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건비 후면 확대 중건비 비문을 쓴 인물과 세운 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기원
이범익이 강원도지사로 근무하던 1930년대 경제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조선 농민들에게도 밀어닥쳤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많은 농민이 몰락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농민들은 지주들의 자의적 소작권 이동과 수탈 강화에 반대하며 소작쟁의가 확산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총독부는 농촌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1932년 농촌 진흥 운동을 전개했다. 강원도지사로 근무하던 시기 이범익은 총독부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것은 물론, 총독에 대한 충성을 앞세우며 아부도 서슴지 않았다.
"우가키 총독 각하의 열정으로 절규하는 농촌진흥, 자력갱생운동에 관민일치로 총력을 다해 협력"할 것을 강조하며 총독의 훈시가 "조선애에 불타는 주옥같은 명언"이라고 극찬했다.
총독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낯 뜨거운 아부와 헌사를 일삼았던 이범익은 1937년 만주국 전다오성(간도성)의 성장으로 임명되었고, 만주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38년 삼천리에 기고한 '간도에 와서'란 글을 통해 "불령분자 항일 비적들의 출몰을 대토벌과 귀순 공작에 의해 완전히 섬멸하고 일본 제국 신민으로서 임무에 충실"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나아가 간도 일대의 조선 항일부대를 섬멸하기 위해 만주군 내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간도 특설대가 창설되었다. 간도 특설대는 1945년 일제의 패망까지 만주 일대 항일독립군 토벌에 동원되었다.
관립 일어학교를 졸업한 후 승승장구 친일의 길을 걸어간 이범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들의 삶을 외면했고,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했다. 한 인물의 친일 행적이 단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범익의 행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적멸보궁 법흥사 중건비에 새겨진 이름에서 굴곡진 근현대사의 아픔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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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 중건비에 새겨진 친일 행적... 굴곡진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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