에도 유사한 '입원명령'이나 '행정명령' 등으로 치료 관리 시설을 확보했지만 그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외국에 비해 감염자가 매우 적은 상황에도 대응하기 버거웠다. 감염병 관리기관의 지정과 지원은 이를 위한 최소조건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서 핵심과제였던 지역사회 감염병 관리기관 지정과 지원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지역별로 감염병 관리기관을 지정하고 음압병실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은 예산 확보와 의료기관의 협조가 되지 않아서 일부 공공병원에만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음압병실을 설치한 곳이 공공병원이라는 현실로 인해 모든 공공병원이 2020년 2월 감염병 전담기관으로 지정됐다. 이런 특별한 전담병원 체계는 국지적 감염이나 초기 대응에는 유용할 수 있겠지만, 감염병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래의 대안으로 고려되는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도 초기 대응 이후에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장)에 "재난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중대 결정인 치료받을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제한"하도록 권한이 위임되어 있는데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대통령이나 시도지사도 하기 어려웠던 조치이다. 이러한 조치는 또 다른 재난을 만들 수 있다.

지방조직 없는 질병관리청
 

2020년 9월 14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질병관리청 개청 기념식'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등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에 질병관리청을 신설했다. 2003년 사스 이후 질병관리본부 체계가 발족한 이래 가장 큰 폭의 보건 분야 직제 개편이다. 질병관리청은 초기 국립감염병연구소의 관할권 문제로 일부 논란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큰 이견 없이 이뤄졌다.

그러나 질병관리청 조직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신종 감염병 위기 대응 위주, 관리와 예방접종 등 주요 수단별 과 단위 직제로 이뤄져 있다. 주요 감염병별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감시, 조사, 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성해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보건복지부와의 업무 분장에서도 질병관리청은 주로 감염병 관리에만 국한되어 있어 감염병 치료와 격리를 위한 시설 지정과 운영과 관련해서는 권한과 책임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는 현재 감염병 위기 대응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일상 체계에서 중추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 기반과 역량 강화와 관련된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마치 질병관리청이 모든 지역의 감염병 대응을 전담하는 지방조직(권역별 질병 대응센터)을 별도로 갖추고 있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언론에서 무수히 제기했듯이 지방자치단체에 인력·조직·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매뉴얼에 따라서 시행을 강제할 때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평상시 지역에 실무적으로 시행하고 고민할 인력과 조직이 없으니, 지역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고민할 수조차 없다.

광범위한 영향력이 있는 조치는 평소에 충분히 고려하고 준비해서 주요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가운데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공중보건 체계는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지만 많은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고 공허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 감염병 유행도 반복되는 혼란과 폐허 속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문제해결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발생하는 여러 건강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조사하고, 이를 관리·지원·대응 체계로 연결하는 사회적 활동이 필요하다. 적어도 시군구 보건소는 일상적인 감염병과 주요 건강위험 요인에 대한 조사·감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 보건 당국은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 시군구 단위에서 실행 가능한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평가하고, 필요시 보완하고 지원할 수 있는 더 큰 역량이 있어야 한다.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핵심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건소를 지원하고 협력하며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경쟁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공중보건 체계를 개선하고 더 나은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창훈 / 부산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 김창훈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창훈은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로 부산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 활동에 연대하고 있으며, 관심 영역은 공중보건, 보건의료 활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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