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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40대 부부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전세금 대출 상환, 장사 적자로 생활 어려워져... 개인회생 등 법·제도 문 두드려야

등록 2023.04.13 12:19수정 2023.04.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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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1980년대 말 어느 부부의 대화. 이들은 지방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조그만 소매점을 하는 자영업 부부다.

"당신 어떻게 할라 그래요? 여기저기 갚아야 할 돈이 5백만 원인데... 농협에서 빌릴 수도 없고. 장사도 안 되고, 또 보증 선 사람들한테는 어떡한대요."
"그러니까, 어디 돈 빌릴 곳도 없고, 더 이상 친지들한테 피해주기도 그렇고... OO엄마, 우리 그냥 서울로 가버릴까?"

"아니 근데, 애들은요, 부모님이랑 형제들은... 서울 가서 어떻게 먹고살고..."
"일단은 우리가 눈에 안 보이면 당장 그분들이 피해 입을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돈은 우리가 벌어서 갚고..."


이들 부부는 결국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선택했다. 가벼운 옷가지와 아이들의 손만 부여잡은 채.... 이때는 지금의 회생 파산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채무자가 제도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사회문제화 된 개인의 신용불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채무자회생법'은 2004년에 제정되었으나, 2005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이에 통합되었다 - 기자 말).

[#장면2] 2023년 어느 봄날 부부의 대화. 아이 둘을 키우는 이 부부는 합계 소득이 월 450만 원인 자영업자다. 현재 자산상황은 채무초과로 신용불량 상태다.

"큰일이네 갈수록 장사도 안 되고... 요새는 손님들이 너무 없어. 워낙에 경기가 안 좋아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은행하고 새마을금고에서 대출 한도가 다 돼서... 돈을 더 빌릴 데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보증금이나 집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고... 참!!"

"며칠 전에 상가 보증금도 올려달라고 건물주한테 재촉 전화도 왔었는데..."
"성실하게 살아도... 세상살이가 팍팍하네요. 어떻게 빚을 정리하고 새 출발 할 수 있을까요?"
"저번에 어디 보니까.... 여러 기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 상담도 해주고 빚도 탕감해 주고 그러던데... 서초동 법원에 한 번 찾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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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법원의 NEW START 상담센터 서울회생법원에서 회생 및 파산 관련 상담을 받고자 하는 시민들이 방문하여 제도와 절차 안내를 받는 곳입니다. ⓒ 배운기

 
자영업자들에게 더 가혹한 경제상황


회생법원 상담센터에 찾아온 자영업자인 40대 부부. 이들은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하지만, 채무가 과다해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생활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아파트 전세금 대출 상환과 매달 적자에 가까운 장사, 생활비와 교육비 때문에 파산직전 상태에 있다. 형편이 어찌 되었건 계속 영업을 할 생각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들이 빚을 어느 정도는 변제할 계획이다. 신용회복위원회나 서울시를 찾아가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는 채무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상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두 분은 무슨 고민 때문에 오셨나요?"
"네, 작은 카페를 하는 자영업자인데요. 저희가 빚이 많아서... 장사는 계속해야 될 거는 같은데... 일단 지금까지 빚을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지 힘들어서 찾아왔습니다."

"... 현재 자산과 부채 상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중략)

