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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교권 보호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하다

[위기의 충남인권조례, 해법은 ⑤] 교사-학생 상생 위해 인권친화적 문화 강화해야

등록 2023.03.29 16:40수정 2023.03.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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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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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제한 폐지요구하는 학생들 사진은 2005년 5월 14일 오후 광화문거리에서 학생인권수호전국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거리축제 모습. 한 고교의 두발제한 규정과 사진이 붙어있다. ⓒ 연합뉴스

 
"학생답지 못한,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행위, 불미스러운 행동, 불손한, 성행이 불량한, 불온·불순한"

"교사에게 버릇없게 행동하거나 말로 대들거나, 불온문서를 은닉·탐독, 학생을
선동하여, 불순세력에 연계되어 불순행위나 정치성을 띤 활동, 교칙을 문란하게,
백지동맹·동맹휴학·학생선동·불법집회·불량써클 참가 등 징계"

"백지 동맹을 주동하거나 선동한 학생, 불온문서를 은닉, 탐독, 제작, 게시 또는 유포한 학생"


일부 충남 학교들의 학생생활규정에 남아있는 조항과 문구들이다. 2021년 충남교육청에서 충남의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다. 

일제강점기에 불순세력, 불순행위, 불량써클 참가, 동맹휴학, 백지동맹, 학생선동 등을 학교에서 처벌하고 학생을 강하게 통제·관리해야 했던 이유를 우리는 잘 안다. 감시와 복종, 통제를 통해 황국신민을 육성하기 위한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흐른 21세기 현재 학교는 교육기본법에 따라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교육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생활규정조항을 고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의 학생관리와 통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교육기본법의 취지에 맞게 학교도 변화해야 한다.


2020년 7월10일 공포된 충남학생인권조례는 "대한민국헌법 및 법령에서 규정한 학생의 인권을 보장 및 실현하고, 학생·학부모·교직원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한편,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를 만들고자" 만든다고 취지에서 밝혔다. 이 조례를 계기로 3년째 충남의 학교는 생활규정을 인권친화적으로 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대착오적 생활규정과 교사의 부담
 

그러나 갈길이 멀다. 충남 A고등학교의 생활규정 사례를 살펴보자.

제7조【개성 실현의 권리】
① 학생은 두발, 복장 등 용모에 있어 본 규정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가 있다.
② 두발은 제25조, 용의 복장은 제26조에 따른다.


제25조【두발】
① 학생은 두발을 청결하게 유지한다.
②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머리 모양이나 머리전체를 깎는 머리모양은 허용하지 않는다.
③ 염색과 파마 등의 인위적인 변형과 무스, 젤, 왁스 등은 사용할 수 없다.
④ 남학생은 스포츠형으로 하되 앞머리는 눈썹을 넘지 않는 5㎝~6cm로 한다.
⑤ 머리 상흔 등 특별한 경우 학생부 선생님과 상담하여 결정한다.

제26조【용의·복장】
① 학생은 지정된 복장(교복)을 단정하게 착용하되, 학교장이 허락하면 기타 복장을 착용할 수 있다.
② 복장의 부착물 명찰은 교복 왼쪽주머니 위에 핀이나 집게를 이용하여 패용하며, 견장은 양 어깨에 학년 표시가 맞는 것으로 부착한다.
③ 교복을 변형하여 입는 것을 허가하지 않으며, 시기별 교복 착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단 학교장은 그 기간을 탄력적으로 적영할 수 있다.
1) 동복착용 시기는 3월초부터 4월 중순까지와 10월 중순부터 다음 학년도 동복착용시기까지이며 긴팔와이셔츠를 하의바지 속으로 넣고 넥타이핀과 함께 착용한다.
2) 춘추복착용 시기는 4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와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이며 동복착용방법과 동일하며 상의교복만 벗는다.
3) 하복착용 시기는 5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이며 짧은팔 와이셔츠를 하의바지 밖으로 하고 넥타이핀과 함께 착용한다.
4) 기후조건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으며, 1주일간의 혼용기간을 허용한다.
④ 신발은 학교 지정 검정색 구두이며 등교 시, 외부출입 시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⑤ 피어싱,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없으며, 화장, 문신이나 타투, 네일아트 등의 신체를 치장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다.
⑥ 실내에서는 학생용 실내화를 착용해야하며, 운동시간과 체육시간에는 편하고 검소한 운동화를 착용한다.
⑦ 실습 시에는 학교 지정 실습복장을 착용해야 한다.
⑧ 상의 교복 착용 시 교복 안에 입은 옷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한다.
⑨ 용의 ․ 복장 불량 시는 각 항목별 1일 벌점 5점을 부여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정보공시돼 있는 충남A고등학교 생활규정 사례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성실현의 권리를 학교규정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헌법 제37조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 학교는 헌법을 초월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좀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것인가? 그리고 이 생활규정에 따라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는 안전할까? 아침에 학생을 만나면 좋은 아침인사도 나누기 전에 머리모양, 화장, 교복, 운동화 등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터보고 그 중 한가지라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발견하면 소신껏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한다. 그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앞머리가 조금 길어보인다고 해보자. "앞머리는 눈썹을 넘지 않는 5㎝~6cm"라는 규정에 의해 지도하다보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걸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권적이지 않은 규정을 근거로 학생을 지도하면 교사는 어떻게 될까? 요즘 교사는 아동학대와 관련된 고소·고발로 학생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혹시 전근대적인 생활규정을 소명으로 받아들여 사명감을 가지고 소신껏 지도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어떻게 될까? 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소명으로 받아들인 잘못된 학생생활규정은 교사를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교사는 엄중히 책임을 져야 한다.

충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모든 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그나마 인권친화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고, 학생생활지도의 방향을 인권적으로 제시한 것은 교사에게는 아주 다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또한 학생생활지도에서 복장이나 두발 등의 지도를 통제와 단속으로 접근하면 학생의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는커녕 학생과의 관계만 깨진다. 노란 머리를 한 학생이 있다면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혹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는지 등을 신뢰를 바탕으로 진심으로 소통해야 교육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학생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답지 못하니 당장 머리 색부터 바꾸라고 지도하면 그 다음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뿐이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어긋난 행동을 매일 수업하며 만나는 선생님에게 죄책감도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일까? 그렇게 행동하는 학생의 심리는 교사에 대한 예의없는 행동이 아니라 불합리한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정당한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듣고 반영해 학생생활규정을 만들고 지키는 것은 곧 교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인권친화적 학교는 선택 아닌 필수

충남학생인권조례 제 4조에는 교사, 학생, 보호자의 책무가 명확히 명시돼 있다.

제4조(책무) ① 충청남도교육감(이하 "교육감"이라 한다)은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집행하고 정책을 수립할 때 학생인권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②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교직원 등은 학생인권을 존중·보호·실현하고, 학생인권 침해를 방지해야 한다.
③ 보호자는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생과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며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해 학교와 협력해야 한다.
④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학생은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교사와 다른 학생들, 그리고 교육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권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무너졌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주장일 뿐이다. 교권보호를 명분으로 학생인권조례 폄훼나 학생혐오, 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의 갈등을 완충할 수 있는 충남학생인권센터의 역할은 확대·강화돼야 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이 아동학대로 오인해 경찰로 신고되면 교사는 제대로 소명절차도 보장받기 어렵고 직위해제, 학교전수조사, 경찰조사 등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또 무죄판결을 받아도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보상받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학생과 교사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해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드는 충남학생인권센터의 역할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 더 필요하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서로 상생·존중돼야 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학교 운영의 원리로 받아들여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소속 교사입니다.
#충남 #학생인권 #인권조례 #교권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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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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