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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지척인 대학가인데 동네가 왜이래

70~8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고양 화전동에 가해진 규제

등록 2023.03.26 19:04수정 2023.03.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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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기자말]
공간은 50여 년 전 시곗바늘에 걸려있다. 70∼8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한다면 이보다 더 제격인 세트장이 또 있을까. 서울을 지척에 두고, 전철역은 물론 대학교까지 품고 있는 동네인데 말이다.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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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역 화전동 랜드마크 중 하나인 화전역 광장. 각종 규제로 역이 집중과 확산보다 분산과 정체를 매개하고 있어 안타깝다. ⓒ 이영천

 
시골 면사무소 소재지에나 어울릴 법한 공간 구성이다. 한때는 이곳 주간선도로였을 굽은 왕복 2차선 도로가 그대로다. 길에 면해 자리한 오래된 군부대 영향인지, 이름마저 화랑로다. 수색으로 연결된 중앙로가 마을을 둘로 갈라놓았다.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 있다. 하나는 억압적이다. 공간 대부분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창릉신도시로 육군 30사단이 이전해도, 한국항공대 활주로와 주변 군부대로 해제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항공대 활주로는 건축물고도까지 제한하고 있다.


둘째는 가혹하다. 당시 도시정책 중 유일하게 성공했다 평가받는 '그린벨트(green-belt,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다. 셋째는 엉뚱하다. 당시 고양은 여느 시골이나 다름없이 한적했다. 그런 곳이 인구집중유발시설을 규제한다는 '이전촉진권역'으로 지정된다. 이 족쇄 셋이 공간의 시간을 50여 년 전에 묶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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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 화전동을 둘로 가른 중앙로. 멀리 보이는 곳이 수색 방향이다. ⓒ 이영천

 
이로 인해 대학을 품고 있는 공간답지 않다. 6천여 항공대 학생들 발길이 어디로 향할까. 화전역에서 전철 타고 홍대나 신촌으로 향한다. 1954년 생긴 화전역과 주변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역이 집중과 확산보다는 분산과 정체를 매개하는 결절점으로 전락했다. 인문지리적으로 보아 결절 부위가 분명해 보이는 이곳이, 머물기보다 지나쳐 가기 바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륙침략 전초기지

화전동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 지천으로 꽃이 피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을 경의선이 둘로 갈라친다. 1905년 개통된 경의선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려 일으킨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철도로, 용산∼수색∼평양∼신의주∼만주를 잇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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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동 쌍굴터널 수색조차장을 만들면서 일본 육군 보급창고로 통하는 철길을 내면서 만든 쌍굴 중 하나. 지금은 도로로 사용중이다. ⓒ 이영천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대륙을 침략하면서, 철저히 경의선을 활용한다. 이 전쟁은 화전동을 크게 변화시킨 기제였다. 수색과 화전을 전쟁 배후기지로 구상하는데, 이는 철도와 연계된 대규모 군사기지와 보급 창고 구축이었다.

서울 용산과 유사한 형태를 계획하고 공사에 들어간다. 80여 년이 흐른 지금, 경의선 변에 당시 전쟁 수행을 위해 설치했던 각종 시설물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용산이 조선 침략과 지배의 무력 기반이었다면, 수색과 화전은 대륙침략의 거점이었다.

1939년 수색과 부산, 평양에 철도 조차장 건설을 시작하는데, 수색이 핵심이었다. 조차장은 내부 선로만 130km로 철도 운송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규모만큼 종사자도 많아 수색역 인근에 별도 철도관사를 지었으며, 용산~수색 간 철로를 증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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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동 벽화 도시재생 사업으로 시행한 여럿 중 벽화마을 가꾸기 사업의 흔적이 남은 골목. ⓒ 이영천

 
창릉신도시에 편입된 30사단 자리가 일본군 대규모 주둔지였다. 아울러 항공대 활주로 끝단엔 일본 육군 보급 창고가 있었다. 일제는 주둔지 병력은 물론 보급 창고에서 피복, 탄약, 식량 등을 포함한 각종 보급품과 당인리 발전소에서 실어 온 무연탄을 수색 조차장에 모아, 경의선을 통해 만주로 향하는 침략 루트 기점으로 삼았다. 이 모든 행위를 수색과 화전에서 통합 관리하고자 했다. 꽃밭이 지천이던 화전동은 이렇듯 일제의 야욕으로 대규모 침략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린벨트

1971년 서울 시청 반경 15km 밖 서울·경기 지역을 시작으로 그린벨트가 지정된다. 대도시의 급격한 확산과 무분별한 도시화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한다. 총 8차례에 걸쳐 전 국토의 5.5%에 해당하는 면적에 지정되어, 강력한 규제가 가해진다. 고양시는 한때 전체면적의 52%가 그린벨트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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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주변 가로 2차선 화랑로가 연출하는 가로 풍경은 7~80년대 드라마나 영화 세트장으로 활용한다 해도 어색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 이영천

 
그린벨트 안에선 주택지나 산업단지, 그 밖에 구역 지정 목적에 위배 되는 어떤 도시계획 행위도 할 수 없다. 개개인은 건축물 용도변경과 토지 형질변경이 불가능했으며, 증축이나 개축에도 엄격한 제약이 가해졌다. 사유 재산에 50년 이상 규제를 가해온 셈이다.

