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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세로'의 인기 급상승, 웃음이 나지 않습니다

동물들 이상행동 점검해야... 동물과 인간의 공존해법에 대해 더 진지한 고민 필요

등록 2023.03.30 17:28수정 2023.03.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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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얼룩말이 탈출해서 그쪽 동네 돌아다닌 거 알지? 몇 년 전엔 코끼리도 돌아다녔다더라. 또 어떤 동물이 출현할지 모르니 조심해." 


작은 애가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길래 농담 삼아 건넨 말이다. 듣다 듣다 동물까지 조심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어이없어 하는 작은 애가 헛웃음 짓고 만다. 얼룩말의 도심 활보 사건은 우리들에게야 이렇게 한낱 우스개 해프닝이지만, 문득 그 얼룩말에게도 과연 단순 일탈에 불과했을 뿐인지 궁금했다.

관련 뉴스들에 의하면, 이 얼룩말의 이름은 '세로'였다. 같이 지내던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지내며 쌓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종의 본성에 어긋남을 견디다 일어난 일이란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뛰어다니다 마취총에 맞고 쓰러져 트럭에 태워지는 영상 속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녀석이 뛰어다닐 곳은 드넓은 야생 초원의 무리들 옆이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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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세로 관련 포털 뉴스 화면 캡처 ⓒ 오마이뉴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과연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중 본성에 적합하게 살고 있는 동물이 있기나 할까 생각하다가 아이들 어릴 적 수목원에서 관람한 호랑이가 떠올랐다. 햇볕 좋은 가을을 즐기기 위해 들른 국립 수목원이었는데, 마침 그곳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했다. 온 가족이 호기심에 들떠 호랑이가 있다는 곳으로 숲길을 걸어 올라가니 높은 펜스 안으로 호랑이 한 마리가 눈앞에 떡 나타났다.

호랑이는 일자형의 펜스 이쪽에서 저쪽으로 머리를 흔들며 걷고 있었다. 과연 덩치가 우람해서 두 발로 선다면 2m는 족히 넘어 보였다. 호랑이의 위엄에 압도당하여 한참을 구경하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호랑이가 끊임없이 펜스를 따라 좌우로 걷기만 하는 것이다. 가만 보니 걷는 상태도 종종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이 뭔가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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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따라 걷는 호랑이 (기사내용과는 상관없습니다) ⓒ Unsplash

 
상상했던 용맹함이 아닌 어딘가 아파 보이는 호랑이를 보며 우리 가족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산자락이라 해도 호랑이가 점유하고 있는 곳의 면적이 너무 작아 보였다. 도시 초등학교의 작은 운동장만이나 했을까. 백두대간을 달리며 호령한다는 호랑이인데, 고작 좁은 산자락 한 구석에 갇혀 있으려니 오죽 답답할지... 왠지 녀석을 그리 가둔 책임이 그를 보러 온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알고 보니, 이날 본 호랑이의 행동은 우리에 갇힌 동물이 목적 없이 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정형행동이라는 것이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이상행동은 매우 흔해서, 코끼리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거나 몸을 앞뒤로 흔든다고 한다. 기린은 무엇이든 끝없이 핥으며 혀를 날름거리고, 곰은 심지어 끊임없이 토하고 다시 토사물을 먹기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동물을 관람하고 울적했던 때는 또 있었다. 언젠가 해외에서 돌고래 쇼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몇 번이고 뛰어올라 후프를 통과하고, 공을 받아치며 관객들에게 장난스레 물살을 튀기는 돌고래를 볼 때 신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맘대로 누벼야 할 바다 대신 좁은 수조에서 인간을 위해 원하지 않는 쇼를 평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말이다.


사람 맘대로 동물을 부리는 신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흔쾌히 돈을 냈지만, 과연 그 돈이 그 동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따져보다 착잡해졌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 즐기기 위해 동물의 자유와 본성을 이렇게까지 침해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동물쇼는 물론 동물원을 다시 찾지 않는 것으로 당시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있다. 

동물원의 존속에 대해 찬반 의견이 있지만, 현실에선 동물의 개체 보존과 생태교육을 위해 동물원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다. 동물들에게 좀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개선책들이 시도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런 흐름에 맞추어 노력 중인가 보다.

대표적으로 2018년 문을 연 경북 봉화군의 '백두대간 수목원' 부지 안에 축구장 6개 크기의 비교적 넓은 호랑이 사육지를 갖추었다고 한다. 현재는 6마리 호랑이가 지내고 있다는데, 오래 전 만났던 그 이상행동 호랑이도 그곳으로 옮겨져 자연사할 때까지 지냈다 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30여 마리의 호랑이가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전히 공간은 턱없이 부족할 터이다.

동물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 원래 온 곳으로 돌려보내고 무리들과 함께 그들의 본성대로 살게 했으면 좋겠다. 아마 그림책 <내일의 동물원>의 작가 에릭 바튀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동물원의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 주는 수의사 잭을 통해 동물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내용을 담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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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동물원, 에릭 바튀(지은이), 박철화(옮긴이) ⓒ 봄볕

 
하지만 작가는 정작 동물들을 돌려보낼 자연 역시 황폐해지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한 발 더 나아간다. 정글의 나무들은 베어지고, 들판은 불에 타고, 극지방엔 석유를 찾는 기계들이 즐비하며, 아프리카의 강과 호수는 콘크리트 댐으로 말라버렸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동물들의 자유를 박탈한 것도 모자라 그들의 서식지 마저 파괴하고 있으니 어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그림책의 작가는 수의사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 섬으로 동물들을 이끄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지만, 현실에선 어떤 방법이 있을지... 필요한 동물을 구제하거나 보호하는 목적의 동물 보호소 같은 시설은 유지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관람을 위한 동물원은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건 어떨까? 

사실 갇힌 생명체를 신기해하며 관람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일지도 의심스럽다. 이렇게 울타리 하나 사이로 사육당하는 존재와 관람하는 자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자리가 또 있을까? 울타리 밖에서 즐기는 자가 슬며시 느끼는 우월감이 지구상에서 공존해야 할 동물과 인간 간의 관계에 과연 이롭게 작용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동물 관람의 방식이 정히 필요하다면,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AI 기술과 로봇 기술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비생명체라 관리도 쉽고, 탈출도 않는! 진짜 동물들은 본래 살던 곳에서 잘 살도록 놔두며 말이다. 동물들과 지혜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해법 찾기를 더 이상은 미룰 때가 아닌 것 같아 짧은 생각이라도 보태 본다.

내일의 동물원

에릭 바튀 (지은이), 박철화 (옮긴이),
봄볕, 2019


#얼룩말 탈출 #동물원 동물의 이상행동 #동물과 인간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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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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