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어떻게 해야 '다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문화로 읽는 노동] <다음 소희>의 시도가 이어질 수 있도록

등록 2023.04.12 09:57수정 2023.04.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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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유롭지 않은 이 지옥도의 구조를, 더 묻히지 않게 드러내는 게 더욱 필요하다.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작품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하나의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는 본래 마이스터고에서 '애견학과'를 다녔지만, 졸업을 앞두고 진행된 현장실습에서는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관계도 찾아볼 수 없는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해야 했다. 그것도 '해지 방어팀'이었다. 겉으로는 통신사와 전혀 다른 별개의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통신사의 위장 자회사였던 콜센터는 고인을 비롯한 현장실습생에게도 꾸준한 실적을 요구했다.

'고객'들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수한 폭언과 욕설을 내뱉었다. 실적압박을 해온 회사도, 그 회사에 전화하는 고객도, 자신을 이런 곳에 현장실습을 보낸 학교도 모두 개인을 압박하는 가운데,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고통에서 해방되고 말았다. 회사의 이름은 LG유플러스의 '위장 자회사' LB휴넷, 고인의 이름은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수연이었다.

지옥도의 구조에서 모두가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지난 2월, 하나의 작품이 극장가에 등장했다. 홍보물이나 보도자료에서 사건의 정확한 명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사건은 명백하게 2017년의 안타까운 비극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2014년 영화 <도희야>로 데뷔한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배우 배두나가 <도희야>에 이어 다시 한번 주연을 맡은 <다음 소희>였다.

<다음 소희>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2017년에 세상을 떠난 고 홍수연님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 '소희'(김시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부 고유명사의 변경을 제외하면 1부에서 등장하는 상당수의 이야기는 실제 고인이 현장실습을 다니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을 최대한 재현하면서 전개한다.

1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희에게 직간접적으로 여러 고통을 끼치는 이들을 단순하게 비열한 악당으로 만드는 묘사를 지양한 점이다. 소희를 전공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보낸 담임 교사도, 콜센터에서 소희를 비롯한 현장실습생에게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직장 사람들은 분명 문제적 존재들이다. 이들은 소희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소희의 요구를 어떻게든 억누르기에 바쁜 존재이다.


그러나 영화는 은연 중 소희를 압박하는 이들 역시도 결국 노동을 아우르는 구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드러내며, 이들도 '구조의 희생자'임을 내비치고 있다. 담임 교사는 어떻게든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교육기관의 인센티브 지급 구조에서, 콜센터에서 실적을 압박하는 상사들 또한 지속적으로 실적 유지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영화는 결코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모두를 착취의 고리에 얽매이게 하는 이 구조의 정점에 있는 자본은 자신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방안에만 더욱 몰두한다. 이 지옥도를 쉽게 벗어날 길이 마땅치 않은 상황으로 내몰린 개인의 처지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취한 방법이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비극적 사건'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

하지만 여기서 작품이 멈췄다면 지독하게 염세적인 영화로만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다음 소희>는 2부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영화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1부의 주인공 소희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후,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형사 '유진'(배두나)이 사건의 담당 형사로 배정되며 한 명의 청소년을 죽음으로 몬 이 냉혹한 구조의 실체에 점차 다가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2부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소희의 시신에는 이렇다 할 타살의 흔적도 없다. 일반적인 형사였다면 빠르게 이 사건을 '자살'이라는 차가운 두 글자로 종결지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소희의 죽음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진은 소희의 가족은 물론 소희가 생전에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던 회사와 소희를 콜센터로 보낸 마이스터고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수사의 범위를 해당 고등학교를 담당하는 교육지원청으로 넓히며 이 사건의 뒤에 오랫동안 묵은 구조의 문제가 있음을 밝혀내려 한다.

이러한 묘사는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사건에서는 경찰이 특별히 사건 규명을 위해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타살이 아닌 이상, 한 개인의 자살 사건에 놓인 구조적인 맥락을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해서 나서는 경찰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작중 유진은 웬만한 노조 활동가 못지않게 노동의 실질을 규명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연출자는 왜 '유진'이라는 경찰 캐릭터를 설정하여 왜 2부에서 1부의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어찌 보면 현실에서 소희의 죽음을 대하는 가장 쉬운 태도는 유진 외 다른 형사들의 태도처럼 명백한 자살이니 힘쓸 필요 없이 바로 사건을 덮거나, 학교와 콜센터의 모습처럼 사건을 그저 재수 없게 벌어진 일 혹은 개인의 잘못으로 취급하며 빠르게 넘어가기에 급급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유진 정도만이 사건에 구조적인 책임이 있음을 밝혀내려 애를 쓴다. 유진이 실체에 접근하려 할수록 사건에 밀접하게 연관된 이들은 물론, 유진이 속한 경찰 조직도 유진의 행보에 점차 간섭을 가하는 모습은 노동 문제에 대한 구조적 접근과 해결이 그만큼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호적인 표현인 셈이다.

실제 대책위를 구성하고 활동했던 사람들을 캐릭터로 구현했다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교육지원청을 방문하는 것처럼 지역 노동위원회를 방문하는 모습도 보여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는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반쯤은 '대중 영화'를 노리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각색의 선택도 있었으리라.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음 소희>는 노동의 문제가 어떠한 구조에서 발생해 각각의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최대한 근접해서 묘사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러한 시도가 계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쉽게 묻히지 않도록 하는 길이 아닐까. 언젠가는 <다음 소희>의 성과를 이어내고,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노동을 다룬 작품이 등장할 수 있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신 성상민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영화_다음소희 #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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