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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희생자+생존자 450명 금융조회, 별건 수사 때문이냐?"

[현장] 이태원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 "합법 가장한 인권탄압이자 사자 명예훼손"

등록 2023.03.22 13:31수정 2023.04.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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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과 경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의 동의 없이 금융 정보를 조회한 것에 항의하며 유가족에게 보낸 금융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서를 찢어 버리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쳐) ⓒ 유성호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이런 통지서, 다시는 보내지 마시오."

22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앞,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 피해자 20여 명이 일제히 금융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서를 찢어 하늘로 날렸다. 통보서에 적힌 정보 요구기관은 '경찰청', 정보 사용 목적은 '범죄 수사'였다.

참사 피해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사기관이 무분별한 정보 조회로 피해자 인권을 탄압했다며 비판을 제기했다. 서울경찰청이 지난 1월부터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과 생존자 292명 등 총 450명을 대상으로 금융정보 영장을 발부받아 카드 사용 내역과 입출금 거래 내역 등을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혼잡 시간 밝히는 데 왜 특정 개인 정보 조회?"
 

동의 없는 금융 정보 조회에 분노한 이태원참사 유가족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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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과 경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의 동의 없이 금융 정보를 조회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경찰 측은 검찰 측의 보완 수사 요청으로 이태원 역장의 무정차 통과 요청 불응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관련 정보를 조회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교통카드 내역 외 입출금 내역이 조회된 사실에 대해선 정보를 제공한 금융기관의 '업무상 착오'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통지서를 받아 들었던 참사 피해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라고 했다. 수사 책임자들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함께 촉구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역 혼잡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450명 개인을 특정해 정보를 조회할 것이 아니라 참사 발생 시간대 이용 현황을 파악했으면 될 문제였다는 반박이다.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간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혐의를 파악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시간이 기준이라면 교통카드 업체에 요청해 (혼잡) 시간 내역만 받으면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도 정보 수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 실수'라는 해명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 부대표는 "실수가 맞다면,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검경은 적법 수사라 항변하지만 (범죄자가 아닌) 희생자와 생존 피해자들의 카드 내역을 들여다 보는 건 합법을 위장한 인권 탄압이고,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라고 강조했다. 


2차 피해도 호소했다. 

이 부대표는 "사전에 어떤 언급도 없었다"면서 "누구를, 무엇 때문에, 왜 조회하는 지에 대한 내용도 없고 통보서 한 장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참사 피해자들은 이날 서부지검에 전달한 항의 서한에서 "유가족들은 통지서를 개봉한 순간 2차 가해를 받은 것처럼 깊은 상처를 받았고 생존 피해자들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정보인권 전문가와 법률가들은 수사기관의 이러한 금융 정보 조회가 참사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지적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활동가는 "피의자와 특별한 관계도 없는 피해자들의 정보를 무더기로 가져간다는 건 상당히 문제가 있다"면서 "허술한 제도를 악용한 검경은 피해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권력의 반인권적 형식주의"... 2차 피해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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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와 이정민 부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검찰과 경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의 동의 없이 금융 정보를 조회한 것에 사과를 촉구하며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소속 조지훈 변호사는 수사 기관의 형식주의에 따른 반인권적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정보 조회) 대상자의 처지, 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모습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경찰권이 (제때) 행사되지 않아 희생된 피해자들인데, (이들에 대한) 금융정보를 위해 강제 수사를 밟을 땐 신속한 수사권을 행사한다. 이 불균형은 어디에서 오는지 검경은 자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450명 특정인에 대한 정보 조회가 마약 등 또 다른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이들은 "금융거래조회 통지서를 받은 유가족들은 희생자들과 생존 피해자들에게 참사 책임을 돌리기 위한 소위 마약 거래 수사 등 개별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별건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서부지검 민원실을 찾아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 서한에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혐의 입증에 450명 피해자 압수수색이 적절한 수사 방식인지 ▲설명 및 동의 없이 정보를 수집한 이유 ▲450명 선정 기준 ▲통신 조회 아닌 금융 정보 수집 방식 선택 이유 ▲지난해 검찰에서 반려한 정보를 올해 검찰이 허용한 이유 등의 질문이 담겼다. 
#이태원참사 #검찰 #경찰 #금융정보 #피해자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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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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