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지난 2022년 5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마지막 퇴근길을 축하하고 있다. ⓒ 이희훈
"민주당은 팬덤에 사로잡혀있는 그런 정당."(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3월 10일 정책의원총회)
"다가오는 총선을 진영정치, 팬덤 정치를 종식하는 일대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김진표 국회의장, 1월 11일 신년간담회)
"팬덤 정치를 기반한 소수의 극단적 지지자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보다 크게 가시화되면서 원내 의원들의 의견 개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 미래비전 리포트 중)
여야 모두 '팬덤 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정당·정견·정파가 아닌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강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골자로 하는 '팬덤 정치'는,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만악(萬惡)의 근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학 연구자로서 '시민 참여' 부문을 연구한 조은혜씨는 석사논문의 내용을 발전시켜 책 <팬덤 정치라는 낙인>(오월의 봄)을 통해 이러한 통념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팬덤 정치'라는 담론이 "시민들의 달라진 정치인 지지 방식과 정치 참여 양상을 그저 비이성적 집단의 행위로 폄하하거나 낙인찍을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34p)라며 '우상화' '맹목성' 등만 요소만 부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인물 지지 정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세우며, "사회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시민들의 새로운 참여 행동, 신뢰하는 행위자를 제도 정치 영역에 등장시키고 힘을 실어주려는 행위"(21p)라고 규정했다. 이는 연구자 개인의 통찰에만 근거한 주장은 아니다. 조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직접 심층 면접했다. 또 그를 통해 '팬덤 정치'라는 프레임에 숨은 본질적인 문제인 '정치 불신'과 '민주주의 위기'를 논했다.
'팬덤 정치'란 작금의 담론이 지지자들의 행위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데만 집중하면서 정작 대의 기능이 부재해진 정당이나 의회에 대한 성찰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조씨의 지적이다. 특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지지는 비판하고 경계해야 하지만, 거대 양당의 정치적 양극화가 인물 지지 정치의 부작용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팬덤 정치라는 낙인'은 현 시점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황. 지난 2월 2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과정에서 30여 명 이상의 당내 이탈표가 발생하면서, '비이재명계'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자들의 공격이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2일 서울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조씨를 만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로 이어지는 현재의 인물 지지 정치가 보여주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팬덤 정치' 아닌 '인물 지지 정치'... 정치 불신이 원인
a
▲ 사회학 연구자 조은혜씨가 쓴 <'팬덤 정치'라는 낙인> (오월의봄) ⓒ 오월의봄
- '팬덤 정치'라는 명명을 거부하고, 대신 '인물 지지 정치'라는 말을 썼다. 이유는?
"팬덤 정치라는 명명은 '팬덤'이라는 행위자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현상의 원인이 '정치 불신', '사회 권력에 대한 불신'이라는 사실은 은폐한다. 인물 지지 정치를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팬덤의 양식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 영역에서의 팬클럽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인물 지지 정치'라는 또 다른 개념을 사용했다."
- 책에서는 '인물 지지 정치'와 '인물 중심 정치'도 구분했다.
"인물 지지 정치는 특정한 인물을 지지하는 것을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한다. 인물 지지 정치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 권력에 대한 저항 행동, 또 다른 인물이나 세력에 대한 쟁투와 갈등이 발견된다.
인물 지지 정치와, 인물 중심 정치는 구별하는 기준점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인물 중심 정치는 소위 '보스 정치' 시절의 정당과 정치인 중심의 정치적인 집단을 통해 이뤄진다. 노사모 이후에는 정치인이나 정당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체를 구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인물 지지 정치다."
- 그렇다면 노사모와 같이 한국에서 인물 지지 정치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인터넷이라는 자원이자 공간이 노사모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시민들이 주어지는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보를 검증할 수 있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이것을 '온라인 행동주의'라고 일컫는데, 한국의 온라인 행동주의는 상당히 진보적인 색채를 띤 채로 시작됐다. 기존에 억압됐던 정치적 구조에서 수용되지 않았던 담론을 만든다든지, 정당 민주화를 요구한다. 결국 주어지는 프레임을 수용하기보다는, 그것을 재구성한다. 지금까지 그러한 경향이 이어져 오고 있다."
- '인물 지지 정치'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인물 지지 정치의 특징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온 '정치 불신', 그리고 시민들이 제도적·비제도적 상관 없이 사회 참여를 넓히고 의제의 범위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버락 오바마나 양상은 다르지만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열광 등도 비슷하다."
