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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출근... '주주야야비비' 노동자입니다

[어느 노동자의 고백] '감시적 근로자'의 야간 경비 일지

등록 2023.04.10 04:57수정 2023.04.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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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에 집을 나서 일터에 도착한 후 오후 6시에 야간 근무를 시작한다. 먼저 로비의 전등을 켜고 출입문 일부를 잠근다. 출근 시간과 반대로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쉴 새 없이 건넨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인사한다. 그러면 시간도 잘 간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이 퇴근하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면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최소한의 출입구만 열어두고 건물 정문과 후문, 그리고 지하로 통하는 모든 문을 잠그고 출입 금지 표지를 세운다. 로비와 통로에 있는 대부분의 전등을 끄고 내 자리에 돌아와 휑한 로비 구석에 놓인 의자에 잠시 앉는다.

오후 6시 근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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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새벽을 여는 불빛들. 로비에서 바라본 풍경. 내부와 바깥 건물들의 전등불, 달빛이 어우러진다. 새벽녘 도심 빌딩은 미화원들이 밝힌다. ⓒ 김상봉

 
건물에 있는 식당들이 아직 운영 중이고 개방형 화장실이 24시간 열려 있으므로 방문객의 왕래는 계속된다. 입주 기업에 외부인이 들어가면 안 되므로 연신 고개를 돌리며 살피고 방문객의 문의에 응대하거나 안내하면서 계속 움직인다. 건물 바깥 주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흡연구역으로 유도하고 불법 주차한 차주에게 연락하는 등의 일을 하노라면 사실 의자에 붙어있을 틈은 별로 없다.

순찰 시각이 되면 20여 개의 층을 도는데,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야근 날의 발걸음 횟수가 1만 5천 보가량 되지만, 이전 아파트 근무 3만 보에 익숙해서인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책 정도의 느낌이 들 정도이다. 경비원의 업무는 외부에서 침입한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재난 위험을 미리 찾아 안전한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무실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간단히 끝날 일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안이나 안전보다 더 시간이 소요되는 일은 냉난방기나 사무실의 전등을 끄는 일이다. 기업별로 마지막 퇴근하는 사람이 소등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곳은 열에 하나둘 정도이고 대부분 불을 켜두고 퇴근한다.

깜빡 잊고 몇 개를 끄지 않았다기 보다는,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등을 모두 켜 놓은 채 퇴근하는 경우가 많아서 복도와 사무실, 회의실마다 들어가 스위치 위치를 확인해 끈다.

한 층에 수십 개가 넘는 공간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입에 침이 마르고 마음은 급해진다. 층마다 입주한 기업의 구조가 달라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작은 회의실이 있는 경우도 있고, 부서별로 보안시스템이 따로 설치되어 있어 하나하나 보안키로 열고 통과해야 한다.


불을 다 껐나 싶어서 나서다 보면 천정에서 냉난방기가 돌아가고 있다. 다시 전등을 켜고 냉난방기의 리모컨을 찾아야 하는데 사용한 사람마다 자기 근처에 두기 때문에 이걸 찾는 일이 또 수월치 않다.

냉난방기를 끄고 나서려는데 어둠 속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온는 게 아닌가. 확인해보니 구석에 있는 임원실의 스탠드다. 조명을 은은하게 해놓고 퇴근해서 창밖의 불빛과 어우러지면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 소등에 성공한다. 이런 식으로 각 층 순찰을 하다 보면 어릴 때 소풍 가서 보물찾기 놀이하던 생각이 떠올라 혼자 웃음 지을 때도 있다. 그래,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낫다.

주차장에 남아 있는 차가 몇 대인지 확인한 후 건물 외부 주변의 이상 여부를 살피고 로비로 돌아와 순찰일지에 내용을 기재하면 한 차례의 순찰이 끝난다. 다시 로비의 의자에 앉거나 서서 감시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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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하려면 작성하는 서류... 거짓 서명을 했습니다 https://omn.kr/23b5z

자정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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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하는 무전기 경비원은 새벽에도 근무 내내 감시한다. ⓒ 김상봉

 
자정이 되면 휴게시간이 주어진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 시간, 휴게, 휴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감시적 근로자'라면서 웬 휴게시간일까. 그래도 경비원이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건가 생각해봤지만, 최저임금에 맞춰 월급을 주려는 경비 용역회사들이 고뇌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일하던 아파트는 오전 10시에 무조건 지하 합숙 장소에 갈 것을 명령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주차장 한쪽의 냄새 나는 공간에 가라는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임금에 맞추기 위해 쉬고 싶지 않다고 해도 소용없이 강제 휴게가 부여된 것이었다.

