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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유가족이 본 '주69시간' "자기 자식 일이라면 이랬을까"

[현장] 사망 직전 주62시간 일한 아들, 과로로 목숨 끊은 동생... "사업자 선택권만 확대"

등록 2023.03.28 17:22수정 2023.03.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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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 유가족, 전문가 기자긴담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침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쿠팡노동자의 건강과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와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주최로 열렸다. 쿠팡 물류센터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증언하고 있다. ⓒ 권우성

 
"왜 자꾸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까요? 시간을 또 늘리려고 하고... 사람이 죽었는데 왜 들여다보지 않으려 할까요. (중략) 사람으로 생각하긴 하는 건지, 만일 자기 자식이라면, 과연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만 27세의 청년, 태권도 공인 4단, 술 담배 할 줄 모르는 건강한 습관. 아들의 사인은 과로사였다. 쿠팡 경북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한 지 1년 4개월여 만의 죽음.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들은 말들을 또렷이 기억했다. 작업 중 가슴을 움켜쥐며 계속 힘들어했다는 말, 어쩌면 과로사일 수도 있다는 말.

지난 2020년 10월 쿠팡 경북 칠곡 물류센터에서 과로사로 사망한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28일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주69시간' 논란에 직면한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에 '과로사' 피해 당사자로서 비판을 던지기 위해서다. 박씨는 "아들이 자기 목숨을 버려서 이게 문제라고 보여줬는데" 현실은 변함이 없다고 한탄했다.

1년 4개월여간 물류센터 야간 작업을 해온 아들은 사망하기 전 일주일간 62시간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천신만고 끝에 사망 3개월 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아 든 산재 인정. 사망 전 초과 노동, 근육 과다 사용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설명이 동봉됐다(관련 기사 : "쿠팡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 전국 순회 나선 유족https://omn.kr/1tag6). 박씨는 "27세 청년이 1년 6개월도 못 버티고 죽을 수 있는 게 우리나라 사정이다"라고 호소했다.

"근로시간 상한선 확장, 불규칙 노동 확대... 사업자 선택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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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 유가족, 전문가 기자긴담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침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쿠팡노동자의 건강과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와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주최로 열렸다. 김형렬 가톨릭대학교 교수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과로사로 인한 산재 사고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연구해온 김형렬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의 맹점은 '불규칙 노동' 확대에 있다고 봤다. 단순히 근로시간이 늘어난다는 문제를 떠나서, 사업주가 주말이든 야간이든, 또는 하루 몇 시간이든 상한선이 늘어난 주당 근로시간 내에 밀도 높은 노동을 시킬 수 있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하려 하는 근로시간 유연화는 장시간 노동을 동반한다는 게 핵심이다"라면서 "(주당 상한) 52시간이라는 불규칙함을 늘리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더해 12시간까지 상한제를 둔 근로시간으로도 과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노동자 건강권, 휴식권에 대한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근로시간 상한선만 확대하는 것은 "사업자의 선택만 보장하는 제도"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주69시간' 반대로 내건 현수막 속 '주52시간 근무제'를 '지키겠다'는 표어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법정 40시간, 하루 노동 8시간이라는 건 수많은 시간 동안 노동자들이 쟁취한 부분인데, 갑자기 '주52시간'이 됐다"면서 "주52시간에 '상한'이라는 표현을 반드시 써야하고, (주52시간 상한에서도) 불규칙 노동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택시 노동자, 화물차 특수고용노동직 등 노동시간 특례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안전장치 밖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각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근로시간 문제제기가 가능한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 노동자들이 닥칠 현실도 마찬가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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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 유가족, 전문가 기자긴담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침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쿠팡노동자의 건강과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와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주최로 열렸다. 쿠팡 물류센터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증언하고 있다. ⓒ 권우성

 
쿠팡대책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이 14%고 86%는 미조직돼 있는데 (휴가 요구로) 자기 시간을 찾을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노조가 있는 곳이나 가능하다"면서 "(노동자의) 90%가 사용자가 정해주는 시간에 불안정 노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죽기 직전까지 일하다가 일주일 휴가를 가면 뭐하나. 1년도 자기 뜻대로 설계하지 못하는 패턴을 강요받는 나라보다, 적어도 규칙적인 출퇴근 시간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보장 받는 나라를 희망하는 것"이라면서 "한 달 내내 회사에 처박혀 있다가 일주일 또는 보름 휴가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과로로 여동생을 잃은 장향미씨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고 장민순씨는 인터넷 강의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과로에 시달리다 201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향미씨는 "(동생이) 2015년과 2016년에 체결한 근로계약서를 보면 월 연장근로 69시간과 야간 근로시간 29시간을 미리 약정한 포괄임금으로 산정했다"면서 "정부가 홍보하는 것처럼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쉬는 것이, 지금 같은 근로 환경에서 가능한지, 가능해도 일하는 사람의 건강에 좋을지는 의문이다"라고 짚었다.

"이런 나라에서 일 시키고 싶지 않다"

김 교수는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등 근로자에 근로 시간 선택권을 부여하겠다'는 정부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자체는 사업자의 선택을 보장하는 제도일 뿐"이라면서 "지금도 이미 법정 근로 시간 40시간에 12시간 상한을 둔 매우 유연화된 노동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미숙씨는 발언 끝에서 남은 두 아이와, 청년 세대들을 걱정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열심히 일하라 말 못하겠다"고도 했다. '근로자 선택권' 확대를 명분으로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선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봐달라는 호소였다. 박씨의 말이다.

"왜 진작 빨리 알지 못했을까. 우리 애가 좀 힘들다고 할 때 왜 빨리 그만두라 하지 못했을까. 그보다, 내가 왜 더 잘 살지 못했을까. 내가 부자가 아니고 힘이 없다는 게 한이 됐습니다.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이런 나라에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근로자들이 선택해서, 좋아서 일하게 한다는데, 그게 아니고... (청년들은) 먹고 살려고 일합니다.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로 #근로시간개편 #주60시간 #주69시간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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