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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사태, 사후약방문식 정책 나올까 두렵다

[주장] 당장 필요한 건 피해자 구제이고, 동시에 예방책 강구해야

등록 2023.04.20 16:10수정 2023.04.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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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와 시민대책위는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만큼 이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 권우성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었다. 피해자들의 집 현관문에 붙어있는 "당신들에게는 기회겠지만, 우리들에게는 삶의 꿈", "너희들은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라는 문장은 안타까운 조사(弔詞)가 되고 말았다. 인천의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잇단 사망 소식은 시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왜 이토록 가슴 아픈 사연과 사건이 반복되는 걸까?

집이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아닌 투기를 통한 자산증식의 수단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우리는 몇 평의 아파트가 가진 허세를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을 둘러싼 각종 제도의 허점과 정부의 방치라는 빈틈은 범죄자들에게 충분한 범죄적 고의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이 소망하는 '단란한 가정'의 꿈은 이들로 인해 망가지고 사그라진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전세'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제도다. 내 집 마련이 희망인 소시민들에게 적정 금액으로 일정 기간 안정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제도로서 법적으로는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는 전세제도가 가진 단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제도의 문제와 미비점은 국회와 정부가 함께 고민하고 입법과 정책의 이름으로 개선하고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 국회와 정부는 최소한의 고민과 행동을 하고 있을까?

모름지기 법과 제도는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까닭에, 어설프게 설계된 제도와 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악의(惡意) 사이에서 시민의 삶은 고통과 나락을 예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세사기나 깡통전세 문제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 경제력이나 정보취득이 어려운 저소득 취약계층에 더 불리하다. 막상 사건이 발생하면 이들은 심리적·경제적 타격은 물론, 자본주의적 생존의 기초와 삶의 희망을 잃는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정책적 혜안의 부족

최근 발생한 전세사기사건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첫째는 동일한 부동산에 대한 중복계약 사기다. 특히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공모한 중복계약은 개인이 피할 수 없다.

둘째는 임대차 보증금이 집값을 상회하는 깡통전세의 문제다. 부동산을 임대한 후 변제능력 없는 이에게 매도한 경우로 이번 '빌라왕' 사기사건의 주요 유형이다. 여기에는 시세보다 비싼 전세계약으로 큰돈 들이지 않는 갭투자의 유혹이 개입된 경우다.

이 두 가지 유형은 집값 폭등과 내집 마련의 조급함이라는 먹이를 먹고 성장했다.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문제였을까? 제일 큰 문제는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늑장 대응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정책적 혜안의 부족. 민생(民生)을 위한 정부 정책은 수사기관의 수사처럼 사건 발생 후에 움직여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늘 뒷북행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건해결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주거안정과 임대차보증금 반환, 임대인의 각종 정보제공 의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도덕성'이다. 현재의 대책도 예방책과 구제책이 동시에 모색되고 진행되어야 한다. 혹여나 대책과 예방책 모두 선의의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신속하게 피해자를 구제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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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와 시민대책위는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만큼 이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 권우성

 
1. 경매절차 내에서의 구제방안이다. 첫째는, 경매대상 부동산인 경우 최우선변제권의 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상 서울시 기준 보증금이 1억 6500만 원 이하일 경우 5500만 원을 최우선 변제받는다. 동법 시행령의 보증금 기준과 최우선변제금액을 부동산 시세에 맞게 현실화할 경우 혜택을 입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둘째는, 경매절차에서 체납세금보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임차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세기본법은 이미 위와 같이 개정되어 현재 시행중이다. 지방세기본법 또한 동시에 개정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정 작업 중이라고 한다.

