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수십 차례, 50여 차례 사과했다고?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횟수도 과장했지만 더욱 중요한 건 사과의 진정성

검토 완료

박성우(ahtclsth)등록 2023.03.24 11:28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굴욕에 가까운 강제동원 해결책 제시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로부터 직접적인 사과 발언이 나오지 않아 비판 여론이 들끓자 이를 가라앉히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 앞서 대통령실 역시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 언론과의 브리핑에서 "강제동원 부분에 대한 일본 측의 직접 사과나 전향적 발언이 없어 아쉽다"는 지적에 "역대 일본 정부가 일왕과 총리를 포함해 50여 차례 사과를 한 바 있다"며 일맥상통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주장은 사실일까.

50여 차례 사과했다는 주장의 근거 찾아보니... 터무니 없는 과장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주장은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저서,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에서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178쪽부터 6쪽에 걸쳐 "[표 7] 일본 천황과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일지"라는 제목의 표가 정리되어 있다. ⓒ 박성우

 
먼저 해당 주장의 출처부터 찾아보자. 대통령실은 일본 측의 사과에 대해 그 주체는 "일왕과 총리", 횟수는 "50여 차례"로 상세히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일왕과 일본 총리가 총 53회의 과거사 사과를 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지난 1월 발간되었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178쪽부터 6쪽에 걸쳐 "[표 7] 일본 천황과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일지"라는 제목의 표가 정리되어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발언은 이 도표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해당 표를 살펴보자. 표에는 발언을 한 당사자와 발언의 일시 및 장소, 그리고 발언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표에 나오는 총 53번의 발언 중 발언 주체별로 따지면 일왕이 8번, 일본 왕세자가 1번, 역대 일본 총리가 44번이다.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로 표에 따르면 19번의 과거사 사과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표에 적힌 발언의 내용을 따져보자. 사과 혹은 사죄가 들어간 발언은 총 53회 중 19번, 반성 혹은 유감이 들어간 발언은 20번이다. 한편 53회의 발언 중에는 한국을 특정하지 않은 발언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23번에 달한다.
 
또한 표에는 직접적인 사과 표현이 아니라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을 포함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발언한 것과 같이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고이즈미 담화 등을 계승하겠다고만 발언한 것도 사과 발언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사과가 아닌 기존 입장 계승 발언은 총 7번이다.
 
결국 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왕이나 일본 총리가 한국에 직접적인 사과 혹은 사죄 발언을 한 것은 총 14회에 그친다. 일본이 한국에 수십 차례, 50여 차례 사과했다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셈이다.

사과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사과의 진정성... 
진정성 없는 사과에 박수 치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기이한 모습

 
14회든 53회든 일본 총리가 한국에 과거사와 관련해 여러 차례 사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과의 횟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사과의 진정성이다. 19번에 걸친 사과 발언을 했다는 아베 전 총리의 경우 2016년 1월, 일본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공공연하게 부인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3년에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바 있고 2014년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며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담화 내용 조율이 있었다'며 사실상 고노 담화를 훼손하는 취지의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게다가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검증 보고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역사의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섬으로써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본인의 고노 담화 훼손을 자화자찬하기까지 했다. 이런 아베 전 총리의 사과를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진정성 없는 단순히 말뿐인 사과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본 측의 사과 발언이 무색한 까닭은 아베 전 총리와 같이 일본 측의 역사 왜곡 시도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한 사과의 횟수를, 그것도 과장해 들먹이며 박수를 치면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어떻게든 덜어내려는 인물들이 한국의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라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