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 망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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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인도 정부의 협조로 티베트 망명정부는 맥그로드 간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국제사회에 티베트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을 이어갔고, 티베트 불교뿐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비폭력 투쟁노선 등으로 198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어쩌면 그가 겪었던 역사의 격랑 때문일까요. 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개혁을 이어갔습니다. 티베트의 헌법을 기초했고, 망명한 티베트인의 선거로 선출되는 의회를 구성했죠. 2011년부터는 정부 수반의 자리도 직선제로 선출되도록 했습니다. 현재 달라이 라마는 종교적인 지도자일 뿐, 티베트 망명정부의 정치적 지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다면 과학을 선택할 것이라 말했죠. 스스로 불교도이지만 세상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뜻은 수미산과 같은 우주론이 아니라, 사성제를 비롯한 철학적 가르침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과 과학을 받아들이며 종교를 발전시키는 진취적 종교인의 모습이, 그가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 멀리 보이는 14대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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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한 다음날, 저도 14대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장수를 기원하는 행사가 있었거든요. 여러 신도들이 모여 법회를 치렀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외부 일정은 아주 드문 편은 아니라서, 일정을 맞추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침 제가 계획한 날에 행사가 있어, 저는 딱히 일정을 수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먼 발치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달라이 라마를 만났습니다. 행사가 끝날 때에는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서 만날 수 있었고요. 행사를 주관하며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달라이 라마를, 모든 사람이 숨죽여 바라봤습니다.
90세에 가까워진 달라이 라마는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아 이동하면서도,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축복을 바라는 사람들을 놓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달라이 라마. 행사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유튜브 영상 캡쳐
Dalai Lama Archive
14대 달라이 라마는 여러 차례 자신은 사후 환생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령 티베트가 아니라 인도에서 환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밝혔지만, 그조차 티베트인 다수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달라이 라마 제도 자체가 민주적인 정치제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14대 달라이 라마의 판단입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달라이 라마 제도를 이용하려 했죠. 모든 불교 승려의 환생은 정부의 권한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판첸 라마의 사례죠.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에 이어 티베트 불교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위를 가진 지도자입니다. 중국 당국은 판첸 라마의 환생자로 알려진 6세 소년을 납치했고, 현재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진짜 판첸 라마를 찾았다며 새로운 판첸 라마의 즉위를 주장하기까지 했죠.

▲ 판첸 라마의 납치를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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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다시 환생하지 않고 열반에 들겠다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판단은 합리적입니다. 사실 달라이 라마를 선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판첸 라마가 실종된 상황에서, 전통적인 의미로도 달라이 라마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환생도 세습도 현대적인 정부 형태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14대 달라이 라마가 떠나고 이제 누구도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산길을 올라 맥그로드 간즈에 올 수 있을까요. 그가 없다면 이제 자유롭고 자주적인 티베트를 국제사회에 말해줄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가 그 구심점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정말로, 14대 달라이 라마가 없어도 티베트의 자유에 지금처럼 관심을 가져 줄까요? 제겐 우려와 걱정이 앞섭니다.

▲ 달라이 라마 사원의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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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티베트의 스님들은 수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종교는 한 명의 사람이나 지도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스님들은 여전히 진리를 향한 끝없는 갈구를 계속할 것입니다. 티베트 독립운동도 마찬가지겠죠. 민주 정치 역시 한 명의 영웅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어버린 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없다면 우리를 묶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유와 정의, 진리, 신념, 종교. 위대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들이, 우리를 한데 묶어줄 수 있을까요?

▲ 달라이 라마 사원의 티베트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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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음으로 경전을 읽는 스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달라이 라마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서여야 합니다. 자유와 정의, 평등과 진리를 위해 정진해야 합니다.
세습도 환생도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유산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낸 진보의 결과물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에, 인간이란 또 얼마나 나약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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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로드 간즈에서 14대 달라이 라마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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