"두 분 같은 경우에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빚을 완전히 탕감받는 것이고, 둘째는 일부라도 일정기간을 갚아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두 절차 모두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다만, 두 분의 경우에는 영업으로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계속 발생가능하고, 변제 의지도 있으셔서 개인파산은 신청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자의 총 대출 규모는 1019조 8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대출은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더한 것이다. 자영업자 10명 중 6명 정도는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다. 따라서 영업부진에 따른 대출상환 불능 혹은 지연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금리변동과 부동산 경기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장기적인 경제 불황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국제 환율 문제와 쌍둥이 적자의 우려 또한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빚이 과다해져 변제가 어려울 경우 채무조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채무조정은 크게 보면 사적정리절차와 법적정리절차 두 가지가 있다. 사적정리절차는 개인들 간의 합의에 의한 자율협약(계약) 등에 의한 조정절차다. 자율협약은 민법상 채무면제이나 채권자 전원이 동의해야 하므로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법적정리절차는 주로 회생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에 의한 채무조정절차다. 이 중간에 있는 절차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의한 채무조정절차(공동관리절차)가 있다. 채무자회생법에 의한 채무조정은 모든 채무가 조정 대상이나, 기촉법은 금융채무만 대상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은 채무액이나 채권자 수, 채무의 종류에 따라 절차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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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절차 안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가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일정 채무를 변제하는 절차입니다. 각 단계별로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정명령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배운기

 
'대박인생'보다는 일상회복이 먼저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법원을 찾은 40대 부부 또한 마냥 대박인생을 꿈꾸며 생계를 꾸려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소소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원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들의 경제활동을 위해 기꺼이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과 개인들에게 미안함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도적 도움과 법적 절차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이 크지 않았을까?

"아! 그러면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두 분의 재정상황은 여러 자료를 검토해서 자세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우선 자영업자로서 정기적이고 확실한 수입이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중에서 가정의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도 변제재원으로 사용할 가용소득이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개인회생은 어렵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안내와 회생법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절차를 참고하셔서 개인회생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신청서나 필요한 첨부서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몇 번 읽어보시면 크게 어렵지 않게 작성이 가능합니다. 다만, 미래수입으로 어떻게 갚아 나갈 것인가에 대한 변제계획안 작성이 어려워서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선임된 회생위원들의 검토단계에서 추가적으로 내셔야 될 서면에 대해서는 보정명령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개별적으로 질문하시면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통상 변제계획인가까지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예, 감사드립니다. 둘이서 걱정만 하다가 막상 이렇게 찾아와서 말씀을 듣고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최근에는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혹시나 작성이 어려우시면 법률구조공단이나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무료로 작성이나 신청대행까지 해주기 때문에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카페 잘 운영하셔서 신용회복도 하시고 잘 사시기 바랍니다."


봄날의 벚꽃엔딩과 같은 빚잔치는 없다!

마음의 빚은 따뜻한 말 한마디와 봄바람에도 날아갈 수 있지만, 경제적인 빚(채무)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일상 밖으로 날릴 수도 있다. 잘 살아가기 위한 자본주의적 삶은 밥벌이라는 도구적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택과 고민이 필요한 수많은 상황에서 "뭣이 중한디?"라고 태연자약한 말을 하지만, 결국에 많은 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말한다. 이는 삶과 돈의 관계에 관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어쩔 수 없는 단면이다.

우리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것은 1980년대이거나 2020년대이거나 마찬가지다. 채무자와 채무(빚)는 자본주의적 삶에서 가장 불편한 단어 중 하나다. 신용관계를 둘러싼 거래이지만 변제기한이 지나거나 변제불능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대략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때 상황을 회피하거나 절망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출발의 의지가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그 희망을 방치하지 않는 제도와 법적 시스템이 존재함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일상이 봄날의 벚꽃처럼 활짝 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밥벌이라는 숙명에서 계속적인 승자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우리의 삶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법. 꽃샘추위나 하룻밤 소낙비에도 허무하게 저버린 꽃잎 신세 같은 쓰라린 봄날을 마주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이들도 일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철학자와 현자들이 인생론을 설파했지만, 대부분은 삶과 일상(밥과 빵), 열정과 의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일상에 관한 특별한 철학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가올 봄날을 마주할 용기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생의 의지와, 피고 지는 꽃을 즐길 수 있는 어느 하루가 있으면 족하다. 국가와 정부, 법과 제도는 시민들의 그 하루를 위해 존재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빚잔치 #자영업자 #개인회생 #일상회복 #신용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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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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