2. 사기사건의 대상물인 부동산에 대해 경매를 중단(중지)하자는 요구가 봇물을 이룬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의 현행법상 한계가 분명하다는 거다. 이는 채권자들의 권리를 유보하거나 포기를 종용할 수밖에 없어 민사법이 추구하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위배된다. 특히 금융권에 경매포기(연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할 경우 은행 내 자금경색이나 업무상 배임이라는 법적 책임 문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3. 다른 방법으로 금융기관의 채권이나 체납세금에 대해 국가가 공적자금으로 대위변제하고 채권을 양수하는 방법이다. 국가가 채권자 지위에서 경매절차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전세금을 지급하거나 직접 매수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다. 이는 정부의 결단과 가용 예산이 있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공적자금의 투입이 다른 분야의 범죄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4. 또 하나는 일반적인 경매절차가 아닌 별도의 환가절차를 통해 이를 매각해서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전세사기 관련 부동산을 일체로 파산재단으로 만들어, 피해자에게 우선 매각하거나 간이한 현금화 절차를 통해 임차보증금을 반환해주는 것이다. 이는 법원 내부에서 이론적인 정리와 법적인 근거가 필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신속하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부동산 전세사기를 미리 예방할 수는 없을까?

1. 공적 장부인 등기사항증명서에 소유권, 제한물권 이외에 확정일자와 각종 공적인 정보를 확대 기록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확정일자는 이해관계인이 아니면 열람하기 어렵다. 확정일자가 등기사항증명서에 기재되면 부동산 정보의 공시효과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특히 동일 부동산으로 다수의 임차권자와 계약해서 계약금을 탈취하고자 하는 중복계약 사기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부동산 관련 정보와 소유자의 체납 정보 등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다. 별도로 등기사항증명서나 공적 장부에 기재되지 않을지라도 임차인의 요구에 의해 연계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선을 위해서는 법원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와 국세청 등 국가기관들의 긴밀한 협조와 제도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2. 전세 계약시에 소유자의 세금완납 증명서 또는 체납증명서 첨부를 제도화하는 방안이다. 이는 민법과 공인중개사법 등의 법령 개정이 우선시 된다. 또한 임대차계약 이후 소유자 변동시에 임차인의 동의를 요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에 위반할 경우 종전 소유자도 현행 소유자와 함께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를 연대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또한 민법과 관련 법령의 근거가 필요하다.

3.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 계약시 임대인의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국세나 지방세 체납정보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사고이력, 보증보험 금지여부나 악성 임대인 여부 등을 임대인의 동의를 전제로 해당 사건에 한하여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이 필요하다.

4. 공인중개사의 법적 의무와 도덕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에서도 공인중개사의 책임과 의무 관련 규정이 다수 존재하지만, 전세사기 사건에서처럼 범행을 주도하거나 공범이 되는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인중개사의 직역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책임과 도덕성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현행법의 관리 감독 및 벌칙 규정이 유명무실하지 않는지도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5. 부가적으로 중개법상 전세 보증금이 전세물건 시세의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위험성을 경고해주는 공적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보험의 활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법과 제도, 국가 기관간의 통합운영이 필요한 이유

이번 전세사기 사건의 본질을 보면 선의의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우선 국가와 법 제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시스템과 예방책이 존재했다면 과연 이러한 불행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다시 한 번 국가의 존재이유와 국가기관의 소명에 대해서 묻는다.

이번 사건 또한 국가 기관 간, 여러 제도 간, 각 직역 간 편협함과 이기주의 때문에 악의의 가해자들과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정부 부처가 함께 모여 민생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됨에도... 각자도생의 시대에 정부부처 또한 각자 해결의 상황에 놓인 까닭에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부동산 관련 정책을 만들거나 제도를 운영해야할 이들은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발생하는 불편한 이면이기도 하다.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제도의 통합적 운영은 신속한 대응을 요하는 위기국가의 숙명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의 무책임한 한마디와 통합 운영해야할 정부기관이 없는 상황은 무정부상태와 같다. 또다시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시늉만 내거나, 시간낭비만 되는 사후약방문식의 정책이 나올까 두렵다. 다주택자나 건물주들에게는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우리 주위의 시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닌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위한 생존의 문제다.

당장 급한 것은 피해자(희생자) 구제이고, 동시에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심리적 불안을 줄이고 주거안정을 가져오지 못하면 불행의 도미노가 시작될 수도 있다. 절대로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문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스토리에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경메중단 #공인중개사 #확정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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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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