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등록 2023.03.23 14:14수정 2023.03.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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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프로그램 중에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이 있다. 이혼 위기의 부부가 출연하여 일상을 공개하고 상담하면 전문가는 그 문제 원인을 분석하고 적절한 처방을 제시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무척 뜨겁다. 자신의 결혼 생활과 어려움을 돌아보면서 공감과 함께 해결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결혼에 대한 현실적 대안과 통찰이 담긴 소설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 2016)은 독특한 구성과 남다른 관점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저자 알랭드 보통은 일상의 철학자로 불린다.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 태어난 그는 하버드에서 철학 박사 과정 중에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3편의 소설을 발표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은 전 세계 20개국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대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과 흥미로운 논리 전개, 철학적 통찰과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문장력 등으로 감각적이고 개성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어서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철학의 위안>, <일의 기쁨과 슬픔>, <뉴스의 시대> 등을 통하여 평범한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깊고 다양한 철학적 관점을 선보인다. 또한 실생활의 철학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인생 학교'를 설립하여 의미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며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소설은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을 통한 낭만적 사랑의 의미와 한계를 보여준다. 중동 출신의 '라비'와 스코틀랜드의 출신의 '커스틴'은 직장 생활 중에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며 일상을 살아간다. 한 부모 가정에 자란 그들은 결혼을 통하여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오히려 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상처를 주고 받는다.

말없이 떠난 아버지 부재가 큰 아픔이었던 커스틴은 직장일로 몇 달을 떠나 있던 라비를 향해 무뚝뚝하게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라비는 감정 표현에 서툴고 자격지심도 있어 아내에게 화를 내고 큰 소리를 지르곤 한다. 커스틴의 복직 이후 해결되지 못하는 갈등과 권태로 인해 라비는 외도를 하게 되고 결혼 생활은 서서히 지옥으로 변하게 된다.

작가는 사랑과 결혼에 담긴 낭만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라비와 커스틴 부부는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과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p.16)이 결혼 이후에도 이어지고 완성되길 바랬다. 하지만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며 결혼했다는 이유로 사랑이 저절로 유지되고 건 아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며 생활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교류하는 연애와는 전혀 다르다.


작가는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 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p.146)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어서 진짜 사랑이야기는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p.28)이 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은 결혼생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담고 있다. 결혼 생활의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과 사건마다 주인공의 심리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한 후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라비는 아내의 친구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을 비관하면서 동시에 커스틴에게 물질주의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에 작가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여 아내가 떠날까봐 두려운 라비가 그 두려움과 무력함을 숨기기 위해 아내를 지적하고 가르치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아주 많이 사랑해서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고?"(p.137)라는 아내의 반응에서 그의 가르침은 실패로 끝난다. 대신에 작가는 라비가 "그녀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태도와 자신을 결부"(p.135)시켜야 한다며 실제적인 대화 문장을 서술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부가 어떤 대화법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작가는 결혼 제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말한다. 라비는 결혼한 지 16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관계는 어떻게 유지해야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는 외도 이후 결혼 생활의 목적을 그전과 다르게 인식하면서 "제도로서의 결혼이라는 관념에 더욱더 공감"(p.243)한다.

제도로서 결혼은 순간적인 감정이나 일탈로 이혼 결정을 내리기보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고 인내하도록 이끄는 삶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한다. 결혼 제도라는 울타리가 없었다면 성숙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라비는 결혼 생활의 정당성은 "감정보다 더 견고하고 지속적인 현상"(p.242)들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결혼 생활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조언이 가득한 작품이다. 작가는 현실적인 결혼 이야기와 관계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독자에게 전한다. '결혼지옥'에서 벗어나는 대안을 제시하고 결혼 생활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살아가라고 권한다. 낭만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이나 결혼을 앞둔 커플들에게 '결혼생활 지침서'로서 일독을 권한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016


#낭만적연애 #결혼은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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