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제하고 지구상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나라를 하나만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베트남을 꼽겠다. 중국과 일본 등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더 많은 교류를 한 나라가 있지 않으냐 하면 그것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시야는 언제나 다양할 수 있고, 베트남과 한국 사이엔 그야말로 특수한 유사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베트남인가. 주된 이유는 역할이다. 아시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적어도 지난 삼천 년 동안 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는 명백하게 중국이란 점이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와 한나라, 수많은 분쟁을 지나 명나라와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중화인민공화국 이전까지는 중화의 질서가 강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직계 국가들은 중국의 1차 접경국으로 직접적 영향을 주고받을 밖에 없었다. 민족적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았던 서부와 북부 접경국과 달리, 또 한국과 베트남을 거쳐 문명을 주고받아야 했던 일본이며 크메르 같은 원거리 국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a
▲ <비상하는 용 베트남> 책 표지 ⓒ 한울아카데미
한국과 베트남이 걸어온 닮은 길
이로 인하여 베트남과 한국은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경험한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설치했을 무렵, 베트남 일대엔 아홉 개 군을 설치해 다스린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가 생겨난 그 시기엔 베트남 역시 아홉 개 군을 몰아내고 민족국가를 설립한다.
당이 고구려를 멸하고 안동도호부를 두었을 즈음, 베트남엔 안남도호부가 설치됐다. 이 땅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태어날 무렵, 베트남엔 <영남척괴>와 <대월사기전서>가 쓰인다. 유불선 삼교의 영향을 받은 것부터 과거제의 도입 등 주요한 역사적 지점도 유사하게 밟는다.
그 뿐인가. 오랜 식민지배와 독립운동,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간의 대립을 거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점도 유사하다. 심지어는 한국이 미국 편에서 전쟁에 개입해 그들에겐 상처를 남겼으나, 우리에겐 경제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 외교 파트너 국가로 대기업의 공장이며 투자가 집중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당신은 베트남을 얼마나 아는가
그러나 한국은 베트남에 대해 무지하다. 베트남에 언론사 특파원을 파견하기도 하지만 그곳에 대해 깊이 이해한 보도를 내놓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베트남을 중시하는 서구권 주재기자들의 보도를 보면 명확해지는데, 대표적으로 베트남 정권의 변동과 관련하여 한국은 늘 하루 쯤 늦은 분석을 받아보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21세기 초 BBC 베트남 하노이 특파원으로 활약한 빌 헤이턴의 <비상하는 용 베트남>은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깊이 있는 역사서와 가벼운 문화서 그 중간쯤에 위치한 이 책은 베트남에 정통한 비판적 언론인의 시선으로 가감 없이 그들의 오늘을 써내려갔다. 베트남 공산당의 심기를 여러 차례 건드려 마침내 추방되기까지 한 헤이턴은 베트남에 대한 애정과 언론인으로서의 비판성을 모두 갖고 베트남의 여러 얼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시도한다.
모두 10장으로 나뉜 책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어느 한 가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베트남의 체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공산국가 가운데 가장 신속하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독특한 체제부터, 그럼에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국가주도 경제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서술한다.
이어 농경국가인 베트남의 토지문제와 이촌향도로 인한 내재된 갈등 문제도 짚는다. 마치 한국의 30~40년 전을 보는 듯한 묘사는 실제로도 그러하여, 개발에 맞서 싸운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사례와 같은 슬픈 이야기가 베트남엔 현재적 문제임을 일깨운다.
오늘의 베트남을 다각도로 그리다
낯선 대목도 적지 않다. 체제를 수호하려는 공산당의 공포에 가까운 집착의 결과들, 요컨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조직을 공산당이 감시하는 현 체제의 상황도 상세히 적고 있다. 가족의 등급을 국가가 평가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가족의 최연장자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책은 단순히 문화며 사회상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 캄보디아, 미국 등의 나라와 맺어온 외교관계를 잠재적 위협과 국제정치적 이해관계 위에서 그려낸다. 오늘날 베트남에 은근한 힘을 미치고 있는 종교와 인종, 지역의 문제 또한 빼놓지 않는다.
이 가운데 베트남 곰에게 빨대를 꼽아 먹는 한국 관광객이며, 베트남 강에 오수를 그대로 배출해 벌금을 때려맞는 한국 기업들의 면면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비상하는 용 베트남>은 베트남을 깊이 있게 다룬 책을 찾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서 흥미롭게 읽을 만한 저술이다. 베트남이 그저 쌀국수를 먹고 리조트에서 쉬다 오는 그런 나라일 수만은 없는 한국의 현실 가운데 그들의 정치와 역사와 문화를 이렇게 소개하는 책이 없다는 점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인이 쓴 책들 가운데서 이와 견줄 만한 책이 여럿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베트남 주재 기자를 제법 둔 한국의 오늘이 민망하기도 하다. 특히 기자로서 제 경험을 저술로 남겨야 한다고 여기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책을 내놓은 헤이턴의 집념이 인정할 만 하다고 하겠다.
비상하는 용 베트남 - BBC 기자가 본 오늘의 베트남
빌 헤이턴 (지은이), 이종삼 (옮긴이),
한울(한울아카데미), 201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