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밖에 모르는 이규식? 내가 만난 이규식

신간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등록 2023.03.28 10:53수정 2023.03.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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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표지 사진 ⓒ 후마니타스


이규식이란 사람이 있다.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서 기자로 일하며 그를 만났다. 사람들은 그를 '투모사'라 불렀다. 집회 현장에 빠지지 않는 그는 정말 '투'쟁밖에 '모'르는 '사'람 같았다.

지하철 시위가 있는 날, 장갑차 같은 휠체어에 앉아 험상궂은 표정으로 지하철을 잡고 있는 그를 볼 때면, 영원히 열차가 출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경찰의 경계 대상 1순위인 이규식 대표는 동료 활동가들조차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투사다.


그런 그는 언어장애가 있다. 하루는 기자회견에 갔는데 그가 발언자로 나왔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더듬거리며 몇 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 기자들의 타자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노트북에서 손을 뗀 기자들은 딴짓을 했다. 박경석 대표가 말할 때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쉴 새 없이 받아적던 그들이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물론 나도 적지 못했다. 알아들은 게 거의 없었다. 이규식 대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발언을 이어갔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기사에 한 줄이라도 싣고 싶었다. 그가 발언자로 나오면 입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다고 맘처럼 되지는 않았다. 띄엄띄엄 적힌 그의 말들은 기사가 될 수는 없었다. 가끔 완전히 알아들은 말도 기사 '와꾸(틀)'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그의 말을 기사에 넣으려 노력했다. 그 노력이 인정받은 순간도 있었다. 이규식 대표가 내 기사를 칭찬했다는 이야기를 활동지원사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투쟁 현장에선 언제나 무서운 표정의 그는 평소엔 잘 웃고 잘 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대뜸 내게 여자 만나볼 생각 없냐며 지은 음흉한 미소와, 지하철 바닥을 기고 있는 자신이 담긴 비마이너 영상을 보며 흘린 의외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의 투박한 다정함이 어쩐지 좋았다. 지난해 내가 페이스북에 유서를 올리고 며칠 뒤 살아있다는 게 뭔가 민망하던 때, 이규식 대표는 비마이너 사무실을 불쑥 찾아와 다짜고짜 내게 따져 물었다. "너 왜 여기 있어?" 나는 괜히 못 알아들은 척했고, 그는 다시 또렷이 말했다. "너 죽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죽여줄게." 그 태연한 말이, 난폭한 위로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제 나는 안다. 이규식 대표는 투쟁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그의 말을 또박또박 읽을 기회다. 못 알아듣는 나를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던 그를 몇 번이고 다시 읽을 기회다. 그 소중한 기회를 펼쳐보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

이규식 (지은이),
후마니타스, 2023


#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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