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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시구, 서북청년단 난입... 참담한 분위기의 제주

[取중眞담] 유독 '쓸쓸한' 제75주년 4.3 추념식... 유가족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

등록 2023.04.03 12:23수정 2023.04.0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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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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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일 오전 10시. 길게 사이렌이 울렸다.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시작됐다.

제주에는 전날인 2일 오후부터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도 찼다. 아침 낮 기온은 10도 안팎까지 내려갔다. 유가족들도 모두 방한복 차림이다. 추념식 장소인 4.3평화공원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였다.

75주년을 맞는 제주 유가족들의 마음도 흐렸다. 최근 제주 시내에 나붙은 제주 4.3 희생자 폄훼 현수막 때문이다. 주로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 등이다. 현수막을 내건 주체는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이다.

제주도청이 나서 일제히 철거했지만 이미 현수막을 본 유가족들의 마음은 참담했다. 현수막을 내건 정당들은 도리어 '현수막 철거로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제주도지사 등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3일 오전에는 4.3 당시 도민학살을 주도한 단체를 추종하는 '서북청년단' 명의로 행사장 진입로에서 집회신고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북청년단 회원들은 유족청년회원 등의 반발로 타고 온 승합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한 채 되돌아갔다. 유족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서북청년단 재건과 이름을 오르내리냐"며 절규했다.

이날 추념식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추도사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제주를 세계인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품격 있는 문화관광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저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참석해 위로 전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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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위해 그라운드로 입장하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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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와 참석자들이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2023.4.3 ⓒ 연합뉴스

 
하지만 유족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김창범 제주 4.3희생자유족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 추념식은 왜 이리 썰렁하기만 하냐"고 반문했다. 이어 "기온이 낮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춥다"면서 "윤 대통령이 참석해 4.3을 온몸으로 겪은 체험 세대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다면 얼마나 마음의 위로가 됐겠냐"고 지적했다.

김 유족회장은 "진실 왜곡의 망언과 현수막 게첨은 역사 퇴행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제주도민과 13만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다"라며 "하지만 굴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양성주 제주 4.3 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은 "윤 대통령이 야구장에서 깜짝 시구를 할 시간은 있지만 추념식에 참석해 13만 유가족의 마음을 달랠 시간은 없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부와 국회에 가족관계 특례조항 마련, 4.3 기록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트라우마센터 설치, 조속한 직권 재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추념식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1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열렸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불참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지난 해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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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7시 30분경 4.3 75주년 추념식이 열릴 예정인 제주 4.3 평화공원 앞에 서북청년단이 탄 승합차가 나타나자 4.3 유족들이 저지에 나섰다. 이에 경찰이 승합차를 둘러싸고 막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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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제주 4.3 75주년 추념식이 예정된 제주 4.3평화공원 어린이교통공원 앞 네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서북청년단이 이날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 심규상

#윤석열 #제주 #4.19혁명 #서북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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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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