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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list' 1억·다음날 남욱 '3백억 건물' 구입...커지는 물음표

[김용 공판 분석①] 1007억 배당 남욱에 "손톱같은 작은 돈"...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등록 2023.03.24 11:12수정 2023.04.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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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남욱 변호사가 마련한 8억4700만원 중 6억원이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그 전달 경로를 검찰은 남 변호사 측근인 '이○○ → 정민용 → 유동규 → 김용'으로 보고 있지만, 특히 '유동규 → 김용' 전달 상황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군부독재 이후 처음으로 제1야당 당사 압수수색을 검찰이 강행하게 만든 사건, 공판 과정에서 나오는 물음표들을 하나 하나 따져본다.[편집자말]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이 21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진행됐다. 지금까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김 전 부원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공판을 거듭하면서 '물음표'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른 불법 정치자금 8억4700만 원 이동 경로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차] 이OO → 정민용 → 유동규 → 김용
[2차] 이OO → 정민용 → 유동규 → 김용
[3차] 정민용 → 유동규 → 김용
[4차] 이OO → 정민용 → 유동규 


위 이동경로 모든 출발점에는 남욱 변호사가 있다. 그가 만든 8억4700만 원이 결국 불법정치자금이란 것이 검찰 공소 내용의 골자다. 이OO은 남 변호사의 측근이다. 3차 과정 외 나머지 돈의 최초 전달자다. 8억4700만 원 중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됐다고 검찰이 판단한 돈은 6억 원이다. 나머지 2억4700만 원 중 1억 원은 남 변호사에게 다시 돌아갔고, 1억4700만 원은 유 전 본부장이 '배달사고'를 냈다는 것이  현재까지 공판에서 정리된 상황이다. 

남욱이 마련했다는 8억4700만원,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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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뇌물 수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사건에서 검찰의 주요 포인트는 '유동규 → 김용'이다. 그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OO → 정민용'이나 '정민용 → 유동규' 단계에서 돈이 언제 오갔는지 또한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일종의 '선행조건'이다. (위 이동 경로 참조). 그러나 앞서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각각의 시기를 2021년 4월경, 6월 초순경, 6월경, 8월 초순경' 정도로 지목했다. 1차 전달 과정만 그 예로 보자.

"피고인 정민용은 2021년 4월경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엔에스제이홀딩스 사무실에서 남욱의 지시를 받은 이OO로부터 현금 1억 원을 수수한 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피고인 유동규에게 위 현금 1억 원을 전달하였고, 피고인 유동규는 그 무렵 위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피고인 김용에게 위 현금 1억 원을 전달하였다."

'이OO → 정민용 → 유동규 → 김용'으로 이어지는 전달 과정에서 각각 구분·특정돼야 하는 일시가 '2021년 4월경'과 '그 무렵'으로 뭉쳐 있다. 이런 상황은 공판 과정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검찰이 정민용 변호사의 교통카드 사용내역 등을 내놓으면서 '이OO → 정민용' 단계에서 돈이 오간 시점은 공소장에 비해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났지만, 그다음 단계들의 경우는 '그로부터 다음날 또는 이틀 후, 사흘 후' 이런 식의 진술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 변호사나 유 전 본부장 기억을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날짜가 특정되지 않으니 김 전 부원장 입장에서는 알리바이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남욱 변호사가 8억4700만 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 측 사이에 현재까지는 큰 이견이 없다. 검찰 수사와 그동안 공판으로 드러난 바를 요약하면 남 변호사는 크게 3가지 방법으로 돈을 마련해 이들에게 전달했다.