어찌됐든 세 시간의 휴게시간에 잠시 잠을 청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취침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휴게실 바닥에 누워보지만 여기저기 들리는 기계음이 피곤함과 어우러진다.

마침내 잠들어도 20~30분 단위로 깨서 시계를 확인한다. 혹여나 지친 몸이 잠에 빠질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함께 야간 근무하는 동료는 내가 올라가야 휴게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1분이라도 늦게 교대해 주는 것은 엄청난 죄를 짓는 행위로 느껴진다.

보통 오전 2시 50분경에 근무지로 올라간다. 입주 기업의 휴게공간에 식음료를 납품하는 사람은 자정 무렵부터 이즈음까지 일하고 내려온다. 이어 신문 배달하는 분이 두고 간 신문을 중요한 분들이 출근하면 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가져다 놓는다. 잠시 후 전날 밤에 잠근 문과 꺼둔 전등을 모두 열고 켠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청소도 과학이다' 

주차장 입구와 출구 셔터를 올리고 빌딩 주변 점검을 마치면 새벽 5시가 채 안 된다. 새벽 공기를 크게 들이쉬면서 아직 어두운 주위를 둘러보노라면 연이어 서 있는 거대한 빌딩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서 잠든 서울을 깨운다. 청소하는 분들이 일하기 위해 불 켜는 것이다. 대부분 적지 않은 나이에 몸이 온전한 경우가 많지 않을 텐데 이 시간에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오는 걸까.

주말의 새벽 순찰은 모든 사무실이 캄캄하다.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며 각층 사무실과 회의실 점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많은 의자에 걸쳐놓은 점퍼의 모자가 켜놓은 모니터와 조화를 이루면 마치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순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평일엔 미화원들이 활기 있게 일하고 있어서 밤새 지친 경비원도 힘을 내게 된다. 경비원이 불을 켠 후 열어둔 출입구를 따라 출근한 미화원이 층마다 불 켜고 모든 문을 연 공간을 다시 경비원이 순찰한다. 일종의 협업이다.

그중 한 분과 대화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 청소 잘해요"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 이분은 17년째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청소 도구에 반듯하게 쓴 글씨가 있길래 자세히 보니 '청소도 과학이다'라는 글이다. 이어지는 이분의 이야기. 사람들이 청소는 아무렇게나 하는 줄 알지만, 노력과 숙련이 필요한 전문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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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도 과학이다 걸레를 빨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물통. 청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청소도 과학’이라는 이분의 말에 공감된다. ⓒ 김상봉

 
하긴 내가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면 경비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보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적인 능력과 철학을 갖춰야 하는 직업이라는 나의 대답에 질문자의 반응은 없었다.

그런가 하면 경비 교육을 받을 때면, 부족한 경찰력을 대신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직업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공적 지위를 가지고 일하므로 '공경비', 민간인 신분인 경비원은 '사경비'다.

나는 경비원이 빠른 판단력과 예측력을 지녀야 하며 기본적인 신체조건과 봉사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대화 나눈 미화원처럼 나 역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경비원을 "일반적 업무보다 노동 강도가 약"하고 "잠시도 감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고도의 정신적 긴장이 요구되지 않는" '감시적 근로자'로 규정한 채 법의 보호에서 제외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63조 3호 적용제외 대상).

새벽 순찰을 마치고 근무표에 따라 나머지 출입문을 연 후 입주 기업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면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마음으로 옷매무새와 마음을 가다듬고 아침 근무에 들어간다. 주간 근무자가 출근하는 오전 7시 55분에 교대하면 하루 야근은 끝난다.

빌딩에서의 근무 형태는 24시간 맞교대했던 아파트와 달리 '주주야야비비'다. 이틀은 주간 근무, 다음 이틀은 야간근무, 5일째 아침에 퇴근해 6일째까지는 비번으로 6일이 한 묶음이다. 쉬는 날이 이틀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체감은 그렇지만은 않다.

첫 야근을 마친 4일째 아침에 집에 도착하면 거의 오전 10시가 된다. 씻고 밥 먹고 나면 어느새 반나절이 가고, 조금 쉬었다가 오후에 다시 출근해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므로 2박 3일 중 이틀째에 잠시 집에 다녀오는 느낌이다. 이러고 나면 후유증이 남아 있어 제대로 '비비'를 누리긴 어렵다.

긴장된 4박 5일이 끝났다. 근무지마다 형태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비슷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빌딩 경비원으로서의 야간 근무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경비원 #감시적근로자 #감단근로자 #비정규직 #적용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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