"비판적 지지 가능한지 반문할 필요 있어"
a
▲ 영화 <노무현입니다> 관련 사진. ⓒ 영화사 풀
- 한국 같은 경우는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주로 이러한 현상이 발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서 진보진영은 '내가 지지하는 인물이 위험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보수진영과는 다르게 발생했다. 탄핵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민주당 성향의 지지자들은 대한민국이 '개혁이 굉장히 어려운 나라'라고 판단하는 것이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할 수 있는 특정한 인물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지지 형태가 비판적 지지에서 절대적 지지로 옮겨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지지자들은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있는 정치적 주체로서 저마다의 판단 기준에 따라 자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다", 책에 언급된 지지자들에 대한 묘사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맹목적인 태도로 인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의기구로서 정당이나, 정당 구조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면 이 정도로 인물 지지 정치를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제도 정치 행위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불신하고, 언론, 검찰, 사법 등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강한 열망이 여러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의'를 상징했다. 어떤 결정을 했을 때 그것이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이익이 가장 우선됐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정말 강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불운한 말년을 보내서는 안 되고, 신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 하고자 하는 것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컸다."
- '잃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절대적 지지'로 이어졌다는 건가?
"지지자들도 비판적 지지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비판적 지지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라고 본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 지지자로서 대통령에게 공격적인, 혹은 공격과 결합될 수 있는 형태의 의견을 냈을 때 자신이 신뢰하고 지지하는 인물이 국정을 운영할 힘을 소실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비판적 지지를 할 수 있는 여건'인지를 우리 모두가 반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게 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지자들에게 '맹목적이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안 된다. 정작 먼저 개선돼야 할 집단과 행위자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지지자들의 행동은 자발적이고 동시에 정치적이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느냐'의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팬덤 정치라고 명명해서는 안 된다. 왜 당원이면서도 정당은 불신하고, 인물에 대해서 강한 지지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았다."
- 노사모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것을 정치인 지지자의 모범적 사례로 그리는 것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나.
"지지자들은 '비판적 지지에 공감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을 지켜야 돼'라고 말한다. '욕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뭣도 몰라서'라고 지적하고 계몽하려고 들면 코웃음 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난 중요하지 않고, 그게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라면서."
"보수언론처럼 팬덤 정치 행위에만 집중하면 정치 불신 커져"
a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8일 오전 '위례·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수사와 관련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가운데, 청사앞에 지지자들이 모여 '이재명 사수, 정치검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 현재 '인물 지지 정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한 내용은 아닐지라도 계속 관심은 갖고 있을텐데.
"일단 제가 분석하고 연구한 이 책의 내용 그대로 이재명 당 대표 지지자들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이재명이라는 인물은 '개혁'을 상징하고, 개혁의 의지와 실행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모였다. 여기에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으로 정치적·사회적 핍박을 받음으로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판단을 통해, '이재명 수호'의 움직임은 커지고 있다. 다만 문 전 대통령 지지와는 결이 달라서, 이 현상의 수명이 어디까지일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 사실 이재명 대표는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인물이었다. 2017년 대선 당시 라이벌이라서 그랬을까?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이재명이 문재인을 너무 공격해서'만은 아니다.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보기에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정의롭지 않은거다. 사익을 위해서 권력을 이용해왔던 의심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투명하지 못하고, 그러한 인물에 대해선 민주당 소속이라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인정하지 않는 거다."
- 일부 지지자들은 '이니(문재인) 말도 안 들어요'라는 말처럼 사실상 문 전 대통령 뜻과도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 역시 지지자들의 행동을 여러차례 지적했지만, '비이재명계'를 향해 체포동의안 표결 관련 '문자폭탄', '트럭 시위' 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그 말('이니 말도 안 들어요')이 나오게 된 배경은 배후 세력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그만큼 동원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류 담론에서는 정치 수혜자인 정치인들이 팬덤을 '통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지지자들은 자발성을 중요시한다. (적대시하는 집단의 행동이)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 개의치 않는 편이다. 국민의힘이나 보수언론처럼 계속 팬덤 정치 행위자 문제에만 집중하면 정치 불신만 더 깊어지고 그들이 더 극단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시민으로서 (개혁을 추진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사회 개혁을 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재인, 이재명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인물을 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적이라고 지적만 해서는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팬덤 정치가 정치 불신의 사후적인 현상임을 간과한 채, 정치적 문제를 양산하는 원인으로만 계속 바라보는 이상, 이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 통제가 어렵다면 결국 단기적인 해법은 없다는 뜻 아닌가.
"비판해야 할 점을 분명히 비판하되, 그 부분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팬덤 정치 담론이)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억압하거나, 억압하려는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쓰일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지 않나.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라도 팬덤이라는 명명을 지양해야 한다."
- 책에서는 결국 '인물 지지 정치'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대 양당은 정당정치가 왜 신뢰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팬덤 정치가 모든 정치 문제의 원인이라고 볼 게 아니고 왜 이런 양상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필요하다. 회계 및 활동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의제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의기구로서의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대의기구'로서 정당을 평가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