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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3일, 제주에 나타난 서북청년단 "그 이름은 공포"

[스팟인터뷰] 제주 4.3 폄훼 현수막 강제철거한 강병삼 제주시장

등록 2023.04.04 09:33수정 2023.04.0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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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서북청년단' 표찰 4.3 75주년 추념식을 앞두고 3일 오전 7시 30분경 제주 4.3 평화공원에 나타난 서북청년단. 가슴에 '서북청년단'이라고 쓰여진 표찰을 달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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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 안의 서북청년단 3일 오전 7시 30분경 4.3 74주년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 평화공원에 서북청년단원이 탄 승합차가 등장하자 유족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 심규상

    
지난해 8월 제33대 제주시 시장으로 취임 전까지 4.3 사건 직권재심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했던,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 4.3의 유족이기도 한 강병삼 제주시장은 3일 제주 4.3 75주년 추념식장에 등장한 서북청년단에 대해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공포'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제주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은 공포다. 국가폭력으로 오랫동안 각인돼 있던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아물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서북청년단 이름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제주도에 버젓이 나타났다.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다."

제주 4.3 당시 도민학살을 주도한 단체가 서북청년회(서청)다. 이들은 1946년 미군정 당시 조직돼 '빨갱이 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제주도민을 향한 무자비한 폭행과 약탈을 자행했다. 이들의 악행이 쌓이고 쌓여 1948년 4.3 발발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 이런 '서청'을 추종하는 '서북청년단'이 "집회를 한다"며 승합차를 타고 나타났다. 현장에 있던 유족들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냐"며 절규했고, 결국 이들은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한 채 되돌아갔다.

강 시장은 "국가 폭력으로 민간인이 이렇게 희생된 사건에 대해, 무엇보다 진상조사까지 국가의 법률로 다 밝혀진 사건은 좌우 이념의 문제로 따질 것이 아니"라며 "국가폭력과 개인의 희생에 관한 주민들의 희생에 관한 문제라는 걸 인지한다면 누구라도 (이들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강 시장은 이종우 서귀포시장과 함께 공동 입장을 내고 제주 전역에 걸린 '4.3 폄훼 현수막' 수십 개를 전격적으로 철거했다. 

앞서 3월 21일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극우 성향 정당 등은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제주 곳곳에 걸었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법상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담은 정당 현수막'이라는 해석을 제시해 철거가 제한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 시장과 이 시장은 '제주 4.3 특별법'을 근거로 철거를 강행했다. 


제주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13조에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됐다.

아래는 강병삼 제주시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 추념사, 위로 대신 산업 언급... 아쉬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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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추념식에 불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추념사를 대독했다. 

"4.3 관련 법제화도 되고 진상조사 보고서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책임에 대해 많은 부분이 인정되고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제는 국가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가 차원에서 보다 명백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 총리가 대독한) 윤 대통령의 추념사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강하게 국가의 반성을 이야기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 추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4.3 희생자·유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 없이 제주를 'IT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활약'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4.3은 아주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이다. 이 말은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는 뜻이다. 지금도 완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 대신 산업 등을 언급하며 (4.3을) 금전적인 문제로 치환해 버린 건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서운한 지점이다."

- 추념식에 소개된, 박삼문씨로 살았던 이삼문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대통령이 나서서 희생자들의 상처를 좀 더 보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군사재판 관련 직권재심뿐 아니라 일반재판을 받은 희생자에 대해서도 현재 직권재심 범위 안으로 포함시키는 결정을 (정부 차원에서) 해주고 있다. 높게 평가한다. 올 7월부터는 이삼문씨 사례처럼 가족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도 시행된다. 연좌제 때문에 출생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성을 바꾸고 살아온 분들이 재판이 아닌 제도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 큰 진전이다."

3일 추념식에선 4.3 당시 부모, 두 형, 누나 등을 모두 잃고 제주를 떠나 전남에서 박씨 집안 호적으로 오랫동안 살아야했던 이삼문씨의 기구한 사연이 소개됐다. 그로 인해 1941년생이었던 그는 1953년 박삼문으로 이제까지 살아왔다. 

그의 아들 박상일씨는 "아버지가 2016년 66년 만에 제주를 방문해 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을 찾았을 때 할아버지 위패와 함께 아버지 위패(이삼문 이름의 위패)도 있었다"면서 "(아버지 본인에 대한) 희생자 취소 신청은 됐지만, 희생자인 할아버지 유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는 7월부터 희생자와의 친생자 확인이 가능해지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북청년단 이름은 공포... 상처 후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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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삼 제주시장 ⓒ 연합뉴스

 
- 75주년 추념식에 서북청년단 옷을 입은 단체가 집회를 한다며 등장했다. 충돌이 우려되진 않았나?

"평화공원 입구 쪽에 신고된 집회다. 우려할 만큼 많은 인원이 온 것도 아니었다. 유족회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우려를 표하다 보니 특별히 충돌이 발생하거나 그런 사태 없이 잘 정리가 됐다. 그럼에도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추념식에 방문한다는 것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다. 제주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은 공포다. 국가폭력으로 오랫동안 각인돼 있던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아물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서북청년단 이름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제주도에 버젓이 나타났다."

- 왜 이렇게 극단적 성향의, 왜곡되고 편향된 단체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나?

"넘겨짚으며 쉽게 추측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다만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도리를 할 생각이다."

- 이런 가운데 지난달 말일 이종우 서귀포시장과 함께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제주시 전역에 설치된 '4.3 폄훼 현수막' 현수막을 철거했다. 정당 현수막이라 철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4.3 특별법 13조에 보면 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 조항이 있다. 4.3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해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이번에 게시된 현수막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고통 이상의 것이다. 행정에서 해야 될 일은 시민들의 마음을 방어해 주는 일이다. 특별법 13조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언급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리가 다양성을 인정하며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거다. 특히나 정당의 경우에 그런 표현의 자유가 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다만 국가폭력에 의해 역사적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부분에 대해 다른 의견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가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러한 현수막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 현수막 철거 후 해당 단체에서는 반발하며 고소와 고발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직 고소나 고발이 들어오진 않았다. 다만 들어온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나라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헌법적 가치에 준해 이 사안을 판단하리라고 믿고 있다. 헌법적 가치라는 건 국가와 국민 간에 침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정한 거다.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부분을 정했고 국가는 어떤 식으로 통치할 지에 대해 통치 구조에 관한 것을 정해놨다.

즉, 국가라는 것은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일부를 위임해 가지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에 대해 정하고 있다. 4.3은 어떤가? 국가가 나서서 많은 국민들의 생명권을 해친 사건으로 정의 내렸다. 헌법적 가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사안에 대해 고소나 고발이 이뤄진다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거라고 본다. 당당하게 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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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라2동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 제주의소리

#제주4.3 #윤석열 #한덕수 #4.3 #강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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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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