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9 07:52최종 업데이트 23.03.2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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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최근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에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새롭게 지정한다는 게 골자다. 경기 용인에 300조원 이상을 투입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지역별로 첨단산업 생산거점을 고르게 확보하고 기업 투자를 전폭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다.

이같은 구상을 둘러싸고 일단은 환영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것처럼 보인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5일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진계획을 보고하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구겠다"고 야심차게 말했다. 그러나 과연 장밋빛 환상을 가져도 되는 일일까? 

국가첨단산업벨트, 함께 논의돼야 할 것

내용을 뜯어보면, 일단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발표라는 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부는 이날 낸 보도자료 말미에 "국가 첨단산업벨트 범정부 추진지원단"을 구성해서 "국가산단 지정을 위한 사업계획 등 구체화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후보지별 사업시행자 선정, 개발계획 수립, 예비타당성조사(신속 예타),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산업단지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절차적으로 전혀 진행된 것이 없는 셈이다. 심지어 누가 사업을 시행할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대목에서 "신속한 투자가 필요한 산업의 경우 2026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착공이 가능하도록 속도감있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국 이 정권 임기 내에 첫 삽이라도 뜨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물론 15개 국가산업단지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각 산업단지별로 검토해야 할 지점이 다를 수 있다. 사실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나온 것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하나하나 검증이나 평가가 필요하다. 

대량의 농지가 편입돼야 하는 경우는 '농지보전'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계획단계에서 걸러져야 한다. 전력과 물소비가 많은 산업단지는 전력공급과 용수공급이 가능하고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가령 경기도 용인에 들어선다는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경우에는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산업단지는 산업폐기물매립장도 함께 들어서야 할 텐데, 지역주민들에게 그런 점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현행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면적이 50만 제곱미터 이상이고 연간 폐기물발생량이 2만 톤 이상이면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산업단지 안에 설치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국가산업단지는 전부 면적이 50만 제곱미터 이상이므로, 폐기물발생량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무조건 지역에 좋은 점만 있는 듯 얘기해서는 안 된다. 산업단지와 함께 발전소나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이 들어서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 피해와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쫓겨나고 뺏기고, 전국 농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

한편 국가산업단지와 별개로, 전국 농촌지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지방일반산업단지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지방일반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와는 달리 대부분 민간업체가 추진해 시·도의 승인만 받으면 되는 형식이다. 민간업체가 추진하는 사업인데도 지방자치단체가 20% 남짓 지분 참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민간자본을 위해 지자체가 모양새를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간혹 지자체가 직접 추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 민간업체들이 추진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 때문에 인·허가를 받기가 쉬운 상태다. 그래서 민간업체들이 무분별하게 추진하는 경향이 강하다. 

산업단지 입지도 그냥 민간업체들이 정하는 것이어서 농촌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경우가 많다. 민간업체들이 '여기에 산업단지를 추진하겠다'고 결정하면, 주민들은 살던 마을에서 이주를 당해야 하고, 농지도 빼앗기고, 주변 환경이 오염되는 것이다. 

2022년 산업단지 지정계획상으로만 95건의 지방일반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아직 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산업단지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주민들이 가장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민간업체가 돈 벌려고 추진하는 사업인데, 토지강제수용권까지 부여된다는 점이다.

지금도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에서는 아예 마을 주민들의 집을 강제수용하고 농지를 대량 편입시키는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문제로 지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염원은 무시당하고 있다. 이 사업은 태영건설이 추진하는 사업이다. 

기존 산업단지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 또 다른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에서는 이미 들어선 예당산업단지 주변에서 벤젠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는 등 주민들이 여러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기존 산업단지 바로 옆에 민간건설업체가 새로운 산업단지(예당2산업단지)를 또 추진하고 있다.

농민들은 '지금도 인근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마시면서 농사짓고 있는데, 산업단지가 또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한다. 마을이 사라지고 수십 가구가 이주를 당해야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 산업단지는 민간건설업체가 100% 지분을 가진 산업단지다. 

지정폐기물매립장 논란도... 제대로된 평가와 검증 필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가첨단산업벨트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산업단지가 들어선 후에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반입하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이나 소각장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우려하는 곳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충남 천안시 성남면에 있는 천안제5일반산업단지 내에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정폐기물은 산업폐기물 중에서도 유해성이 강한 폐기물이다.  

산업폐기물에 대해서는 영업구역 제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환경부의 공식입장이어서, 전국 어디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더라도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다 반입할 수 있게 돼 있다. 주민들은 자기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이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전국에서 발생하는 지정폐기물을 가지고 와서 지하 48미터까지 땅을 파고 묻겠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매립장 예정지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는 중학교가 있는 상황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경기도 화성시 제부도 인근의 전곡해양일반산업단지에서도 SK에코플랜트의 자회사가 지정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를 수십미터 이상 파고 산업폐기물을 묻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물론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도 반발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어떤 입주기업의 대표는 '애초에 이런 매립장이 들어오는 줄 알았으면, 산업단지에 입주를 안 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이처럼 지방일반산업단지는 온갖 문제를 낳고 있다. 산업단지 자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도 있지만,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이 따라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농촌 주민들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산업단지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민간업체들의 편에서 온갖 편의를 봐준다. 심지어 진입도로나 폐수처리장도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역을 다녀보면 인근 주민들은 산업단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산업단지가 들어와도 해당 읍·면의 실거주 인구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활동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이 지난해 충남·충북에서 3개 이상의 산업단지가 있는 읍·면·동의 인구 추이를 확인한 결과 절반이 넘는 곳에서 지역 평균보다 인구증가율이 낮거나 인구 감소 폭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민들이 산업단지의 실제 가동률이 낮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는 산업단지 분양률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보기에 실제로 입주해서 가동되는 비율은 그에 미치지 못하며, 한 마디로 땅만 사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산업단지에 대해서는 검증할 지점들이 많다. 과연 산업단지가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사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산업단지가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더 필요한 것인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설사 산업단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민간업체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입지를 정하고, 강제수용까지 해 가면서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이라도 막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은 산업단지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와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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