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과 자장면, 그리고 엄마의 사랑

아내와 처음 먹은 자장면, 소환된 60년 전 어린 시절 추억

등록 2023.03.25 17:22수정 2023.03.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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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점심으로 먹은 짜장면 ⓒ 이혁진

 
어제는 중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아내와 함께 오전에 바깥일을 마친 후 집으로 가던 중이다. 점심은 오랜만에 짜파게티 해 먹자 했는데 아내가 배달하는 중국집에 갑자기 들어간다. 예정에 없는 '번개 점심'이다. 짜장면이 금방 나왔다. 온기가 느껴지고 먹음직스럽다. 짜장면을 앞에 두고 어릴 때 추억이 불현듯 스친다.      


1960년대 중반, 인천의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닐 때다. 누구나 배고픈 시절, 우리 집도 밥 대신 국수를 자주 먹었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뜨덕국(일명 수제비)도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집마다 흔히 해먹은 음식이다. 그런데도 짜장면은 특별했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졸업식 때 먹는 외식으로 대접받았다.      

집 근처에는 화교가 직접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이 있었다. 규모도 큰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집에서 풍기는 고추기름 냄새는 매일 맡아도 좋았다. 중국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우리 형편에 중국집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나는 그 집 짜장면을 먹는 게 소원이었다.      

자라면서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하라는 것은 반대로만 했다. 한 번은 만화에 빠져 학교에 가지 않고 만화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다. 잦은 결석 때문에 퇴학 위기를 당해 집에서 근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화 탐닉은 계속돼 벌서고 매 맞기를 반복했다.      

그때 나는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말썽 피우고 크게 혼나면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툭하면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일종의 반항심리다. 굶으면 부모 속이 상하거나 내 뜻을 관철하는 수단이라 여긴 것이다. 배 곯던 시절, 자식이 '단식시위'라니 엄마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엄마는 내 고집을 알고 한두 끼 안 먹는 것은 그러려니 무관심한 듯 대했다. 나쁜 버릇을 고치려는 심산이다. 나도 한두 끼 굶는 건 자신 있었다. 그때는 식구 모두 접이식 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따로 밥상을 차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방에서 살고 한방에서 먹었다.      


단식은 고비를 맞는다. 특히 엄마는 식사 때마다 맛있게 먹는 시늉을 일부러 크게 소리 내거나 "배고파 봐라, 어딜 고집부려?", "오늘따라 맛있다" 등 약을 올리거나 빈정거렸다. 식구들도 합세했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자는 척하며 밥 먹는 소리와 비아냥을 참아냈다.      

나는 세끼를 거뜬히 굶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분노와 반항심은 커져 갔다. 쪼르륵 소리가 배에서 요동치는데 정신은 되레 맑아졌다. 공복의 편안함을 안 것도 그때다.      

세끼까지 굶고 기진맥진해지자 엄마가 설득과 회유에 나서기 시작한다. 내 인내의 한계를 간파한 것이다. 먹고 싶은 걸 말하라며 어르고 달래기를 수십 번, 엄마는 형제들 몰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차려주기도 했다. 내 알량한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선뜻 승복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끼를 넘기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어지럽고 뭐라도 훔쳐 먹고 싶은 유혹이 생기고 마음도 급격히 약해진다.      

이런 상황을 엄마가 놓칠 리 없다. 더 이상 내가 대꾸할 힘과 의지가 없는 걸 확인하고 엄마는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우리 아들, 짜장면 먹을래"로 타이른다. 이어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내가 바라던 그 중국집으로 데리고 간다.      

엄마는 내게 조용히 말한다. "얼마나 배가 고팠니? 엄마가 잘못했다. 이제는 굶지 마라." 이 말에 나는 왈칵 눈물을 쏟는다. 엄마도 따라 운다. 비로소 나는 엄마에게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엄마는 짜장면 하나를 시킨다. 내 앞에 고대하던 짜장면이 놓였다. 엄마는 '그래, 천천히 먹으라'며 내 머리를 만졌다. 그런데 면을 한입 넣자 목에서 턱 걸리고 넘어가지 않는다. 체하고 말았다. 한바탕 토하고 난리가 났다. 엄마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생전에 엄마는 자식의 못된 버릇 때문에 상심이 컸다. 고집 세고 철없는 자식을 짜장면으로 달래주었다. 단식투쟁은 철부지의 반항하는 치기에 불과했지만 그걸 너그럽게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생각하면 짜장면은 색깔처럼 엄마 마음을 속 타게 한 음식이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짜장면을 앞에 두고 중국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사건은 내 성장기 중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그리고 보니 아내와 단둘이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은 것은 처음이다.      
#짜장면 #중식당 #번개점심 #단식투쟁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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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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