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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를 위한 방송을 만들려고요

과거의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엄마들의 놀거리와 취미, 배울거리, 일거리를 이야기 해요

등록 2023.03.30 17:31수정 2023.03.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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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서대문 FM라디오 만들기' 수업은 라디오 방송의 기획에서부터 녹음과 편집까지, 방송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배우고 직접 방송을 만들어보는 내용이다. 복잡한 방송 장비의 기능을 익히는 것도 어렵고, 마이크 앞에 앉으면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어떤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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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방송녹음장비들 ⓒ 심정화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를 쳐서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공동체 라디오 방송도 들어보고, 하루종일 FM 라디오를 틀어놓기도 했지만, 딱히 참신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듣는 라디오 방송들은 모두 전문가들이 만드는 넘사벽 수준의 방송이라서 들을수록 자신감만 더 떨어졌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현재 나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내가 방송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집에 온 손님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집으로 남편의 제자들을 초대했다. 20대의 대학원생들부터 30대의 직장인들, 40대의 주부까지 10명이 모였다. 그 중 가장 선배인 40대의 주부 A씨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남편에게 들은 적이 있다.

A씨가 살고 있는 곳과 멀지않은 모 대학에 일자리가 생겨 A씨를 추천해줬는데, A씨는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지원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 일주일에 3일 근무에 출퇴근 시간도 여유있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하기에 좋은 조건인데 왜 거절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었다. 더군다나 얼마 후 A씨가 다시 찾아와 그런 일자리가 또 없겠느냐고 물었다면서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 한 남편이었다. 

그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고가는 중에 A씨의 한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아직도 숙제를 엄마가 해줘야 해요."

너무 좋은 기회였는데도 A씨가 용기를 낼 수 없었던 마음이 그 한마디 말로 모두 이해가 되었다. A씨는 남편의 제안을 받고 아마도 엄청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잘 차려입고 출근하는 자신의 근사한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마음이 붕 떠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엄마 없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고, 숙제는 뒷전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고 있을 아이들 모습도 상상했을 것이다.

아이가 아파 학교에 못가게 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난처해질 상황도 그려봤을 것이다. 행여라도 아이들 때문에 직장에 충실하지 못하면 추천을 해 주신 분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앞선 염려가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첫 아이를 지방에 있는 친정에 맡겨놓고 출근을 하면서 일과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아이를 택했다. 양쪽 부모님은 아이를 봐주실 상황이 아니었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자니 마음이 안 놓여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시 일을 해보려고 하다가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번번히 주저앉고 결국에는 전업주부로 25년을 살았다.

A씨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을 A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아마도 남편은 남자라서 A씨의 마음을 나만큼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남편에게 A씨의 복잡한 마음을 대신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마도 내 말 어딘가에 나도 그렇게 고민하고 희생하며 살아왔노라 말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직 한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후배맘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예전에 내가 했던 고민과 너무나도 비슷한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 전업주부들에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업주부의 길이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고, 건강 관리법이 될 수도 있고, 흥미로운 강좌나 더 나아가 재취업과 관련된 정보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엄마들의 놀거리, 취미거리, 배울거리, 일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내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을 <엄마들 놀이터!>로 정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들도 결코 멈춰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로 엄마들의 놀이터를 열심히 채워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기사내용 중 손님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제 개인 블로그에도 실려있습니다.(https://blog.naver.com/allesgute69/223052062903)
#서대문공동체라디오방송 #엄마들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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