이○○가 운영하는 회사 거래처 운영자나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렸다. 남 변호사가 운영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은 복수의 공사업체들로부터 공사대금을 증액하는 방식의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됐다. 여기에, 엔에스제이홀딩스(천화동인4호) 사무실에 있던 현금 1억원을 더했다. 이 돈도 앞서 남 변호사가 이○○씨를 통해 다른 사업가에게 빌린 돈이란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결국, 8억4700만원 중 실제 남 변호사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돈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1007억... 그에 비하면 "손톱같은 작은 돈"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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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욱 변호사가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뇌물 수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남욱 변호사가 대장동 사업에서 천화동인 4호를 통해 배당 받은 금액은 1007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물음표는 여기서 생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배당받은 그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심지어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돈을 마련했을까' 하는 것이다. 김 전 부원장 측 변호인 표현대로 "배당금에 비하면 손톱 같은 작은 돈(3월 7일 1차 공판)"을 말이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1차 공판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남욱 피고가 이 돈이 어디 사용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 명 동원해 어렵게 현금을 조성한 것이다. 추적 들어오면 적발될 수 있으니까 회수해야겠다고 유동규에게 말했고, 유동규 또한 정말 본인이 사용할 요량이었다면 알아서 세탁하든 알아서 하겠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남욱에게) 반환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대선 경선 자금'을 제공한다는 위험성을 감안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이날 공판에서 검찰 스스로 밝힌 사실 관계로 보면  즉 2020년 유 전 본부장이 실소유주였던 유원홀딩스에 투자금 형식으로 남 변호사가 35억 원을 송금한 상황을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검찰은 "남욱 피고가 유동규 피고에게 어렵지 않게 돈을 줄 수 있었던 상황"으로 강조했지만, 당시 유 전 본부장 역시 공직에 있었던 만큼 추후 뇌물죄가 적용될 위험이 있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유원홀딩스 대표이기도 했던 정민용 변호사는 남 변호사가 보낸 35억원 중 11억8000만 원을 유 전 본부장 전 부인이나 재혼 여성에게 송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경선 자금'이라는 명목 자체도 의문이다. 7일 공판에서 김 전 부원장 측 변호인은 "지금과 물가 비교가 안 되는 2002년 당시에도 대선후보가 선거 자금으로 300억 원도 부족하다고 했는데, 경선 캠프 운영에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해놓고 (김용 측에 전달된) 그 돈이 6억이라고 한다"면서 "불법 정치자금이라고 하면 한 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도 왜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관계가 하나 있다.

'Lee list'... 그 다음 날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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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욱 변호사와 'Lee-list' 작성자로 알려져 있는 이OO씨가 운영했던 엔에스제이피엠 법인등기부. ⓒ 이정환

 
'4/25 1, 5/31 5, 6 1, 8/2 14300'.

암호 같은 이 숫자들은 이른바 'Lee list(Golf)'로 알려져 있는 메모 내용이다. 남 변호사 지시를 받은 전달자 이OO씨가 정민용 변호사에게 자금을 건넨 날짜와 금액을 기록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이 김 전 부원장에게 언제, 어떻게 돈을 전달했는지 보여주는 물증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검찰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수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다. 재판부로서는 이 메모의 신빙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은 21일 공판 당시 재판부의 정 변호사에 대한 신문.

- 첫 번째 1억을 준 날이 (2021년) 4월 25일이라고 했다. 그 날 일요일이다. 최초 수수 날짜로 특정한 이유는?

"이OO랑 같이 날짜 특정할 때 구체적으로 날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특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 끝났다."

- 중점적으로 보는 건 첫 번째 1억이다. 4월 25일이란 언급이 이OO와 논의할 땐 없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았다."

이 메모(옆서 나온 Lee list)는 앞서 남 변호사 측이 자발적으로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일 1차 공판 서증 조사 당시 검찰 측은 "이OO가 기억을 더듬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메모 작성에 앞서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정 변호사와 이OO씨가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까지는 날짜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다시 물었다.

- 이OO와 서로 전화한 내용 보면, (2021년) 4월 27일, 15분, 35분 장시간 통화했다. 무슨 이유로 통화했나.

"그 부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검찰 조사 때도 말씀 못 드렸다."

- 그 전후로도 이OO와 장기간 통화하는 사이인가.

"특별한 이슈 있으면 통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당시 특별한 이슈가 없었을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욱 변호사에게는 특별한 이슈가 있었다.

2021년 4월 26일, 남욱 회사 300억 부동산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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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에스제이피엠이 2021년 4월 26일 매입한 부동산 등기부. ⓒ 이정환


엔에스제이피엠. 남욱 변호사가 2021년 1월 26일 설립한 부동산개발업체다. 이 업체는 설립 이후 석 달도 되지 않아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4-OO 토지와 건물을 사들인다. 해당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거래 가액은 300억 원. 

2021년 4월 26일은 엔에스제이피엠이 이 부동산을 사들인 날짜다. 'Lee-list'에 따르면 1억 원이 최초로 오갔다는 바로 그다음날, 남 변호사가 거액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다. 더욱이 'Lee-list' 작성자로 알려져 있는 이OO씨 또한 당시 엔에스제이피엠 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4월 25일을 전후해 있었던 '특별한 이슈'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런데도 왜 정 변호사는 이OO씨와 'Lee-list' 관련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특별한 이슈가 없었고, 당시 장시간 통화한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제의 메모에서 왜 4월 25일을 최초 수수 날짜로 특정했는지, 그 물음표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에 따라 '정민용 → 유동규 → 김용'으로 이어지는 검찰의 공소 사실이 더 단단해지거나 또는 더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6차 공판에서 남 변호사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진다.
#남욱 #유동규 #엔에스제이피엠 #김용 공판 #정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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