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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미나리'"... 캐나다로 이민간 모자의 인생 3막

[리뷰] <라이스보이 슬립스>

23.04.03 11:45최종업데이트23.04.0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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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스보이 슬립스> 영화 포스터 ⓒ 판씨네마㈜

 
1990년, 남편을 잃은 엄마 소영(최승윤 분)은 유일한 가족인 어린 동현(황도현 분)을 데리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온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맞이한 현실은 힘겨울 뿐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소영은 성추행까지 당하고, 학교에 간 동현은 얼굴도, 머리색도 다른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놀리는 친구들과 싸움을 벌인 동현이 혼자 징계를 받는 학교의 차별적인 태도에 소영의 억장은 무너진다.

1999년, 10대가 된 동현(이든 황 분)은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머리는 노랗게 염색을 한 자유분방한 캐나다 청소년으로 자랐다. 동현은 가계도를 그려오라는 숙제에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빠에 관해 묻지만, 엄마 소영은 대답을 피한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소영은 동현을 데리고 한국으로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 <라이스보이 슬립스> 영화의 한 장면 ⓒ 판씨네마㈜

 
최근 북미에선 아시아계 이민자를 다룬 영화가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론 커밍아웃하지 않은 한국계 미국인 10대 소년이 주인공인 <스파 나잇>(2017), 중국계 이민 2세 딸과 싱가포르의 재력가 집안의 아들의 로맨틱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뉴욕에 사는 중국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페어웰>(2019),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을 그린 <미나리>(2020), 이민 1세대와 2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멀티버스로 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장르와 화법으로 이방인으로서의 가족, 문화, 정체성을 표현했다.

1986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1994년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온 이민 2세이자 한국계 캐나다인인 앤소니 심 감독이 연출한 <라이스보이 슬립스>(2022) 역시 아시아계 이민자를 다룬 영화에 속한다. 그는 <라이브보이 슬립스>가 어릴 적 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 아이로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기억과 한국 음식, 언어, 문화, 가족 등 한국적인 것을 숨기려고 했으나 동시에 한국을 향한 애정, 호기심, 이해도 함께 자라난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이 녹아든 '반자전적' 이야기라 소개한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나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었고, 영화를 통해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제대로 다뤄보고 싶었다. 내가 겪은 이야기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이민자들의 경험, 생각, 감정 모든 것을 쏟아내서 작업했다."

"헌신적인 한국의 어머니들에 대한 헌사"
 

▲ <라이스보이 슬립스> 영화의 한 장면 ⓒ 판씨네마㈜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캐나다로 이민을 온 어머니와 아들이 이방인으로서 고립감을 느끼는 1막, 1999년 어머니와 아들의 심리적 갈등이 벌어지는 2막, 두 사람이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3막으로 구성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정서적 여정이다. 영화는 우리나라의 설화 <고려장 어머니의 아들사랑>을 극 중간에 넣어 어머니 소영과 아들 동현의 이야기를 한층 한국적이며 은유적으로 만든다. 

아들이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고려장을 하러 숲에 가는데 그 사실을 아는 어머니가 도리어 아들이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봐 걱정되어 소나무를 꺾은 후 던져서 길에 표시를 해 두었다는 내용의 <고려장 어머니의 아들사랑>은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이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소영의 바람과 맞닿는다. 한편으론 어머니의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연상케 한다. 앤소니 심 감독은 "헌신적인 한국의 어머니들에 대한 헌사"라고 말한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보편화된 디지털 대신에 16mm 필름으로 촬영했다. 필름 고유의 질감은 언젠가 돌아갈 집과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정서, 그리고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는 듯한 추억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화면비율이 바뀌는 점도 눈길을 끈다. 캐나다에선 1.33:1 화면비율을 사용한다. 인물들이 좁은 실내 공간에서 있는 탓에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외롭고 문화적으로 갇힌 느낌이 강하다. 

반면에 한국으로 무대로 옮긴 후부턴 넓은 범위의 1.78:1 화면비율로 바뀌고 전개도 주로 햇볕이 잘 드는 탁 트인 자연에서 펼쳐진다. 이것은 강요된 정체성이 아닌, 스스로 정체성을 찾았다는 '성장'과 '해방감'을 시각화한 묘사다.
 

▲ <라이스보이 슬립스> 영화의 한 장면 ⓒ 판씨네마㈜

 
제목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아이슬란드의 밴드 '시규어 로스'의 욘시와 알렉스 포머스의 아트 콜라보로 2010년 발매한 앨범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따왔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영화와 맞는 느낌의 음악 앨범이나 가수를 골라서 듣는다는 앤소니 심 감독은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준비하며 이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고 제목을 정할 무렵엔 자연스레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라이스보이'는 아이들이 동현을 조롱하며 붙인 모욕적인 표현이다. 쌀농사를 짓는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동현이 만나며 욕으로 쓰이던 '라이스보이'는 자랑스러운 단어로 변한다. 동현이 부정하고 싶었던 정체성을 비로소 받아들이며 '라이스보이'는 '잠들게' 된다.

'한국적'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면서 '보편적'인 이방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제2의 <미나리>"란 평가를 많이 받았다. 아마도 두 영화가 공히 한인 가족의 이민 정착을 다뤘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하다. <미나리>는 한인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는 험난한 과정과 그것을 보듬는 할머니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캐나다로 이민을 온 모자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 핵심이다. <미나리> 속 어린 아이들이 10대로 성장한 후 이야기가 <라이스보이 슬립스>일지도 모른다.

두 영화는 모두 한 가지를 확실하게 강조한다.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가 더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겐 더욱 많은 <미나리>,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필요하다.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심사위원상 수상작.
앤소니 심 최승윤 이든 황 황도현 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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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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