지정 당시의 경제·사회 환경에는 부합했다. 일시적이나마 그때는 옳았지만, 그 후부터는 잘못된 정책이었다. 도시확산을 막아내지도, 주택과 교통 등 도시문제를 해결하지도, 그렇다고 자연환경을 지켜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는 오히려 토지 공급 한계를 가져와 도시 내 급격한 지가상승을 불러왔다. 더구나 팽창하는 도시화 욕구에 따라 도시확산은 그린벨트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린벨트 밖에 생겨난 위성도시가 거대화하면서 교통 등 각종 도시문제의 광역화와 대규모화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신도시나 산업단지를 짓는다며 그때그때 입맛에 맞춰 해제해대기 바빴다. 창릉신도시가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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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덕양중과 덕은초가 같은 곳에서 출입구를 공유하는 화전동 언덕. ⓒ 이영천

 
같은 구역 내에서의 형평성마저 무너진 건 이미 오래다. 90년대 말에서야 '선계획 후개발'이라는 완화정책을 펼쳤으나,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회복이나 활성화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

경의선 개통 53년 후인 1958년에서야 화전역이 생겨나지만, 지역의 변화와 발전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미지수다. 간이역으로 시작한 화전역은 2천년대 운행 개시된 수도권 전철역으로 기능을 수행 중이나 여전히 한미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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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대학교 1963년 이전해 온 한국항공대학교. 사진 맞은 편이 활주로로 군사시설 등으로 보호되고 있다. ⓒ 이영천

 
망월산자락에 기대앉은 화전동은 창릉천이 펼쳐 놓은 넓은 개활지에 평야도 기름지다. 개활지에 몇 구릉성 산뿐인 이곳에 1963년 11월 항공대가 이전해 온다. 활주로 입지에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활주로는 항공기 이착륙을 고려한 진입표면과 제한(수평)표면에 따라 주변 건축물고도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활주로 가까운 곳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화전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군사시설로 몸살을 앓아 온, 아픔이 깊은 곳이다. 망월산 북서쪽 육군 30사단 자리는 1개 사단 이상 주둔이 가능한 대규모 일본군 부대였다. 해방 직후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를 미군이 접수하여 사용하다, 휴전 후인 1955년에 한국군에 인도된다. 우리 육군도 이곳을 군부대로 사용한다. 항공대 활주로 인근 '일본 육군 보급 창고'는 우리 육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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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30사단 정문 창릉신도시 개발로 이전했는지, 30사단 본부 정문이 굳게 닫혀있다. ⓒ 이영천

 
이런 영향으로 화전동 많은 땅이 1973년부터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서는 시설보호와 군사작전 등의 사유로 '개인의 토지 이용 및 사유재산권 행사를 통제하거나 제한'된다.

수도권정비계획과 신도시

1984년 수립된 수도권정비계획은 획일화된 사고가 탄생시킨 제도였다. 서울과 경기도를 5개 권역으로 나눈 계획은, 지도에 선을 그어 천편일률적으로 권역을 나눔으로써 수많은 불합리를 파생시킨다.

당시 고양은 인구집중유발시설을 권역 밖으로 이전해야 하고 신·증설을 규제하며, 대단위 택지조성을 억제하고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 신·증설 및 학생 수 증원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이전촉진권역'에 포함된다. 인구집중 유발시설이라야 군부대와 카페촌이 전부인 곳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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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동 골목 수십 년, 각종 규제로 큰 변화 없이 지켜 온 골목 풍경이 오히려 정겹다. ⓒ 이영천

 
이렇듯 강력한 규제로 묶어 놓고 5년 뒤 군사시설보호구역과 그린벨트가 아닌 곳에 인구 30만을 수용할 '일산신도시' 계획을 발표한다. 마치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아무 때나 꺼내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함에도 서울에 면한 곳은 철저히 소외된다. 그린벨트에 이전촉진권역이 압박을 가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면한 곳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비 새는 지붕이나 수리하면 그만이다. 화전이 이런 3중고를 겪은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기존 마을을 제외하고 근교농업에 종사하던 화전동 농지를 대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해 2019년 '창릉신도시'가 지정된다. 이번에도 정부 정책이란 명분이다. 신도시에 포함된 30사단 이전으로 인근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 해제될 것이나, 신도시에 포함되지 못한 옛 마을은 여전히 규제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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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신도시 에정지 망월산 자락 화전동 높은 골목에서 바라 본 창릉신도시 예정지. ⓒ 이영천

 
80여 년 지켜온 마을과 생활권이나마 지켜낼 수 있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건설될 신도시는 규격화한 블록에 아파트 일색일 게 뻔하다. 화전동 기존 생활권은 신도시에 철저히 종속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간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급격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크고 작은 갈등과 반목도 생길 것이다. 예상은 되지만, 창릉신도시가 80여 년 인고의 시간을 버텨온 공간에 어떻게 화답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고양_화전동 #그린벨트_군사시설보호구역_이전촉진권역 #한국항공대학교 #일산신도시_창릉신도시 #경의선_화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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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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