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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간부 '성희롱' 금속노조 지부장 사퇴... 부적절 대응 도마

피해자 분리 등 안돼 내부 반발, 성희롱 발생 10개월 후 사퇴...수석부위원장 '2차 가해' 사과문

등록 2023.03.24 10:59수정 2023.03.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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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실 모습.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 대응 과정에서 금속노조 집행부가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적절한 대응을 이어가자, 내부 구성원들이 사무실에 피켓을 붙이며 집단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 제보자제공


민주노총 금속노조 인천지부 지부장 A씨가 수련회 도중 지부 소속 여성 간부에게 "나랑 자자"는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내부비판이 이어지자 지난 1월 말 지부장직에서 사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건 발생 이후 수개월간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내부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상급 간부가 피해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등 2차 가해까지 벌어져 금속노조의 부적절한 대응이 도마에 오른다.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4월 1일 제주도에서 진행된 인천지부 수련회에서다. A 인천지부장은 뒤풀이 저녁식사 뒤 호텔로 돌아와 흩어지기 전 한 여성 간부에게 "OOO과 OOO이 자고, OOO(피해자 이름)은 나랑 자자"고 말했다. A씨가 지부장으로 있던 금속노조 인천지부는 조합원 5300명 규모의 조직이다.

이후 피해 여성 간부는 노조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금속노조는 같은 해 5월 10일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이찬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피해자가 참여한 한 공식회의 자리에서 '내가 A씨 상황이었다면 반박 홍보물을 냈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성희롱 피해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던 피해자는 이 수석부위원장의 2차 가해에 대해 별도의 문제제기까지 해야 했다.

진상조사가 끝난 뒤 금속노조는 A씨에게 '3개월 권한정지' 징계 처분을 내렸지만, 내부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복수의 활동가들은 금속노조 집행부 중 A지부장과 동일한 정파에 속한 인원이 다수 포진돼 있던 점이 징계수위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한 활동가는 "비슷한 사건의 경우 통상 최소 1년 이상의 권한정지가 나오는데, 이례적으로 징계가 약했다"라며 "집행부는 물론 집행부가 꾸린 진상조사위원회에도 A씨와 같은 정파 소속 사람들이 주요하게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조합원은 "진상조사위 구성 당시 피해자 측에서도 가해자와 같은 정파 소속이 포함되는 것은 방지해달라고 기피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파티션 분리' 이어 가해자에 '50평' 사무실 제공... 내부서도 집단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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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실 모습.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 대응 과정에서 금속노조 집행부가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적절한 대응을 이어가자, 내부 구성원들이 사무실에 피켓을 붙이며 집단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 제보자제공


A 지부장이 3개월 징계 기간을 마치고 지난해 9월 직무에 복귀한 뒤에는 기본적인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피해자가 분리조치를 요구하자 금속노조는 '사무실 내 파티션 설치'를 지시했다. 한 인천지부 조합원은 "사무실이 30평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파티션을 설치한다고 한들 실질적으로 공간 분리가 안 된다"라며 "노조에서 진행한 젠더교육에서도 파티션 설치는 피해자·가해자 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정작 노조가 이런 조치를 내린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집행부 결정에 반발한 금속노조 활동가들은 사무실에 '파티션 격리 웬말이냐, 가해자를 명확히 격리조치 하라' '나랑 O자고 한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시키는 게 금속노조가 할 일이냐' '파티션은 구분이지 격리가 아니다' '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참사, 피해자가 피해 다니라는 건 격리가 아니다' 등의 팻말을 붙이며 집단 항의표시를 했다.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금속노조는 지난해 10월 말 A 지부장을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조가 5000여 만원의 조합비를 들여 새 사무실 임대료와 집기 비용을 지원해 또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금속노조의 한 여성 활동가는 "상식적으로 가해자 공간분리를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다면, 1인 공유 오피스 같은 곳을 생각하지 않겠나"라며 "노조에서 가해자에게 지부 사무실보다도 큰 50평대 사무실을 구하도록 허락해준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그는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폭력으로 인한 가해자 근무장소 변경 시 피해자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라며 "그런 절차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수백 명의 금속노조 활동가들은 가해자의 새 사무실 임대에 들어간 조합비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연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2차 가해' 얼룩진 10개월... 지부장 사퇴하고 수석부위원장은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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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실 모습.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 대응 과정에서 금속노조 집행부가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적절한 대응을 이어가자, 내부 구성원들이 사무실에 피켓을 붙이며 집단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 제보자제공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A 지부장은 결국 지난 1월 30일 인천지부 지부장직 임기를 1년 남기고 중도 사퇴했다. 최초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금속노조 역시 입장문을 통해 "인천지부 A 지부장 성폭력 사건 및 2차 가해로 인해 상처를 입은 피해자 동지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숙함을 드러낸 점도 전체 조합원들께 사과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지난 2월 27일 가해자의 새 사무실 임대 용도로 지출됐던 조합비 손실금 전액을 환입 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조직문화혁신TF 사업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내부용으로 작성된 해당 보고서에는 "(성폭력)사건에 대해 자정 능력이 키워지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하고 성평등한 조직을 공동 지향, 실체적 변화를 만들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전직 인천지부장 A씨는 21일 통화에서 "노조에 이미 관련 진술을 했고, 징계도 받았다. 이외에 추가로 입장을 말할 것은 없다"고 했다. 이찬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1월 17일 낸 입장문에서 "2차 가해자의 신분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진상조사위원장으로서 평등한 성인지성 부족으로 하지 말아야 할 발언을 해 피해자 동지께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렸다"고 고개를 숙였다. 

금속노조의 한 활동가는 "금속노조는 구성원이 19만 명이나 되는 큰 조직인데 성희롱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1년 가까이 지체하면서 피해자 고통만 키웠다"라며 "내부 문제가 터지면 공론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폐쇄적 문화, 성희롱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면 사실관계와 상관 없이 정파적 이유가 있다며 왜곡하는 가해자 온정주의가 함께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성희롱 #2차가해 #수석부위원장 #인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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